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야

풍경 #1

핸드폰의 전화벨이 울린다. 지루한 표정의 노인이 무심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모르는 전화번호다.

“여보세요.”

“장 선생님이세요?”

“예 그렇습니다.”

“전 교민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잡니다.”

“아 그렇습니까?”

“다름 아니고 제가 개인적으로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서 활동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 그러세요? 대단하시네요.”

“선생님께 연락 드린 이유는 제가 만들려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주실 수 있는지 여쭙고 싶어섭니다.”

“어떤 성격의 프로그램을 만드실 계획인지요?”

“교민사회에 도움이 되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범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 한데 저에게 어떤 역할을 원하시는지요?”

“저하고 대담 형식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 대담 상대역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이런 방면에 경험이 있으시다고 해서 추천을 받았습니다.”

“글쎄요… 제게 그만한 능력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네요… 전 이미 진이 다 빠진 별볼일 없는 늙은인데…”

“별말씀을요. 도와주십시오. 죄송스런 말씀입니다만, 출연료는 드릴 형편이 못됩니다.”

“아 예, 그렇군요. 그런데 스튜디오는 어딥니까?”

“제가 곧 마련할 겁니다.”

“그렇습니까. 저도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며칠 출장을 가는데 다녀와서 곧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장 선생은 은퇴한지 한참 오래됐다. 그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은근히 설렜다. 연락을 기다리면서 나름대로 교민들의 삶에 희망이 되고 도움이 되고 활력이 된다면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연락을 기다리며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자료들을 뒤적인다.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고 비슷한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학습을 한다. 신나고 즐거운 나날이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반년이 가도 그 사람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다. 그는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하면서 자신의 핸드폰에서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지운다. 교민언론에서 일한다는 그 사람은 여전히 기자를 자처하면서 여기저기 얼굴을 내민다.

 

풍경 #2

노인은 가끔 매콤한 양념으로 잘 튀긴 닭다리나 날개가 먹고 싶으면 한인마트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닭튀김 점포에 간다. 그 맛이 죽여준다. 매콤한 닭튀김을 사와 소주 한잔 걸치면서 시름도 걱정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젊은 사람들은 ‘치맥’이라고 해서 닭튀김에 맥주가 제격이라고 하지만 노인은 오로지 소주가 최고다. 그날도 닭튀김에 소주 한잔 제키려고 닭튀김 점포에 간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장인 듯싶은, 중년은 훨씬 지난 사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호떡 아세요?”

“호떡요? 그럼요, 알죠. 고국에서 많이 먹었었죠.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떼어내 그 속에 설탕이나 팥을 넣고 달궈진 불 판 위에 올려놓고 둥그렇게 생긴 참기름 묻은 호떡누르개로 꾹꾹 눌러 뒤집으면 끝내 줬죠. 추운 겨울에는 최고였죠. 아 추억이네요. 먹고 싶네요.”

“아유 잘 아시네요. 내가 그 호떡을 팔려고 하는데 한번 해 보실래요?”

“호떡 구우라는 겁니까?”

“예~ 일주일에 4일만 일하시면 돼요. 근데 토요일 하고 일요일은 빠지면 안되죠.”

“그런데 왜 나 한데 그런 일을 맡기시려고 하는 거죠”

“나이가 들어 보여서요. 호떡은 나이 드신 분들이 잘 굽거든요. 급여는 섭섭지 않게 지급해드릴게요.”

“아이구 고맙습니다. 생각해보고 연락 드릴게요.”

“호떡 굽는 기계가 곧 들어와요. 그러니 빨리 연락 주시면 고맙겠네요.”

노인은 신이 났다. 그래,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 아무렴 놀면 뭐하냐. 뭐라도 해야지. 해보자. 식구들에게 얘기하면 반대할 게 뻔하니 당분간 말없이 조용히 하자고 생각한다.

노인은 호떡가게를 하겠다는 주인장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지금 바쁘니 내가 연락할게요” 한다. 그런 후 몇 달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다. 약속은 약속이다. 지켜지기도 하고 지켜지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 또한 약속이다.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못 지킬 수가 있다. 그것이 세상살이다. 하지만 지키든 지키지 못하든 분명한 끝맺음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된 사람’이라고도 한다. 허공에 바람 불듯 자신의 입에서 나온 약속을 가볍게 날려버리는 것에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좀 진솔하고 순하게 살자!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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