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가장 젊은 날

고교시절 마지막 겨울방학 시작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수능이라 불리는 대입예비고사도 끝났고 이래저래 널널한 상황… 반 친구들을 따라 저도 처음으로 두발규정을 어기고 슬그머니 장발(?)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호랑이 학생지도주임선생님이 바리캉을 들고 우리 교실을 급습, 제법 삐죽삐죽 자라 오른 우리의 소중한 머리카락 한가운데로 사정없이 고속도로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뭐라고… 눈물까지 찔끔 났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앞머리를 쓱쓱 옆으로 넘기자 깎여진 머리카락 부분이 감쪽같이 가려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워낙 머리 숱이 많았던 덕분이었습니다.

“아, 사장님. 저 코리아타운 완전 팬이에요. 특히 사장님 글은 한번도 안 빼놓고 읽고 있어요. 그런데… 사장님, 칼럼에 있는 사진 언제 찍으신 거예요?” 얼마 전 가까운 지인의 집에서 만난 한 여성 팬(?)은 “사진보다 머리카락이 많이 없으시네요”라는 말로 제 머리카락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젊은 시절 까치가 둥지를 틀어도 될 만큼 풍족했던 머리카락은 직업 탓인지 나이 탓인지 소리소문 없이 자꾸자꾸 줄어들고 있습니다.

1993년 봄부터 6개월여 동안 외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천직으로 여겨온 기자생활 대신 한국 최대의 레저전문회사 홍보차장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던 건데 사실은 전국에 콘도와 스키장을 보유하고 있던 그 회사 회장이 레저전문지 창간을 계획하며 고액의 연봉으로 저를 스카우트해갔던 겁니다.

하지만 그분의 그 같은 계획은 회사 내부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결국 백지화됐고 솔잎만 먹고 살던 송충이가 정장차림에 넥타이까지 매고 높은 사람들 지시와 결재를 기다리는 생활은 지겹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김 차장님이 우리회사 여사원들이 뽑은 ‘가장 배 안 나온 간부사원’ 1등으로 뽑히셨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울룩불룩 초콜릿 복근 같은 건 없었지만 이른바 똥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머리카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학시절에도 욕심스럽게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바람에 캠퍼스를 여유 있게 거니는 낭만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고 커다란 키에 삐쩍 마른 체구로 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게 저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때마다 귀를 덮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건 저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습니다. 워낙 마른 체질이었다가 아내를 만나고 나서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지만 뚱뚱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3년 전쯤부터 시작된 또 하나의 변화는 근육을 조금씩 도둑맞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안 되겠다 싶어 아내와 함께 GYM에 등록을 하고 근력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여기저기가 조금씩 탄탄해짐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불청객 코로나19 때문에 1년 넘게 GYM엘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레킹은 일주일에 세 번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겁니다.

대책 없는 머리카락 상실, 슬그머니 나오는 아랫배, 슬금슬금 도망가는 근육… 제 몸에서 느껴지는 3대 핸디캡입니다. 계속 쓰면 머리카락이 늘어난다는 샴푸와 헤어토닉도 지인의 권유로 꾸준히 쓰고 있지만 아직은 좀더 있어야 효과를 보려는 모양입니다. ‘이 참에 나도 가발을 하나 맞춰서 10년, 아니 20년쯤 젊어져 볼까?’ 싶은 충동도 문득문득 느끼곤 합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가 주춤하고 있으니 다시 GYM과 친해지는 길이 아랫배도 밀어 넣고 도둑 맞은 근육들도 되찾아오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트레킹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머리 숱이 풍성한 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저의 30대 사진을 보며 “아니야. 이거, 하버지 아니야”라며 계속 고개를 흔드는 우리 에밀리가 깜짝 놀랄 만큼 머리카락도 많아지고 똥배 대신 근육이 늘어나는 그런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오늘이 가장 젊은 날.” 트로트 아이유라 불리는 열일곱 살 트로트 소녀 김소연 양이 재해석한 이 노랫말처럼 저의 가장 젊은 날 ‘오늘’을 더욱 건강하고 즐겁게 그리고 알차게 살아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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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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