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나의 첫사랑은 편지로 시작되었다. 1959년 태풍 사라 호가 한반도 남부를 강타했던 그 해 나는 진해만의 넘실대는 물결을 벗삼아 청운의 꿈을 가슴에 안고 훈련과 학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늘 아리따운 J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린 서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J는 늘 화사한 표정의 아름답고 청순한 소녀였다. 미소 지을 때는 얼굴에 예쁜 보조개가 나타났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한 다섯 번쯤 편지를 보냈을 때 답장이 왔는데, 그것은 그녀의 친구로부터 온 것이었다. 내용은 내가 보낸 편지로 J가 무척 행복해 하고 있으며 곧 답장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녀가 왜 친구를 시켜서 답장을 썼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로부터 열흘쯤 후 마침내 J의 편지가 왔다. 그때는 이 메일도 문자메시지도 그리고 카톡도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편지에 의존해야만 했다.

J가 보낸 편지들을 추억해본다. 1959년 가을… 하얀 종이 위에 여러 장 예쁘게 써 내려간 편지. 맞춤법 하나도 틀리지 않고 예의를 갖추어 쓴 이 편지를 받고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 첫 문장은 낙엽이 구르고… 그 다음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우리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편지를 교환했다.

내가 보낸 편지엔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성난 불란서 군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불란서 혁명 이야기 등 온갖 멋진 구절들을 다 동원한 기억이 난다. J는 편지와 함께 경주로 졸업수학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들을 많이 보내왔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J가 제일 예뻤다. 진주 남강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도 보내왔는데, 나는 그 옛날 왜장을 품에 안고 푸른 강물로 뛰어내렸던 기생 논개가 J 처럼 미녀였을 거라고 상상해보았다.

완전무장을 하고 구보로 멀리 천자 봉을 오르며, 가까이는 뒷산 망해 봉을 오르며 그녀를 생각했고, 진해 만의 푸른 물결을 가르며 해양훈련을 받을 때도 J를 생각했다.

싱그러운 신록 속에 가졌던 우리의 첫만남엔 아카시아 향기가 아른아른하고 뒷동산에 함께 앉았던 작은 바위와 그녀가 불러주었던 솔베이지의 노래가 함께 어우러져 추억된다.  J는 드디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1960년 4월… 마산에서 학생의거가 일어나고 서울에선 젊은 대학생들이 자유당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일어섰던 4,19 의거. 아직도 기억나는 J의 편지. – 젊은 피가 이겼어요.

마음과 마음을 나누면서 우리는 편지를 통해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물결에 담아 진해만으로 흘려 보내 K에게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라고 썼다. 어쩌다가 서로 연락이 끊어진 때도 있었다.

J의 애절한 편지는 나를 슬프게 하기도 했다. -당신의 손길이 임한 편지마저 없으니 미칠 것만 같아요.

1963년 가을… 오랜 이별 끝에 받은 J의 편지. 그녀는 이미 중견교사가 되어있었다. 잊으셨으리라 생각되지만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보냅니다.  너무나 반가웠다. 나는 즉시 답장을 보냈고 그녀가 다시 두툼한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 속에는 예쁜 단풍잎 하나가 들어 있고 그녀는 이렇게 썼다. 당신을 생각하며 이 단풍잎에 키스하여 함께 보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때 J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통곡했다.

1965년 하얀 겨울 운명은 우리를 다시 갈라 놓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주고받은 편지는 아마 500여 통은 될 것이다. 좋은 가정을 꾸미고 행복한 할머니가 되어 아직도 살아 있기를… 딱 한번만 보고 싶어요. 내 사랑 J.

 

 

글 / 케네스강 (글무늬문학사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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