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위대하다?

지금도 믿겨지지 않지만, 호주 산불연기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호주로 왔답니다. 처음에 ‘호주 산불연기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남미의 칠레, 아르헨티나까지 갔다’는 말에 “에이, 설마…” 했는데 이제는 그에서 한술을 더 뜬 셈입니다.

아직도 진행형인 호주 산불이 주는 피해는 말로는 다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수많은 인명피해와 천문학적인 재산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동물들도 12억 5000 마리나 죽었다고 합니다. 이 숫자도 처음에는 5억 마리라더니 이내 10억마리를 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산불로 숨진 엄마 왈라비의 새끼주머니에서 구조된 아기 왈라비 일곱 마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초롱초롱 예쁜 눈망울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산불을 피해 도로로 내려온 코알라 한 마리는 위험한 길 한복판에 고여있는 물을 힘없이 핥고 있다가 구조됐고, 자기 집 뒷마당 물통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강아지 옆으로 코알라 한 마리가 나타나 입을 대는 영상은 귀여움보다는 안타까움의 무게를 훨씬 더해줬습니다.

요 며칠 사이 비가 좀 내리기에 반가워했는데 찔끔찔끔… 흡족할 만큼의 비는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곳에는 좀더 많이 와야 산불이 정리될 텐데 말입니다. 그 와중에도 어떤 지역에는 골프 공만한 우박이 쏟아졌고 또 다른 지역은 폭우와 강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비가 와도 홍수가 날 정도로는 안 와야 하는데…’ 했던 바램과 우려가 비껴나가지 못했던 겁니다.

호주의 하늘은 눈이 부시게 맑고 높고 푸르릅니다. 몇 달 동안 계속된 산불로 그 예뻤던 하늘이 온통 회색 빛이었는데 최근 들어 가끔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얼굴을 드러내곤 합니다. 얼른 산불이 완전히 꺼져서 이전의 쪽빛 하늘을 볼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타스마니아 여행일정에 고든 댐 (Gordon Dam)이 들어 있었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조금 아찔한 느낌이 들만큼 아득한 높이에서 수백 개의 철 계단을 내려가야 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심스레 댐에 닿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저 끝까지 아슬아슬한 철 계단이 또 이어져 있었습니다. 발전소 작업자들을 위한 시설인 듯싶었는데 까마득한 140미터 댐 아래로는 검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험지에 저 같은 시설을 만들어놨을까… 참으로 ‘인간의 힘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물이 됐든 불이 됐든 자연의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인간에게 위대함 같은 건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돈 많고 빽(?) 많은 사람들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왜들 그리 아옹다옹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사람들처럼 아귀다툼을 하며 사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새로 짓는 집에 미장을 하면서 날아든 수 십, 수백 개의 콘크리트 조각들이 우리 집 벽과 지붕을 아주 흉측하게 만들어놨습니다. 그 밖에도 견디기 어려운 소음과 공사장에서 날아든 각종 자재조각, 나사못 그리고 인부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들이 적잖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콘크리트 조각들은 안 되겠다’ 싶어 소심하게 컴플레인을 해 공사가 끝나면 페인팅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행이 그 집 공사가 빨리 진행돼 2월이나 3월쯤에는 젊은 중국인 가족들이 우리의 새로운 이웃으로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때쯤이면 몇 달 동안 시끄럽고 복잡하고 지저분했던 우리 집 주변도 평화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새 2층집이 들어서면 우리 집이 초라해지는 것 아니야?” 은근히 걱정도 해봤지만 ‘차콜 그레이 칼라의 세련미’를 갖춘 우리 집은 여전히 그 예쁨을 뽐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가 바뀌어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면서 철이 든 건지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마인드가 더해지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겸허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내일이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입니다. 애독자 여러분, 광고주 여러분,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0년 일년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평화로운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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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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