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부유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이브 탕기

미국 전위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현대미술사에 크나큰 영향 미쳐

프랑스 태생 미국의 초현실주의 화가 이브 탕기 (Yves Tanguy, 1900년-1955년)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잠들어있는 무의식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 화면에 펼쳐놓은 화가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인간의 무의식은 어디까지 확장되는가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01_현실 아닌 또 다른 환상의 세계, 초현실의 세계로 인도

건설과 파괴 1940년, 유화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하늘은 모호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속에 존재하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들로 인해 평범하고 단순한 풍경을 벗어나 이질적인 분위기를 창출한다.

몽환적인 풍경 속에 떠있는 물체들은 이 세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형상들이 아니다. 탕기의 무의식의 산물로 태어난 원형질에 가까운 형체들은 우리를 현실이 아닌 또 다른 환상의 세계, 초현실의 세계로 인도한다.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심해나 머나먼 우주에 존재하는 또 다른 행성과 같은 신비로운 느낌 속에서 헤매다 보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또한 그만큼 광대하고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나 르네 마그레트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는 아니지만 미국 전위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현대미술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화가로 꼽힌다.

 

02_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아이의 뇌’ 접하고 미술에 관심

검은 풍경 1926년, 유화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이브 탕기는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이 분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가 되자 은퇴한 해군 대령이었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견습선원으로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가 처음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3세에 초현실주의의 거장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작품 ‘아이의 뇌’를 접하고 나서였다. 키리코의 작품에서 전율을 느낀 그는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는 방식을 미술에서 찾기로 결심하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그림 그리기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초현실주의의 선언서는 그의 길잡이가 되었다. 앙드레 브르통의 무의식의 표현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은 새로운 미술을 향한 그의 열정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초현실주의는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 이성에 속박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정신을 해방시키고,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을 통해 예술에 대한 일체의 선입견과 논리와 도덕을 초월한 예술의 표현을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표현을 위해 사물의 위치를 바꿈으로 충격을 주는 데페이즈망 (전위법), 순수정신의 자동성과 잠재의식을 표면으로 이끌어내는 자유연상법과 자동기술법을 창시했다.

 

03_초현실주의 기본이념 배우며 자신만의 스타일 찾아

그린에서 화이트로 1954년, 유화

이브 탕기는 초현실주의 그룹의 일원이 되어 앙드레 브르통,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초현실주의의 기본 이념을 배우고 토론하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나갔다.

1926년 그려진 ‘검은 풍경’은 그가 18세부터 22세까지 아프리카, 스페인, 남미 등 세계 곳곳을 항해하며 오랜 세월을 바다 위에서 보낸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작품이다.

마치 해저 깊은 곳의 풍경 같기도 한 이 작품은 검은 색으로 깊이 있는 심연을 표현하고, 흐느적거리는 해초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심해 생물을 그려놓았다. 그러나 오른쪽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붉은 원뿔과 그것이 토해내는 듯한 흰구름들은 이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속이 아니라 화가의 의식 깊은 곳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이 어둡고 기괴한 풍경화는 아직 그의 특징인 원형질의 형태나 황량한 지평선이 나타나기 전의 초기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혼란과 불안이 화면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1929년작 ‘연인들’ 역시 심해를 연상시키는 녹색 배경에 바닥은 바닷속 진흙같이 흐물흐물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 서있는 해초와 비슷한 구조물이 오른쪽 짙은 녹색 위로 떠오르는 두 개의 겹쳐진 형상을 바라보고 있어, 마치 탕기가 연인들의 모습을 관조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린 색 허공에 춤추는 듯 떠오르는 형상들은 연인들이 느끼는 감정인 듯 보이기도 한다.

 

04_자동기술법으로 무의식의 세계 표현

북쪽으로 천천히 1942년, 유화

1927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탕기는 자동기술법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세계를 선보인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이때 그려진 ‘엄마, 아빠가 다쳤어요’에는 색조가 사라진 잿빛의 공간에 기묘한 형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저 멀리 선인장과 비슷한 형태가 세 개의 구름 비슷한 형체를 매단 흰 직선을 하늘로 향해 뻗고 있다.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을 날고 있는 물체,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물체는 흰색으로 뚜렷하게 그려져 있는데, 마치 누에고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호한 형태 속에 자신의 내면을 꼭꼭 숨긴 형태라고나 할까?

툭툭 붓질을 한 것 같은 검은 점들이 하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른쪽의 짙은 먹구름 같은 형태가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를 풍기고, 기둥처럼 서있는 원통형의 긴 물체에 세밀하게 묘사된 털들은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 두 형체는 서로 합쳐 마치 거대한 나무와도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물체들의 나열은 우리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기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구름을 매단 형태가 아빠인지, 검은 점들이 다친 아빠에게서 나오는 핏자국을 상징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화가 자신도 제목과 내용은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어떠한 의도도 없이 전적으로 자동기술법에 의해 그려진 작품이라지만, 보는 이들은 이 기이한 생명체들 속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할까 하는 호기심에 자꾸 들여다보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그림이다.

 

05_밑그림도 계획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 캔버스에

불필요한 불을 끔 1927년, 유화

이브 탕기의 작품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같은 해 그려진 ‘불필요한 빛을 끔’이다. 한폭의 풍경화와도 같은 이 작품은 다소 기괴하거나 무정형의 흐늘거리는 형태들이 없이 어떤 서정적인 서사를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주위의 모든 빛을 끄고 자신의 무의식이 인도하는 대로 우주 속으로 떠나가 신비로운 다른 차원의 행성을 엿보는 것 같이 다가오기도 한다.

오른쪽의 거대한 탑 같은 존재는 중앙의 검은 손으로 인해 살아있는 생물체, 혹은 인간의 변형같이 보이는데, 그 존재는 검은 손으로 구름을 향해 하얀 직선을 쏘아 올리고 있다.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이 하얀 직선은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해주는 우리 정신의 끈이 아닐까?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모두 앙상한 가지들로만 그려져 있다. 그것은 마치 생명을 잃고 뼈만 남은 시체를 연상시키고, 불모지와도 같은 인상을 준다. 이 황량한 풍경 속에서 알을 움켜쥔 새가 푸른 하늘을 날고 있다. 새가 들고 있는 알은 생명의 상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작품을 하기 전 어떤 밑그림이나 스케치를 그리지 않고, 계획을 세우지도 않은 채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을 캔버스에 옮긴다고 한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고, 작품의 제목조차 프로이트의 책 내용에서 나온 문장들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화가는 어떤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아무리 자동기술법에 의해 창조된 세상이라도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서사는 작가와 관람자 간의 어떤 연결을 보여주는 것 같다.

 

06_케이 세이지, 탕기의 예술과 생애에 커다란 의미 준 유일한 여성

사틴이 포크로 변하다 1940년, 유화

이브 탕기의 예술과 생애에 커다란 의미를 지닌 유일한 여성은 케이 세이지이다. 그녀는 미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상류층의 삶을 살았는데, 1920년경 그림을 배우기 위해 로마로 유학을 왔다. 로마에서 만난 이탈리아 왕족과 결혼을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혼을 하고 파리로 오게 되었다.

파리에서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하던 그녀는 1938년 탕기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그녀 역시 키리코의 숭배자였기에 탕기와 공통점을 가진 그들은 함께 초현실주의 미술을 논하며 가까워졌다. 그녀도 한번 이혼을 하고, 탕기도 첫 번째 부인과 이혼을 한 상태라 그들은 자유롭게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전인 1939년, 이미 유럽은 전쟁의 그림자가 암울하게 드리운 채 불안한 정세가 계속되었고, 많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탕기도 미국이 고향인 세이지와 함께 미국 행을 택했다.

 

07_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한 광활한 공간 펼쳐져

시간의 가구 1939년, 유화

이 시기에 그려진 ‘시간의 가구’는 완숙한 그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에는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한 광활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이 공간은 산이나 숲, 강과 같은, 풍경이라 할 수 있는 어떠한 형태도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지구와는 또 다른 세계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그 위에 자리잡고 있는 기이한 모양의 형태들은 살아있는 생명체라기 보다는 차라리 무생물의 형태를 띄고 있다. 직선으로 존재하는 기하학적 형태가 시간이라는 외부의 압력으로 그 형태가 일그러진 듯 모든 형태들은 곡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이 차갑고도 무감한 형태의 조각들은 시간에 의해 변형되고 왜곡된 하나의 생명체같이도 보인다. 우리의 심상 속 저 너머에 존재하는 시간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단세포 생물 같기도 하고 누에 같기도 한 이러한 형태들은 구체적인 형상을 포기한 대신 그 안에 품고 있는 어떤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무의식 속에 잠들어 꿈틀거리고 숨쉬는 수많은 사유들이 의식의 표면에 도달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직전의 상태. 심해와 우주의 어느 한 지점.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해변의 배경에 의외의 사물을 배치해 초현실적 풍경을 창조하는 화법은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많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08_1940년 결혼, 둘 다 탁월한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받아

엄마, 아빠가 다쳤어요 1927년, 유화

탕기는 세이지와 함께 뉴욕에 자리잡고 미국으로 이주해온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들은 1940년 결혼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고, 탕기가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한 것처럼 세이지 역시 탁월한 작품성으로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받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평생의 반려일 뿐만 아니라 예술의 동지, 뮤즈가 되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좀더 작품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그들은 코네티컷 우드버리로 이주해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미국에서 탕기의 작업은 좀더 큰 스케일과 금속성의 물체의 등장일 것이다. 그는 흐물거리는 원형질의 물질에서 선, 삼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들을 추가해 그것을 그만의 곡선으로 변형시키고, 점점 더 복잡한 형태들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1940년작 ‘건설과 파괴’는 초기의 음울하고 어두운 화면에서 벗어나 파스텔톤의 배경 위에 강렬한 원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있는 여러 복잡한 형태들이 놓여져 있다.

이제 물체들은 더 이상 화면을 부유하지 않고 자신만의 중력을 가지고 스스로의 실체를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탕기의 형태들은 질감을 가진 구체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1945년작 ‘자, 움직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시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기하학적이면서도 생명체의 뉘앙스를 풍기는 왼쪽의 형상들은 마치 인간을 상징하는 것 같고, 사각의 틀에 갇힌 물체들은 복잡하게 얽혀있어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계문명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09_전쟁이 토해놓은 물질들이 끝없이 증식해 뒤덮는다는 생각에…

연인들 1929년, 유화

1954년 그려진 ‘호의 증식’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이 불러온 비인간적인 이미지와 넘쳐나는 물질 속에 점점 잠식당하는 사회상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땅과 하늘의 경계가 뚜렷하고, 텅 빈 공간과 꽉 채워진 공간의 대비를 보여준다.

하늘은 잿빛 구름을 머금은 흐릿한 공간인데 반해 밑부분은 원형의 물체들이 조금의 틈도 없이 대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금속적이고 기계적인 형태들이 끊임없이 증식해 나가는 모습들은 기계문명에 의해 잠식된 인간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쟁이 토해놓은 수많은 물질들이 끝없이 증식해 대지를 뒤덮는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작품이다.

또한 같은 해 제작된 ‘그린에서 화이트로’에서는 넓고 푸른 하늘 아래 기계로 이루어진 한 도시가 보인다. 삐죽삐죽 솟아있는 원통형의 무거운 질감을 가진 쇳덩이들이 채우고 있는 삭막한 풍경 위로,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연 푸른 하늘과 그 속에서 춤추는 듯한 옅은 운무가 하나의 돌파구가 되어 우리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다.

 

10_이브 탕기는 멜랑콜리에 관한 초현실주의 도상학자

자, 움직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45년, 유화

인간의 무의식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 그곳에는 또 다른 우주가 펼쳐지고, 한계를 뛰어넘은 공간이 주어진다. 그곳에서 화가는 자신의 상상력이 잉태한 모든 사념체들을 낳는다. 그리고 그 사념체는 스스로 자라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낸다.

J.J. 스위니가 “이브 탕기는 멜랑콜리에 관한 초현실주의의 도상학자이다”라고 말한 대로 이브 탕기는 예민한 감수성으로 자신을 둘러싼 존재의 사유를 탐색하고 내면 깊은 곳에 갈무리해 자신의 감각과 버무려 무의식의 세계라는 낯설지만 매력적인 세계로 우리를 인도했다.

1948년 미국 시민권을 받은 후 탕기는 미국 서부지역을 여행했는데, 미국 남서부의 환경과 기계주의에 물든 미국의 실상은 그의 작품에도 반영되어 기계적이고 매끄러운 광택을 내는 메탈의 이미지가 반복되어 나타났다.

이브 탕기는 1953년, 1939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해 로마와 밀라노, 파리에서 전시를 하고 돌아왔다. 이제 그의 위상은 세계적인 초현실주의의 거장으로 우뚝 섰으나, 1955년 자신의 대대적인 회고전을 앞두고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케이 세이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의 작품도록을 완성했으나, 고독을 견디다 못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들의 유골은 유언에 따라 탕기의 고향인 브르타뉴 연안에 묻혔다.

 

* 다음에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주의 화가 밀레와 만나보겠습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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