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

큰 며느리가 고대했던 딸을 낳았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아련히 옛 생각이 났다.

그렇다, 친정어머니!

어머니는 그때 60대 초반이었지만 세 번씩이나 혈압으로 쓰러져서 왼쪽 팔과 다리에 힘이 없다는 소리를 가끔 하셨다.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어머니는 보따리를 끼고 오셨다.

하루에 여섯 번씩 차려주는 산모 밥상을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 내오셨다.

귀한 굴비까지 밥 위에 찢어 올려주셨다.

들기름에 발라 구운 김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40 년 전, 2월은 무척 추웠다.

아침이면 그 많은 빨래를 방망이로 얼음을 깨가며 하셨다.

내 머리에는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걸어 주시며 창문도 못 열게 하셨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갓난아기와 날 번갈아 가며 닦아주셨다.

밤에는 어린 것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잘까 봐 당신 무릎에 아기를 안고 벽에 기댄 채 새우잠을 주무시곤 했다.

어머니 속 고쟁이는 요술 주머니 같았다.

매일 새로운 반찬이 한없이 나왔다.

반찬 값이라고 드리면 그 요술 주머니를 꺼내 보여주셨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났다.

한 순간에 모든 걸 잃으신 아버지는 집을 나가버렸다.

올망졸망한 9남매와 할머니는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이면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시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린 마음에도 어떻게 어머니를 도울 방법이 없나 곰곰이 생각하며 잠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잠에 들어 있는데 얼굴위로 무언가 쏟아지는 걸 느끼고 눈을 떠보니 이불 위에는 포도가 잔뜩 쏟아져 있었다.

어머니는 친구 분의 소개로 포도 장사를 하면 수입이 좋다는 말에 당신도 해보려고 시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힘이 없으셨고 장사를 해보지 않아 무거운 포도 광주리를 들어 머리에 일수가 없어 광주리를 들어 이는 연습을 하다 그만 엎으신 것이다.

그 날은 시작이었다.

나는 밤마다 이불 속에서 몰래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벌떡 일어나 어머니를 돕고 싶었지만 마음만 답답하였다.

낮에 일손이라도 보탤라치면 어머니는 공부 잘하는 게 에미 돕는 일이라며 뿌리치셨다.

그런지 얼마 후,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그 무거운 포도 광주리를 선뜻 머리에 이셨다.

연습은 성공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어머니는 자는 척하고 누워있는 딸을 어루만지셨다.

돌아 누워있던 내 눈가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뒤부터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0년이 훌쩍 넘을 무렵, 그날은 어머니가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동백기름을 곱게 바르시고 얼굴에는 하얀 분을 뽀얗게 바르셨다.

어머니의 생소한 모습은 낯설었다.

그날은 장사도 가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오셨다.

원망도 미움도 그 하얀 분속에 감추고 싶은 어머니 마음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 또 다시 아버지는 떠나셨다.

 

모진 세월이었지만 어머니는 이겨내셨고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오히려 날 지켜주셨다.

건강하지 못하신 몸으로 내 산후조리를 끝내고 가시던 날, 옆구리에 끼고 오셨던 보따리를 들고 대문을 나서시며 내가 드린 용돈마저 마당에 던져놓고 빠른 걸음으로 나가시는 어머니를 뒤쫓아가던 나는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한쪽 다리를 많이 절며 신발까지 벗겨 진지도 모르고 다리를 바닥에 끌고 나가셨다.

그때서야 왜 어머니가 그리 바쁘게 서두르셨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머니를 붙잡고 등에 얼굴을 묻고 한없이 울었다.

“산모는 울면 안 된다”며 내 등을 토닥거려 주셨던 어머니,

9남매를 지켜주신 민들레 같은 우리 어머니,

그 광주리 속 어머니에 사랑으로 철없는 딸은, 어머니는 아프지 않고 어머니는 그저 그런 줄만 알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는데…

어머니의 입맛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누군가와 많이 닮아 있다.

고난 속에 아프게 사셨던 나의 어머니의 풍요한 사랑을 똑같이 닮고 싶은 딸… “어머니 사랑합니다.”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요리연구가)

 

 

 

Previous article수영장 있는 주택의 판매
Next article한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