10년지기?!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새삼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트레인을 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 동안 저는 녀석을 주머니 속에 유배(?)시킨 채 차창 밖으로 멍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긴 했지만 21년 전 이맘때 제가 처음 시드니에 왔을 적에는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1층짜리 하우스였습니다. 유닛이나 아파트라 해도 3, 4층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10층, 20층 또는 그 이상을 넘나드는 고층아파트들이 여기저기에서 키 자랑을 하고 있고, 낡고 오래된 집이 있던 자리에는 현대감각의 늘씬하고 예쁜 2층집들이 앞다퉈 들어서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땅값도 집값도 비싼 시드니답게 여기저기에서 듀플렉스 건축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습니다.

하긴… 같은 땅에 새 집을 두 채 지어서 한 채를 팔거나 그를 통해 렌트 수익을 얻을 수도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겠습니다. 아무리 핵가족이 일반화돼 있는 호주사회이긴 하지만 ‘따로 또 같이’ 살 수 있는 장점을 지닌 듀플렉스는 부모가 자식에게 힘이 돼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기저기에서 높은 건물들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고 지었다 하면 2층집이 돼버리는 요즘 상황을 보면서, 나지막한 집들이 몽글몽글한 나무들 사이에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던 옛날(?)의 그 모습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노을이 질 무렵 굴뚝 위로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내는, 벽난로가 있는 올드한(?) 집이 저는 지금도 문득문득 욕심이 납니다.

이스트우드 역까지 천천히 걸어서 7분 남짓, 스트라스필드 역에서 트레인을 갈아타고 홈부쉬 역에 내려 또 다시 그 만큼의 거리를 걸었더니 50분이 조금 넘게 걸렸습니다. 차로 움직이면 20분 안쪽으로 갈 수 있는 거리를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며 느릿느릿 닿았습니다.

아직은 두 다리 튼튼하고 걷기를 좋아하는 성격인 탓에 자식이 됐든 누가 됐든 ‘나 좀 태워다 달라’는 부탁을 안 하게 되는 저의 다소 괴팍스러운(?) 성격도 이번 일탈에 한몫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디를 가든 직접 운전을 하고 씽씽 달리곤 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트레인에 몸을 싣고 또 걷고 하는 여유로움을 갖는 건 또 다른 힐링이 됐던 것 같습니다.

이틀 전 종합검진(?)을 위해 맡겨뒀던 제 차가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활짝 웃으며 저를 반겨줬습니다. 제 차의 오랜 주치의(?)인 그곳 매니저가 “제가 시운전을 해봤는데 차가 아주 깨끗합니다”라며 웃어 보였습니다. 녀석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2박 3일 동안 여기저기를 아주 꼼꼼히 들여다보고 교체가 필요한 부분들은 모두모두 갈았습니다.

새 차 냄새를 폴폴 풍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녀석이 어제(22일)로 꽉 찬 열 살이 됐습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차 역시 나이가 드는 만큼 여기저기 손보고 정성을 들여야 할 부분들이 많이 생깁니다. 나이가 좀 있긴 하지만 좋은 주치의를 통해 매년 촘촘하게 건강관리를 받아온 덕에 녀석은 지금도 갓 출고된 젊은 친구(?)들 못지 않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아내와 저의 깔끔한 성격도 한몫을 해,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녀석은 뽑은 지 1년도 채 안돼 보이는 새 차 같은 멋짐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실력 좋고 사람 좋은 매니저의 친절한 인사를 뒤로 하며 녀석은 여느 때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편안함과 쾌적함은 덤으로 얹어졌습니다. “그래! 앞으로 10년만 더 나랑 건강하게 지내자!”

사람도 그렇지만 자동차도 때 빼고 광을 내고 난 다음에는 여러모로 좋아진 구석이 확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튼튼한 독일산 디젤심장을 지닌 녀석의 파워는 더욱 강력해졌고 차 안의 공기와 분위기도 훨씬 쾌적해졌습니다.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을 간직한 채 앞으로도 10년지기를 넘어 20년지기, 30년지기로 녀석과 함께 건강하게 잘 지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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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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