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에이든은 아기 때부터 낯가림이 전혀 없었던 탓에 주변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꽃미남 얼굴에 특유의 살인미소(?)까지… 녀석에게는 어디를 가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단박에 그들을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우리와는 그 친밀도가 더더욱 깊어, 한때는 엄마 아빠보다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던 시절이 꽤 길게 있었습니다.

지 엄마가 동생을 갖기 전 회사 일을 하는 동안 8개월 남짓을 주 4일 우리 집에서 9 to 5를 했던 영향도 있긴 했겠지만 저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애정이 깊었습니다. 늘 제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어쩌다 일 때문에 집밖으로 나갈라치면 녀석은 “아빠! 아빠!”를 외치며 대성통곡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반면, 에밀리는 지 오빠와는 달리 낯가림이 매우 심했습니다. 엄마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과는 눈만 마주쳐도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좀 봐줬어야(?) 했을 텐데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녀석의 낯가림 혹은 심한 엄마 껌딱지 현상은 꽤 오랫동안 계속됐는데 킨디에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킨디 동생들이 생기면서부터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붙임성도 좋아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싸’가 됐습니다.

얼마 전, 에이든의 아홉 번째 생일파티를 우리 집에서 가졌습니다. 지 엄마 아빠가 이런저런 준비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픽업하러 간 동안 녀석들이 우리 집에 먼저 와있게 됐는데 그 한 시간 남짓 동안이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행복한 시간이 돼줬습니다.

우리는 얼마 만에 만나든 늘 뜨거운 포옹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날도 가족여행에서 돌아온 지 불과 5일만에 가진 재회였지만 우리는 백만 년 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얼싸안고 한참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거실에서 주어진 ‘따로 또 같이’의 시간… 아홉 살이 된 훈이는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살가움이 전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적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빈자리(?)를 이제는 봄이가 기분 좋게 채워주고 있습니다. 참 바보 같은 질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혹은 ‘할머니가 좋아, 할아버지가 좋아?’에 대답을 망설이거나 ‘둘 다 좋아’로 빠져나가고는 있지만 봄이는 분명 훈이에 이어 할아버지 껌딱지가 돼있는 것 같습니다.

그날도 녀석은 제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계속 재잘대다가 아주 한참 동안은 아예 제 무릎에 올라앉아 스마트폰 속에 들어 있는 사진들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최근 두 차례의 가족여행이 너무너무 즐거웠다며 식구들 생일 때마다 가족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내놨습니다.

한국에서 살 때… 우리 아이들이 훈이와 봄이 만할 때, 저는 참 많이 무심한 빵점 짜리 아빠였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1990년대의 꽉 찬 10년 동안을 저는 ‘일과 사람에 미쳐서’ 아내와는 물론, 아들녀석, 딸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가족여행이나 캠핑 같은 걸 함께 하긴 했지만 그 숫자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고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9만평짜리 중앙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것 역시 그 횟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훈이와 봄이 만했던 시절로 돌아가 일보다는, 사람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친구 같은 아빠로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 자식 때는 모르고 지내다가 손주들한테서 비로소 올바른 자식사랑을 느낀다고는 하지만 저는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마음 예쁜 훈이와 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아주 많이 좋아하며 따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빈도가 점점 약해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30여년 전, 제 아들녀석과 딸아이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아빠 노릇을 에이든과 에밀리에게 좋은 할아버지가 돼주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참회하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저는 녀석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그보다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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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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