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독자 혹은 여행전도사

그냥 푹 쉬었습니다. 아내가 오랜 공을 들여 얻어낸 우리의 ‘3박 4일 신혼집’은 잔디밭 하나를 사이로 바다와 맞붙어 있는 5성급(?) 워터프론트 원룸 스튜디오였습니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놓고 우리는 ‘물멍’을 원 없이 즐겼고 모처럼 단둘이 갖는 꿀(?)같은 시간도 만끽했습니다.

점점 징그러워지는 나이… 예순일곱 번째 제 생일을 맞아 아내와 저는 솔저스 포인트 (Soldiers Point)로 둘만의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아내 생일과 제 생일, 우리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등 1년에 최소 다섯 번은 꼭 갖기로 한 우리의 행복여행 프로그램 중 하나였습니다.

포트 스티븐즈 (Port Stephens)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솔저스 포인트는 우리가 추구하는 Healing & Relaxation과는 100퍼센트 딱 맞아 떨어지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동네였습니다. 돌고래 크루즈, 4WD 사막 투어, 모래썰매 타기, 낙타 타기 등 어지간한 액티비티들은 이미 오래 전에 해본 것들이라서 이번 여행에서는 모두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기는 좀 거시기(?)해서 매일매일 좀 유명하다 싶은 관광지와 더 넓은 바다를 찾아 나서기는 했지만 우리 집에서 바라보는 은빛 찬란한 물결로도 이미 충분한 휴식과 힐링 그리고 재충전이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명소와는 격이 참 많이 다른 이곳 사람들의 추천 명소들은 하나 같이 귀엽기만(?) 했습니다. Port Stephens Shell Museum이라는 거창한(?) 안내판을 보고 찾아 들어간 곳은 오래된 하우스 한 켠에 수천 아니 어쩌면 수만 개의 조개 껍질을 전시해놓은 곳이었습니다. 50센트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조개박물관(?)에는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한 노인 한 분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의미를 두고 소중히 여기는 이곳 사람들의 성향은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중 선셋 비치 (Sunset Beach)에서 마주한 노을은 실로 오랜만에 넘치는 감성과 낭만을 선사했습니다. 피쉬마켓이라고 해서, 소문난 굴 농장이라 해서 찾아가봤지만 하나같이 우리동네 생선가게보다도 작은 수준이라서 소리 없이 웃으며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낚시 스폿이라는 소문을 듣고 두 번을 찾아가 열심히 낚싯대를 던져봤지만 아주 작은 꼬맹이들만 야금야금 미끼를 훔쳐먹다가 재수 없는 녀석들 몇 마리가 끌려 나오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던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한두 시간을 즐기다가는 행복한 뒷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 그저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것에서부터 힐링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아주 드물게는 캠핑의 즐거움도 가지긴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우리는 자는 것, 먹는 것, 타는 것 이 세 가지는 편해야 한다는 여행철칙(?)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뛰어난 가성비도 늘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3박 4일 신혼여행(?) 중 삼겹살 바비큐, 중국식 스팀보트 훠궈, 생일기념 미역국과 특식 스테이크, 카레덮밥 등 다양한 음식들을 맛있게 즐겼습니다. 단 한번의 외식이나 군것질도 없이 모든 걸 아내가 준비해 가져간 겁니다. 저는 딱 한끼, 제 특기인 라면 끓이기로 아내의 정성에 보답(?)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맙고 컸던 행복은 제 생일 아침에 걸려온 페이스톡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 드려요!” 화면 저쪽으로 에이든과 에밀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찌질한 할배 생일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행복과 감사함과 소중함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여행은 결코 팔자가 좋아서 혹은 시간이나 금전적인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틈만 나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무리’ 정도는 해서 여러 곳을 많이 다닐 것을 권유하곤 합니다. “나중에, 다리 떨릴 때 말고 지금, 가슴 떨릴 때 다니라”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다음 행복여행은 아내와 저의 40번째 결혼기념일인 4월에 3박 4일로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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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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