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 핀 사랑

“전쟁 속에서 핀 사랑이야.”

“네가 전쟁 속 사랑을 알아?”

“영화에서 봤어.”

“어떤 영화?”

“노트북”

“노트북? 치매 걸린 아내가 써놓은 일기 남편이 읽어 주는 그 거? 그게 무슨 전쟁 속 사랑 영화야?

“전쟁이 나서 7년 동안 소식이 끊기잖아?”

“여자애 엄마가 편지를 안 전해 주어서 그런 거지… 적어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전쟁과 평화’, ‘부활’ 정도는 되어야 전쟁 속에서 핀 사랑 영화라고 하는 거야. ”

 

딸과 나는 아타몬 역사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사랑 이야기를 이어갔다. 화제의 발단은 아침 식사를 하며 본 광경에서 시작되었다. 정기점검을 위해 차를 맡기고 아타몬 역 뒤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평소 꽉 차던 테이블이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마침 야외 끄트머리에 옆 카페하고 바로 붙어 있는 자리가 우리 차지가 되었다. 딸 등 뒤로 두 테이블 건너 옆자리에서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백인 여자와 동양계로 보이는 남자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등을 지고 있어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옷차림이나 대화하는 양으로 보아 부부가 가볍게 식사하러 나온 모양새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데 뭔가 심상치 않다. 둘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얼굴을 부대끼며 서로를 쓰다듬더니 길게 키스를 한다.

‘아, 헤어지는 중이구나.’

이별의 아픔이 초봄 그늘진 아침 식탁 위에 올려졌다.

“엄마, 그만 쳐다봐. 쏘우 아시언!”

“너 그거 레이시즘이야. 근데 이상해. 부부 같진 않은데 친구라 하기엔 넘 애틋해 보이고, 그렇다고 끈끈한 느낌은 아니야. 여자 낯빛이 너무 쓸쓸해 보여. 남자가 멀리 떠나나 봐”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느낌이야.”

“코로나 때문에 멀리 못가는데…”

“그니까 이 와중에 저러는 건 뭔 사연이 있는 거지…‘

딸도 내 일방적인 생중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뒤를 돌아볼 수 없는 딸의 눈에서 좀 더 자세히 말해보라는 호기심까지 묻어 나왔다.

“드디어 남자가 가방을 들었어. 내 말이 맞았네. 보스턴백인데 색이 너무 바랬어. 멀리 현장으로 일하러 가나 봐. 와우~ 남자 키 엄청 크다. 훤칠하니 몸매가 좋아.”

“엄마! 한국 사람이면 어떡해, 목소리 좀 낮춰.”

“한국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둘이 빠빠이 하고 여자는 지금 숍 안으로 들어가고, 남자는 역으로 걸어가고 있어. 여자가 계산을 하려는가 보네. 그런데 남자의 딋 모습이 너무 공허해 보여. 뒤돌아서는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의 등은 아파.”

“에구, 울 엄마 진정하세요. 하하하“

입안으로 삼켜지는 듯한 딸의 웃음에서 남자의 등만큼이나 공허한 여운이 묻어 나왔다.

“어떡해! 남자가 역으로 들어가기 직전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어. 근데 여자는 아직 안 나왔어. 어떻게 해. 나랑 눈이 딱 마주친 거 같아. ”

남자는 역 안으로 꺾어지기 직전 모서리에서 고개를 한 번 더 돌려 보고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계산을 마친 여자가 막 나왔고, 그 여자는 사뭇 건조한 표정으로 무심히 떠났다.

‘그 남자가 30여 미터를 걷는 동안 두 번이나 너를 보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어. 한 번쯤은 역사 쪽을 바라보아야지…’

나도 모르게 여자의 등을 향해 중얼거렸지만 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우리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딸은 유럽으로, 나는 한국을 향해 바쁘게 날아가고 있을 터였다.

 

영국에 살던 딸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호주 국경봉쇄조치가 내려졌을 때 마지막까지 버티다 귀국했다.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온 처지다. 거기에는 남자친구도 포함되어 있다. 남자친구와는 각자 다른 나라에 있다가 갑자기 국경이 닫히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구르다 더 멀리 떨어지게 된 것이다. 9월쯤 다시 만나자고 굳게 약속하고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었는데 국경이 열릴 기미가 없자 상실감이 큰 요즈음이다.

“엄마, 지난번 꽃바구니 두 번 왔잖아. 첫 번째 것은 이별의 꽃이었고, 두 번째 것은 다시 만나는 날까지 절대 다른 사람 사귀지 말자는 부탁의 바구니였어. 엄마, 우리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봉쇄 풀리면 바로 보기로 했는데 내년 6월쯤은 가능할까?“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다니 전쟁이 따로 없었다. 날마다 전화로 몇 시간씩 대화를 하고, 같은 영화를 같은 시간에 같이 보면서, 새로운 방식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지만 이 커플은 정말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전쟁 속에 핀 사랑 이야기가 남의 일만이 아니다. 나 또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본지가 언제인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마지막 줄을 잡고 있다는 남편은 길게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형편이다. 잠깐 다녀간다 해도 양국에서 2주씩 자가 격리를 하려면 1달을 갇혀 있어야 한다. 격리 비용도 자가부담이니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래저래 서민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질 날만 기다려야 한다.

정말 전쟁이 따로 없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내 사랑은 딸의 사랑처럼 안타깝지도 아프지도 않다는 점이다. 남편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눈치다. 이러다가 우리는 전쟁 속에 진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엄마는 딸 걱정으로 우울한데 딸은 엄마의 사정은 당연한 듯 헤아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봉쇄가 약해지면 바로 달려갈 기세인데 나와는 다른 사랑의 농도를 마주하면서 기가 한풀 더 꺾인다.

역사에 여린 햇살이 내려앉는다. 모녀의 말꼬리도 철로를 따라 멀리 내려앉는다. 기차가 들어오고 있다. 영화 ‘해바라기’의 소피아 로렌이라도 된 양 스카프를 머리에 감아본다. 기다림의 시간은 일단 저장해 두기로 하자.

 

 

유금란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산문집: 시드니에 바람을 걸다)

 

 

 

 

Previous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162강 강조할 때 쓰는 말
Next article이방인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