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강남 가기?!

짧은 사족부터 먼저 달자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에서의 강남은 서울 한강 남쪽에 있는 강남이 아닌 중국 양쯔강 남쪽지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의 그 강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쓰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표현은 ‘원래는 할 마음이 없는데 친구가 하니까 덩달아 하게 된다’는 뜻을 지닌 우리의 오랜 속담입니다.

사실, 한달 반쯤 전 그 친구부부로부터 처음 권유를 받았을 때는 ‘그래,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뭘, 벌써부터…’ 하는 마음과 더불어 ‘우리가 어느새 이런 걸 고민해야 하는 나이가 됐나…’ 싶은 허무함까지 들어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며 그냥 제쳐뒀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일요일 오후, 그 친구부부에 의해 우연찮게 그곳으로 끌려간(?) 우리는 마침내 ‘최종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저는 이틀 후 다시 그곳을 찾아 ‘또 하나의 우리 집’을 마련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그 친구부부 바로 옆집을 사려했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그 일대를 모조리 잡아채간 바람에 우리는 바로 옆 동, 햇볕이 아주 잘 드는 예쁜 집으로 계약을 했습니다. 거리상으로는 7미터 정도, 그 친구네가 69호이고 우리가 114호이니 나중에 가끔 혹은 자주 만나 아늑한 정자(?) 아래에서 술잔을 부딪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또 하나의 집’은 우리 집에서 27킬로미터 떨어진 라우즈 힐 (Rouse Hill)의 카슬브룩 메모리얼 파크 (Castlebrook Memorial Park) 맨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따사로운 햇살을 품고 있고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그곳에서 둘러보는 360도 파노라마 뷰도 꽤 멋집니다.

우리 윗세대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수의도 마련하고 영정사진도 찍고 묫자리도 미리 챙겨두고 하는 걸 종종 봐왔습니다. 물론, 자식들 입장에서는 부모들의 그 같은 서두름(?)이 마뜩하지는 않겠지만 그 같은 준비를 미리미리 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에 따르는 왠지 모를 서글픔(?) 같은 것 때문에 단박에 결심하기는 어렵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나중에 자식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스스로 알아서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는 것도 부모로서는 잘하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를 ‘친구 따라 강남 가게 만든’ 그 친구부부는 1년 전쯤 그곳에 ‘또 하나의 집’을 장만했습니다. 그리고는 한달 반쯤 전 우리에게도 권유를 했던 겁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중에 죽어서도 좋은 사람들끼리 가까이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라는 이야기와 함께….

‘2월부터는 가격이 또 오른다더라’는 정보(?)를 미리 줬음에도 우리는 그때 선뜻 결심을 못했던 건데 1년 동안 이미 가격이 올라 있었고 그 친구 말대로 1월말에 또 한번 가격이 올라서 우리는 그 친구부부보다 2000불 이상 비싼 돈을 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사놓은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은 더 오를 것이고 좋은 자리도 빼앗길(?)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형, 우리는 나중에 저 큰 나무 밑으로 자리 잡자.” 15년 전쯤, 룩우드 (Rookwood) 한인성당 묘역에서 저보다 네 살 아래인 후배와 스치듯 나눴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곳도 꽉 차서 얼마 전 제2 한인성당 묘역을 조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차였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계신 곳이기도 하고 우리도 훗날 당연히(?) 그곳으로 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래 전 매장이 아닌 화장이 낫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던 만큼 이번에 마련한 부부 화장묘가 우리에게는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이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친구네 집 옆에 ‘영원한 우리 집’까지 마련해놨으니 앞으로 주어지는 우리의 시간 동안 최대한 후회 없이 아쉬움 없이 즐겁게 살아야겠습니다. 100세 시대라니 딱 1년이 모자라긴 하지만 구구팔팔이삼사 (9988234 /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 일 앓다가 죽는 것)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입니다. 일찌감치 ‘85세 이전 사망금지’ 명령(?)을 내려놨으니 이제 우리도 가능하면 99세까지, 14년의 보너스까지 알뜰하게 챙겨가며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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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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