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앤

밤잠 설쳐가며 손꼽아 기다렸던 어린 시절 가을 소풍날이 밤을 따러 오라는 이앤 (Ian)의 전화를 받고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소풍 전날 밤엔 가방을 머리맡에 조심스레 두고 꿈나라로 들곤 했었지. 흥분된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들판을 뛰어 다니며 찾아 헤맸던 보물찾기. 묵직한 소풍 가방 속에서 엄마가 싸 준 김밥, 음료수, 사과, 감, 카스테라 빵, 삶은 달걀 등등… 그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고소하고 달콤한 삶은 밤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가을이면 연례행사처럼 이앤 집에 와서 어린 시절 그리움을 먹곤 한다. 따사로운 햇살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길을 걸으며 가을이 주는 풍요에 오롯이 흠뻑 취할 수 있었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오늘 더 가까이 다가온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고 여기저기서 나직한 속삭임들이 들린다. 단풍잎이 어제 밤에 내린 비로 거리를 나뒹굴고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엔 언제 봐도 정겨운 담홍색 감들이 소담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한참을 멍 때렸나 보다. 붉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스쳐가는 소리에 번뜩 정신이 든다. 이앤 집에 가져갈 김밥을 챙기고 밤을 딸 채비를 서둘렀다.

마운튼 고우트 (Mountain Goat)라는 별명을 가진 이앤을 알게 된 것이 벌써 여러 해 되어 간다. 훤칠한 키, 구부정한 어깨, 날씬한 몸매, 등산을 가면 어찌나 빠르고 산을 잘 타는지 우리가 그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그의 속도에 맞춰 같이 걷게 될 때면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수다에 귀가 윙윙거렸다.

‘혼자 사는 싱글남이니까…’ 이해하려 하다가도 자연을 오롯이 즐기고파 가끔 등산을 따라가는 나의 의도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그의 수다는 소음 공해이기도 했다.

호주인들이 많이 쓰는 형용사인 블러디 (bloody)를 입에 달고 사는 그였다. 언젠가는 그가 도대체 블러디를 몇 번 쓰는가 하고 세다가 말끝마다 붙이는 바람에 결국 포기한 적도 있었다.

장성한 아들을 사고로 먼저 보내고 부인과도 헤어져 그의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그는 주위 사람들을 심심하지 않게 하는 성정을 지녔다. 나름 인생을 먼저 살아 온 선배로서 많은 이야기와 정보들을 들려준다. 고등학교 교사를 은퇴한 후 고즈넉한 시골 집에서 한가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이앤을 비롯해 마음 통하는 몇몇 등산클럽 지인들과 함께 타스마니아 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

여행은 다니는 순간에도 행복하지만 다녀오고 나서도 오랫동안 빛을 발한다.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그곳에 두고 왔고 그 후로는 맘 내키는 대로 꺼내 볼 수 있다.

여행하는 동안 동고동락 하면서 쌓은 정으로 우린 자주 저녁식사를 같이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함께 모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앤의 수다는 끊임이 없었다.

‘끼이익~ 꽝!…’ 환청처럼 그 날이, 그 소리가 들린다. 고속도로에 서 있는 트럭에 이앤이 운전하고 있던 차가 부딪혔다는 소식이 왔다.

이후, 시간은 많은 것들을 변하게 하였다. 변함없이 좋은 것이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든 인간은 그 변화를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클럽에서 그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고 세월의 변화에 이끌려 지인들도 흩어졌다. 이앤은 트럭에 부딪힌 충격으로 서서히 어눌하게 변해갔다. 그의 모습을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나는 마치 내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자 같았다.

올해는 새들이 밤을 다 해치웠다면서 한 줌밖에 되지 않은 수확이 미안했는지 떨어진 알밤들을 구부정한 목을 빼며 내게 건넨다.

우리를 접대한다고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그의 뒷모습이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려 앉을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조만간 경매로 집을 팔아 캔버라에 있는 아들 집 가까이로 이사 갈 계획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도 역시 가족이 버팀목이고 의지가 된 것이다.

울창했던 밤나무들도 주인이 떠날 거란 것을 아는 듯 가을의 수확을 일찍 거두고 있다.

그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작별 인사로 포옹을 하는데 딱딱해진 육신이 마치 뼈만 앙상한 고목 같았다. 소멸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마음이 자꾸만 텅 비어 온다.

그러다 문득 어린 날 만끽했던 가을의 완벽한 풍요가 이앤 집에서 작게나마 거둔 밤톨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위로한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아낌없이 내어주는 밤나무 같이 은혜로운 베품을 실천했던 이앤처럼 살아가라고….

나는 나를 다독인다. ‘괜찮아, 그래도 인생은 살아 볼만한 것이야.’ 이별이 다른 만남을 이끌 듯 언제가 우린 또 다른 낯선 곳에서 헤어졌던 이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글 / 송정아 (글벗세움회원·Bathurst High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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