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한 손으로는 보조배터리로 충전중인 휴대전화를 꼭 쥐고, 다른 한 팔로 아프간인과 뜨겁게 포옹하는 ‘안경 쓴 한국인 남자’의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제가 얼싸안은 사람은 1년 넘게 우리 대사관에서 함께 일했던 현지인 동료입니다. 다른 직원들도 반가워서 모두 포옹을 했지만 그 친구가 특히 얼굴이 많이 상해있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슴이 뭉클한 그 사진을 보며 “그럼, 혹시?” 하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맞았습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아프간 잔류를 고집하던 우리교민 한 사람을 끝까지 설득해 8월 17일, 그를 데리고 마지막으로 아프간을 탈출했던 주아프간한국대사관 소속 김일응 공사참사관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아프간을 빠져 나와 카타르에 머물고 있던 그는 탈출 5일만인 8월 22일, 주아프간한국대사관 현지인 직원 3명과 함께 미군 수송기를 얻어 타고 다시 아프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아프간을 떠나며 아프간인 직원들을 비롯한 현지인 조력자들에게 “반드시 당신들을 한국으로 이송할 거다. 꼭 데리러 오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정부와 관련기관들을 도와왔던 아프간 현지인 조력자와 가족 391명을 한국으로 이송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미라클’ 작전은 8월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간 극비리에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뤄져 그들을 모두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와 다름 아니었습니다.

8월 23일, 카불공항 안으로 현지인 조력자와 그들 가족 26명이 들어왔는데 이들은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발로 뛰며 접촉해 들어오게 한 인원이었습니다. 그들은 ‘KOREA’라 쓰인 팻말을 들고 그나마 통행이 가능했던 카불공항 에비게이트 앞 진입로를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직접 사람을 찾고 미군과의 확인과정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공항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약속한 사람들 중 365명이 카불공항에 들어오지 못하자 ‘버스이동’ 작전을 택했습니다. 설사 카불공항까지 온다 하더라도 게이트를 통과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카불공항 근처 10분 거리의 두 곳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한꺼번에 이동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메일과 채팅앱 등을 통해 함께하기로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모두 약속된 시간에 불러모아 네 대의 버스에 태울 수 있었습니다.

김일응 공사참사관은 “그 다음 과정이 이번 이송작전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당초 우리 대사관이 미군과 협의한 카불공항 정문 버스 통과시간은 8월 24일 오후 3시 30분이었지만 실제로 버스가 공항에 들어온 건 다음 날인 8월 25일 새벽이었습니다. 오는 길이 많이 정체됐을 뿐만 아니라 정문 앞에서 탈레반이 통과를 안 시켜줬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피가 마르는 시간이 계속됐습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실제로 현지인 조력자들과 그 가족들은 열다섯 시간 가까이를 에어콘도 나오지 않고 바깥도 보이지 않는 버스 안에 갇혀 아무 것도 못 먹고 물도 마시지 못한 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김 공사참사관은 당시 IS의 테러 첩보를 입수한 상황이라 한시라도 빨리 작전을 진행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게 된다, 안 된다 생각을 안 해본 것 같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돌이키기조차 싫을 만큼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카불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김일응 공사참사관의 가족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그의 활약을 알게 된 것은 뉴스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는 “4년 전에 아내와 사별해서 딸만 둘인데 대학생과 중학생인 아이들한테는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이야기하면 걱정할 게 뻔했거든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다 컸으니 내가 들어가겠다”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송작전에 앞장선 김일응 공사참사관은 여러 말이 필요 없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명색이 대통령임에도 저 혼자 살겠다고 국민들은 내팽개친 채 돈 보따리를 잔뜩 챙겨 들고 일찌감치 줄행랑을 쳐버린 쓰레기 같은 자도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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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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