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꿈

가정은 가족 개개인의 삶이 날줄과 씨줄처럼 교차하는 공간이다. 가족은 개개인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전이돼오는 희로애락을 함께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다.

가족 누군가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길이 다르고 이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고 힐난해서는 안 된다. 인간관계는 상대적이라지만 가족에게서만은 맹목적인 이해와 사랑을 공유해야 하는 거다. 그것이 믿음이다.

근자에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한 ‘미나리’라는 영화를 봤다. 미나리는 미국으로 이민 온 한 가족의 이야기다. 영화를 감독한 ‘정이삭’은 이민자다. 흔한 말로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떠나온 이민자로서 자신의 경험과 이민자의 보편적인 삶을 그린 이야기다.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부푼 가슴으로 미국으로 향했던 이민자들의 공통된 갈등과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루하기는 하지만 수작이다.

요즘 영화라면 드라마틱하고 예상할 수 없는 급격한 반전으로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심장박동 수를 상승 시키는데, 이 영화는 물결치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 같다. 게다가 심금을 울리는 신파조의 내용도 아니고 시종일관 잔잔하다. 어찌 보면 재미없다. 그런데도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따뜻한 뭔가가 흐르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같은 이민자로서 동병상련 (同病相憐)의 아픔과 함께 가슴 적시는 가족애를 느꼈다.

이민자인 남편 제이콥과 아내 모니카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0년을 생활한 부부다. 뚜렷한 삶의 근간이 없던 제이콥은 새롭게 시작하자면서 시골인 아칸소로 이주를 단행한다.

아들은 심장이 약하다. 아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찾아갈 병원이 멀다. 딸과 아들이 교육받아야 할 도시도 멀다. 하지만 제이콥은 오로지 성공을 위해서 아칸소를 찾아온 거다. 그것은 제이콥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내기 위한 집념이었다.

남편 제이콥은 병아리감별사로서 병아리 똥구멍만 바라보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어린 딸과 아들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성공한 미국인이 되기 위해서 농장주를 꿈꾼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 50에이커의 땅을 구입해 농장을 일구기 위해 땀을 흘린다.

아내 모니카는 남편의 아메리칸 드림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다. 그녀는 가족을 몹시 사랑한다. 사회적 위상과 지위가 어쨌든, 아메리칸 드림이 어쨌든, 무엇보다 가족이 건강하고 같이 웃으며 행복하게 잘 지내면 그것이 가족의 힘이고, 그것으로 이민자의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 간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딸 부부를 대신해 손녀와 손주를 돌보기 위해 미국에 온 할머니는 갈등의 중재자로 등장한다. 모니카에겐 이 또한 짐이다.

할머니가 가꾸는 미나리는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 돌보지 않는 땅에서도 쑥쑥 자라 시원한 국이 되고 새콤한 반찬이 되는 미나리는 이민자들의 상징처럼 클로즈업 된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든 뭐든 이민자들의 삶은 외롭고 고되다. 부패한 권력자와 얽히거나 선량한 이웃을 등치거나 사기를 치거나 해서 두둑한 자금을 숨겨오지 않는 이상 이민자의 삶은 힘겹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고국에서의 삶보다 몇 갑절 더 힘들다.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빨래방에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무뎌질 때까지 기계를 돌려야 했고, 파이프를 설치하기 위해 건물 천장을 기어 다녀야 했고, 공장 화장실 똥 묻은 변기통을 닦으며 입술을 깨물어야 했고, 세탁소를 차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다리미질을 해야 했다. 세상 어디든 이민자에게는 무거운 삶의 현장일 뿐이다.

사람들은 ‘미나리’는 아무 곳에서나 잘 살아가는 미나리처럼 이민자의 차별과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이야기라고 한다. 맞다. 그렇기도 하다. 하나 나는 다른 깊은 것을 봤다. 미나리는 가족의 믿음과 사랑만이 이민자의 무거운 삶을 이겨낼 수 있다는 암시다.

영화의 끝 부분에 실수로 제이콥의 아메리칸 드림인 농장 건물을 불태운 할머니는 망연자실 집을 등지고 터벅거린다. 이방인 대하듯 하던 손녀와, 냄새 나서 한 방에 자기 싫다던 손자가 할머니 앞을 팔 벌려 가로 막으며 집으로 가는 길은 이 길이 아니라고 할머니를 돌려 세운다. 할머니와 손녀 손자는 손을 붙잡고 제이콥과 모니카를 향해 걸어간다.

가족은 너는 너고 나는 나가 아니다. 가족은 함께하는 사랑과 믿음이다. 그것은 미나리 같은 이민자의 꿈이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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