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하늘님’

조선 제14대 선조임금은 왜구가 조선을 침략할 낌새가 보인다는 상소를 접하고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했다. 당시에 조정은 동인 서인 남인 북인이라는 사색 당파싸움에 휘말려 어느 것이 맞고 그른 정책인지 임금도 혼란스러웠다.

선조임금은 각기 다른 당파에서 황윤길과 김성일을 지명해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파견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일본 전국시대 혼란을 평정해 일본통일을 이룬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접견한 조선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은 조선에 돌아와서 임금 앞에 엎드려 한 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생긴 것이 음흉해 분명히 우리 조선을 침략할 속내를 감추고 있지만 분명코 머지않아 우리 조선을 침범할 것이 옵니다”라고 아뢰었다.

다른 한 놈도 생각은 먼저 놈과 같았지만 몸담은 당이 다른지라 같은 생각을 임금께 고할 순 없었다. 저쪽 놈이 흰 것을 보고 희다 하면 이쪽 놈은 흰 것을 보고 검다고 해야 했다. 하여 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생긴 것이 원숭이를 닮은 속 좁은 인물이라 우리 조선을 절대로 침범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왜군의 침략이 없을 것으로 단정한 임금은 희희낙락이었다. 하지만 왜군은 조선을 침략했고 셀 수도 없이 많은 흰옷 입은 백성들이 참혹한 학살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갔다. 파당을 지어 지들의 안존만을 꿈꾸던 비루한 인간들이 몰고 온 처참한 민족 비극사다.

조선 제21대 영조임금은 아들을 죽인 패륜의 임금이다. 당파싸움에 지친 영조는 당쟁을 막기 위해 당파간의 정치세력의 균형을 꾀하고자 탕평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치밀하고 집요한 당파의 모략과 술수를 이겨내지 못하고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고 만다. 사도세자의 아들 ‘산’이 정조임금이 되어 탕평책을 지속했지만 뿌리깊은 당파는 건재했다.

어느 나라건 어느 시대건 당파는 있을 수 있다지만 우리민족의 당파는 참으로 모질고 질기다. 당파는 하늘만 바라보는 순진한 백성들을 죽이고 애비가 아들을 죽인다.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준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하늘님’마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잠만 자는 건가?

선조임금이 죽은 지 400여년이 지났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당파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역사를 배웠다는 인물들이 당파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아이러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외쳤던 보수가 혹시나 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힘입어 정권을 잡은 지 제법 됐다. 한데 그들의 정책을 보면 무엇이 새로운 도약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넉넉한 삶을 약속하는 아젠다 발굴이 없다.

하는 일은 전 정권에 대한 흠집내기와 불법의혹 부풀리기다. 쉽게 말해서 정적을 탄압하고 사정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하는 모습뿐이다. 국민들을 편안케 하겠다는 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진보보다 더 무능하다. 그러니 순진한 국민들은 박수 칠 일도 없고 ‘아~씨, 표 잘못 찍었네’만 툴툴거리고 있다.

국민들이 전 정권 죽이려는 거 말고, 국민을 위해 뭔가 좀 하라고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자 그걸 만회하겠다고 내놓은 수는 그냥 악수일 뿐이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라는 술 취한 여성이 등장해 어린아이들을 다섯 살부터 초등학교에 보내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자 사교육비에 지치고 찌들은 젊은 엄마 아빠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민심은 들썩이고 언론은 뭘 제대로 알고 하는 거냐고 난리가 났다. 결국 그 장관은 물러나고 말았다.

검찰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그 임금’의 말처럼 “대통령을 처음 해서 잘 모른다”면 주위 경험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는 것이 정상일터다. 한데 그 임금은 먼저 경험한 반대당에는 잘난 인간이 하나도 없다고 일축했다. 문제는 그렇게 일축했지만 자기네 당에는 교육부장관 같은 어벙한 인재(?)만 널려 있다는 거다.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역사를 통해서 똑바로 배워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이들도 다 아는 이 사실을 괴이하게도 어른들만 모른다. 어른 중에서도 특히 정치한다는 인간들이 더 모른다. 그러니 맨날 파당이나 지어서 국민 앞에 헛소리나 하는 거다.

참 문제다.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내려줄 사람이 없다. 이젠 잠자는 ‘하늘님’이 그만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누구나 대통령은 처음 한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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