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숴!”

“할머니, 이거 먹어!” 우리의 먹신 에밀리가 자기 그릇에서 따끈따끈 맛있는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들어 할머니에게 내밉니다. “어, 고마워, 봄아. 할머니가 맛있게 먹을 게.”

“뽐이, 할배는 안 줘?” 저의 느닷없는 시비(?)에 녀석이 다시 자기 치킨그릇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는 이내 치킨 한 조각을 꺼내 저에게 건넵니다. “잡숴!”라는 기상천외한 멘트와 함께….

녀석의 촌철살인 한 마디에 저는 또 다시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세 살 반…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는 걸까요? 하긴 녀석은 가끔 지 엄마를 향해 “에미야!”라고 부르며 능청(?)을 떨기도 한답니다.

지난주 금요일, 우리는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넷만의 1박 2일을 즐겼습니다. 어느덧 결혼 10주년을 맞은 지 엄마 아빠에게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자유(?)를 주기 위해서였는데 함께하는 시간 내내 두 녀석은 다양한 행복과 즐거움을 우리에게 쏟아줬습니다.

지난달로 꽉 찬 여섯 살이 된 에이든은 이제 제법 오빠로서의 의젓함을 보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여자아이라서 그런가, 에밀리는 재미있게 잘 놀다가도 아주 가끔씩 “엄마 어디 갔어?” 혹은 “엄마 언제 와?”라고 묻긴 했지만 의례적인(?) 수준이었고 에이든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매력들을 특유의 괴짜스러움에 담아 툭툭 뿜어냈습니다.

끊임없이 먹어대고 쉴새 없이 뛰어다니던 에밀리는 밤 아홉 시가 조금 넘자 소파에 푹 파묻혀 잠이 들었습니다. 천사의 모습이 따로 없었습니다. 함께 1박을 하기 위해 거실바닥에 펼쳐진 대형온수매트 위에 조심스레 녀석을 눕히는데… 그만, 선잠이 깨버렸습니다.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는 녀석을 달래기 위해 제품에 꼬옥 안고 있는데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뽐이, 얼른 뚝해야지? 너무 많이 울면 목 아파. 알았지? 뚝, 뚝…” 녀석은 계속 울다가 흐느끼다가 하면서도 “우리 뽐이 뽀로로 줄까? 물 줄까?” 하는 할배의 얘기에 도리도리나 끄떡끄떡으로 답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제품에 안겨 있던 에밀리가 다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조심스레 자리에 눕히며 앙증맞은 뺨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해줬습니다. 녀석의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방울은 진주 아니,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하게 빛났습니다. 제 가슴은 녀석의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지만 이 또한 제가 녀석의 할배이기 때문에 받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훈장이었습니다.

우리의 꽃미남 에이든은 유튜브를 켜놓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가끔씩은 우리를 향해 희한한 동작들을 선보이며 “할머니 하버지, 이게 뭔 줄 알아?” 합니다. 요가 자세 같기도 하고 게임 캐릭터 흉내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뒤뚱뒤뚱, 행여 다칠세라 노심초사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늠름한 청년(?)이 됐습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와인 잔을 부딪쳤습니다. 새근새근 잠이 든 한 녀석과 평소 같으면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텐데도 밤 열두 시가 다 돼가는 시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또 한 녀석… 지 엄마가 알면 난리가 나겠지만 우리는 치즈며 아이스크림이며 과자를 녀석에게 열심히 줬습니다.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의 선물들… 옛날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저만 했을 때, 한국 최고의 여성지 <여원>의 편집차장으로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우리 아이들과 아내에게는 완벽한 빵점 짜리였습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왜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내 자식의 자식을 통해 그때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에 아이들에게서 해방돼(?) 밖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딸아이 부부의 모습에, 허구한날 새벽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찌질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 됐습니다. “내 아내도, 우리 아이들도 그때 그 시절 저렇게 지냈어야 했는데…” 하는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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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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