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삼계탕

동트는 새벽이면 긴 목을 빼고 “꼬끼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린다

어둠이 깔려있는 새벽, 조용한 동네를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꼬끼요!” 분명 그 녀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여물지 않은 목소리의 주인공 “그래. 다행이다.” 뛰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어느 날 한 동네 사는 지인이 어린 장닭을 주고 갔다. 출장간 남편을 위해 삼계탕이나 끓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들통에 물을 끓였다.

 

01_아까부터 불 위에 올려놓은 물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눈망울을 굴리고 있는 저 녀석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처리하는 방법을 알아보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일단 다리에 끈을 묶어두고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아까부터 불 위에 올려놓은 물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삼계탕 사진까지 인터넷에서 찾아 남편한테 보냈으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그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헐거워진 끈이 풀려 녀석이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다. 왠지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자유를 찾아서 잘 살아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며칠 안 되어 그 평온은 깨지고 말았다. 옆집에 사는 마이클이 녀석을 안고 와서 자기네 집을 돌아다녀 잡아왔다며 내 품에 다시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02_이번에는 뒷마당 텃밭에 있는 창고에 단단히 묶어뒀다

마이클한테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그 녀석을 받아 든 순간 다시 고민에 빠져 들었다. 어찌해야 할지 생각할수록 암담했다. 이번에는 뒷마당 텃밭에 있는 창고에 단단히 묶어두었다. 배고플 녀석을 생각해서 쌀과 물을 잔뜩 주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은근히 그 녀석이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텃밭으로 나가 본 나는 그만 망연자실 그 자리에 주저 않고 말았다. 예쁘게 자라고 있는 열무 밭이 전쟁을 치른 듯 온통 다 뒤집어져 있었다.

아까워서 솎아 먹지도 않은 어린 열무가 한 순간에 온데간데 없이 사려져 버린 것이다. “오냐. 오늘 너하고 나하고 끝장을 보자.” 오이덩굴을 받치고 있던 장대를 뽑아 들었다.

 

03_목숨이 있는 짐승인데… 녀석과의 전쟁을 접기로 했다

온 힘을 다해서 마구 휘둘렀지만 녀석은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내 이마에는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장대가 부러지자 이번에는 골프채를 들고 왔다.

그러나 그 녀석을 맞추는 것은 작은 골프 공보다 더 힘이 들었다. 땀이 비 오듯 했다. ‘포기하자. 저렇게 살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편해왔다.

그 동안 녀석과의 전쟁을 과감히 접기로 했다. 목숨이 있는 짐승인데 한없이 녀석이 가엾게 생각되었다. 삼계탕 안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오늘도 동이 트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긴 목을 빼고 울어대는 그 녀석…. 이제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린다. 부디, 오랫동안 그 정겨운 소리를 들려다오.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 요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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