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에핑 로드, 모닝 빵을 사러 가는 길에

느리게 활공하는 새가 보였다

어떻게 알았을까

셔터 스피드 60분의 1로 잡은 안개 속 아침

겨울 햇살만큼 헐렁해진 거미줄에 걸려

깊이를 몰라도 찍히는 기분들

길 끝을 더듬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빵집 풍경에는

그리움이 닿는 곳에서 더 발광하는 불빛이 있었다

이름을 갖지 못한 신생아처럼

이름 없이 진열된 밀의 분신들

속을 알 수 없는 당신의 데칼코마니

익숙한 것이 함정일 때가 있다

은밀하게 들어간 팥과 녹두는

눈먼 입술이 닿기에 너무 닮은 사랑이었을까

크루아상 데니쉬 바게트 그리고 모카

속을 아는 빵만 바구니에 담는다

둘로 갈라야만 걸어나오는 당신은 이제 그만

굽지 않은 밀반죽 속에 모셔 두기로 한다

당신 속을 보려고 팥 빛이 된 심장이

오늘 아침 내게 시킨 일이었다

 

유금란 (수필가·시인·문학동인 캥거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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