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슨 살리기

죽는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사는 것이 장난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존슨씨를 싣고 떠나는 앰블런스를 한 동안 지켜보다 등을 돌렸다. 누가 끌어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존슨씨의 우체통으로 다가갔다. 한 통의 편지를 꺼내 겉봉을 읽는데 동료 마이클이 다가왔다.

봉투에는 존슨씨의 정령으로 짐작되는 미국 캘리포니아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 존슨씨가 국제전화요금을 지불하지 못해서 도움을 요청했던 일들이 기억났다.

갑자기 마이클이 내 옷자락을 당기며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아직 남아 있는 두 고객의 방문을 마치려면 먹어 두어야 한다는 표정으로. 화투판을 벌여놓고 먹고 마시는 장례식장을 떠올리며 도시락을 열었다. 자선기관 활동 57년차인 마이클은 삶은 계란을 3년차인 나는 찐 고구마를 택했다. 각각 계란과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경쟁하듯 목구멍으로 우겨넣었다. 우리는 목이 메어 서로의 등을 쳐주며 눈물을 흘렸다. 충격 받은 마음을 달래며 살아 있는 고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내가 처음 존슨씨을 만났을 때 그는 29세였다. 삼년 전 그날은 내 환갑이었다. 그렇게 만났던 그가 운명했다. 나는 곰곰 생각에 빠졌다. 그가 운명의 피와 맞서 싸우지 못한 죽음을 자살이라고 해야 할까, 타살이라고 해야 할까? 죽은 존슨씨에게도 말 못할 어떤 이유 하나쯤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뒤 늦게 도착한 그의 정령이 보낸 편지에 그 해답이 적혀 있었을지도. 하지만 편지는 봉인된 채 그와 함께 불속으로 던져졌다.

 

“강제로 의사에게 끌고 가서라도 살렸어야 했어.”

“감옥에라도 보낼 수 있었다면.”

“하다못해 정신병원에라도 감금을 시켰더라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비보를 들은 백인 회원들이 뒤늦게 한탄하듯 한 마디씩 뱉어낸다. 해병대에 입대라도…… 나는 얼버무린다.

존슨씨를 방문하고 난 후면 매번 방문기록을 써야 했고 또 회원들에게 발표해야 했다. 그때마다 회원 중 누구는 키득대고 또 누구는 인상을 찌푸렸다. 회원들은 존슨씨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그가 요청한 방문일과 내 활동하는 날이 겹쳐서, 일부러 피하지 않는 한 나는 매주 그를 만나야만 했다.

내가 자선기관의 활동을 시작한 첫 날, 동료 회원과 한조가 되어서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집안에서 우레 같은 노래가 터져 나왔다. 노크를 해 보았자 소용없었다. 전화를 걸어보았고, 현관문을 발로 찼으며, 막대기로 창문을 두드리다, 손차양을 만들어 창문 틈으로 집안을 엿보았다. 우리의 방문을 알리려고 땀을 흘리며 시도를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막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우레가 멎고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둘둘 말린 이불무더기 같은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체중을 견디지 못한 그는 곧장 소파로 돌아가 철퍼덕 주저앉았다. 쓰레기통을 뒤집어 엎어놓은 것 같은 집안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무지막지한 악취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순간 까만 씨앗이 내 눈을 찔렀다. 코를 틀어막고 있던 왼손을 내렸을 때 생쥐가 보였다. 반짝반짝 하는 씨앗들이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 힐끔거렸다. 헌옷 가지로 틀어막아 놓은 수없이 많은 벽의 구멍에서 반들거리는 생쥐의 눈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왔다. 존슨씨는 왜 무엇 때문에 그 많은 구멍을 뚫어야 했을까. 암막커튼이 쳐진 음침한 원 베드룸 정부주택에서 존슨씨와 쥐들은 나름 운명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시간을 쪼개어서 자선단체 활동을 하는 나는 그들을 밝은 태양아래 끌어내고 싶어 주먹을 쥐었다.

“배가 고파 죽겠어요.”

존슨씨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기다리는 식품구입카드를 전하자 그가 몸을 일으켰다. 육중한 체중을 굴려서 현관문을 열고 눈짓을 보냈다. 자신의 영역에서 나가란 신호라고 마이클이 내 팔을 툭 쳤다. 필요가 충족되었으니 더 볼일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튕겨지듯 나온 나는 폐 가득 공기를 말아 넣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거기까지였다.

“150kg은 되겠지?”내가 말했다.

“더 되지 않을까?”동료가 답했다.

오래 전 읽은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가 떠올랐다. 그는 상대방의 제안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라고 응대한다. 그는 심부름을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일을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자신의 자리를 옮기지 않는 편을 택하고…… 안 먹는 편을 택하고, 마지막으로 안 사는 편을 택한다.

요약해 보자면 그 소설의 마지엔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사서(死書)라! 사자(死者)처럼 들리지 않는가? 날 때부터 창백한 사람이, 그리고 어쩌다 운이 나빠서 사서(死書)를 분류해 불태우는 직업에 종사하다 절망을 익히게 되었고, 암울한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한.

선택은 개인의 자유다, 의식적이든 무의식 적이든. 바틀비와 존슨씨는 각각 3차원 도형의 꼭짓점과 밑면을 상징하는 상반된 몸피를 만들어 운명했다.

존슨씨는 의사를 안 만나는 편을 택하고, 밖으로 안 나가는 편을 택하고, 자신만의 정령과 소통하는 편을 택하고, 주먹으로 벽을 쳐서 구멍을 뚫는 행위를 택하고……. 노동을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체중 관리를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생명을 안 지키는 편을 택했다.

방문 회수가 늘어갈수록 그의 체중은 눈에 띄게 불어났다. 치즈와 화이트크림과 머드케이크와 감자튀김을 좋아하는 그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깊어갔다. 꺼져 가는 눈빛을 에워싼 죽음의 그림자를 볼 때마다 우리는 의사를 택하라고 권고했다.

쉭, 쉭, 쉭…… 그의 기관지가 뿜어대는 증기기관차 엔진소음도 속도를 높여갔다. 그것은 육중한 비계에 짓눌린 장기들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로 들렸다. 매초 약 6조(兆)가지의 임무를 맡은 그의 몸 세포 하나하나가 노동을 안 하는 편을 택할까봐 나는 가슴이 철렁철렁했다. 존슨씨의 거대한 육체에 총알이 박히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아무런 감각이 없을 것 같았다.

“이자를 당신의 이름으로 새롭게 하소서!”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 그의 정령을 향해 기도 바쳤다.

시간은 인간을 삼켜버린다. 그의 몸무게가 200Kg에 육박했다. 회원들은 배가 고프다고 외치는 그에게 더 이상 식품구입카드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천국의 법리적 심판은 우리를 자살방조로 기소할 거라고. 나도 모르게 잠시 킬 킬 킬, 웃음이 터졌다. 노가다(공사장노동)를 하고 나서 받는 전표(錢票)가 아닌 무료 식품구입카드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회원들은 그를 살릴 수 있는 기발한 카드를 꺼냈다.

강제로 의사에게 끌고 가자. 감옥에라도 보내자. 정신병원에 감금하자. 국적을 변경해서 해병대에 지원 시키자. 살리고 볼 일이었다.

시지프스 신화를 빌려서 말해본다면, 시지프스는 커다란 바위를 끊임없이 산꼭대기까지 굴러 올려야만 한다. 다음 날이면 바위는 어김없이 다시 땅에 떨어져 있고. 누가 지옥의 무익한 노동자를 자처하겠는가? 권태롭고 희망 없는 나날에 바치는 무거운 형벌을.

앰블런스로 옮겨지는 그의 주검위로 처량한 구슬비가 내렸다. 심장마비로 숨을 멈춘 그의 마지막을 보게 될 기대를 나는 안 택했다. 그의 영혼을 떠나보내며 흔들던 손에 갑자기 힘이 풀렸다. 그 순간 그에게 주려고 들고 있던 식품카드가 땅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눈시울이 시큰해진 것은 3년의 발품 때문이었다.

존슨씨는 갔다. 날마다 산꼭대기까지 굴러 올려야 할 바위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일까, 형벌일까?

 

테리사 리

(소설가·단편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문학동인 캥거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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