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가 좋아

‘아 하~~~ 신라의 바아아암~~ 이이이여~~’

라윤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부르다 까르륵 웃는다. 올해 다섯 살인 라윤이는 내가 유튜브에서 ‘조명섭’이란 트로트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곁에서 눈을 반짝이며 재밌어한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중년의 복장을 한 ‘애 늙은이’ 같은 남자 가수가 현인 선생의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옛날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같았다. 신기해서 다른 노래도 찾아 듣다가 그만 푹 빠져들었다.

그는 흉내만 내는 모창이 아니라 성악의 발성을 기초로 한 안정되고 깊은 울림을 주는 목소리였다. 그가 부르면 옛날 구닥다리라고 여겨지던 노래가 어느새 윤기가 흐르는 명품으로 재창조되었다. 어린 시절에 우연히 현인 선생의 노래를 듣고 나서 옛 가요에 빠져 머리 모양새며 복장까지 따라 하고 노래를 부르게 됐다는 사연이다. 느릿한 말투로 지나온 이야기와 앞으로의 희망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그의 진중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요즘 한국 방송을 보면 트로트 노래 경연을 통해 알려진 가수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다들 어디서 있다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는지 신기하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미모도 출중하고 노래도 잘 부른다. 단순히 노래만 잘 부르는 게 아니다. 대부분 개인기까지 갖추었다. 태권도의 날아 차기나 공중돌기를 하면서 흔들림 없이 노래 부르는 모습에서는 그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트로트를 한참 듣다 보니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열 살 즈음이다. 그 시절 트로트의 여왕은 단연코 이미자 씨다. 엄마가 시장에 가고 없는 틈이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 노래자랑 놀이를 했다. 엄마의 화장품을 뒤져 루즈를 빨갛게 바르고 뽀얗게 분칠을 했다. 월남치마를 가슴까지 올려 드레스처럼 치장을 하고 머리에 스카프를 썼다. 그리고는 무대로 만든 책상위에 올라서서 노래를 시작했다.

‘황~혼이~~ 질 때면 생가악~~ 나는 그~~ 사아아람~’

‘워~~얼 출산~~ 신려~~엉 니임~~께 소워~언 빌~어~~었네~~ ’

한 손은 가슴 앞에 고정하고 다른 손은 쭈욱 내밀어 뻗는 이미자 특유의 포즈를 잡았다. 그렇게 놀다가 조금 시들해지면 예쁘장하게 생긴 남동생은 여장을 시키고, 선머슴 같던 여동생은 남장을 시켜서 듀엣으로 ‘잘했군 잘했어’를 부르게 했다. 한바탕 노래잔치가 끝나면 집안을 정신없게 만들었다고 엄마한테 혼이 났지만, 그 재미를 놓칠 수 없었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이거나 집에 손님이 오면, 동생들의 재롱을 선 보였다. 지금은 다들 성장해서 반 백 살이 훨씬 넘었지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즐겁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트로트와는 멀어졌다. 트로트는 나이 든 사람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는 팝송이 제일 인 줄로 생각하고 열심히 들었다. 가요 한 곡 부르는 것 보다 팝송 하나 부르는 것이 좀 더 근사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성장 하면서 듣던 팝은 올드 팝이 되었다. 이제 한참을 돌아 나 역시 ‘올드’라는 세대에 들어서고 보니 올드 팝 못지않게 트로트가 좋다. 예전에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

트로트는 묘하게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매력이 있다. 편안한 박자와 음률, 삶의 애환이 닮긴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트로트의 창법의 하나인 ‘꺾기’는 서양음악의 ‘웨이브’와는 다르게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절절해지는 한이 담겨있다. 노래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흥겨운 리듬의 가볍게 느껴지는 곡에도 삶의 짙은 향기가 묻어난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 나오는 노래는 모두 십 대들의 취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형 같은 모습의 어린 소년 소녀들이 떼로 나와서 노래보다는 퍼포먼스 위주로 음악 방송을 독차지했다. 중년의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아쉬웠다. 트로트 경연 덕분에 트로트가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 지금의 상황이 그래서 더욱더 반갑다. 귀에 익은 옛 노래는 친구처럼 정답다. 흘러간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펼쳐진다. 마음에 박힌 사진 같다.

예전에는 팝보다 한 수 뒤에 두었던 우리 가요가 이제는 K POP 이란 이름으로 세계 곳곳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트로트가 그 다음 차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했다. 트로트의 진한 감동이 세계인의 가슴을 적실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할머니~~ 나폴리 맘보 들려주세요.’ 하고 손녀가 말한다.

‘맘보~~~~ 나폴리 마암보~~’ 라윤이가 소리 높여 부른다. 나도 함께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음악에 흔들흔들 리듬을 탄다.

 

 

김미경 (수필동인 캥거루 회원·수필집: 배틀한 맛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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