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일탈?!

마음 여린 아내로서는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탈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내가 내 손해 볼 짓을 왜 해? 미쳤어? 누구 좋으라구?”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아내가 웃으며 저에게 했던 얘기입니다.

그때 남편에 대한 반항(?)과 시어머니에 대한 항의(?)의 도구로 아내는 ‘운동’을 택했던 겁니다. 마침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 대규모 수영장과 GYM이 있어 아내는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안 일까지 모두 마친 후 아내는 운동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서곤 했습니다. 몇 시간을 그곳에서 땀 흘리며 운동과 수영을 한 후에는 같은 아파트 또래친구들과 커피도 한잔 즐기는 것으로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아내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본격적으로 수영과 운동을 시작한 건 1994년 초입니다. 그전까지 아내는 소심한 A형답게(?) 남편과 아이들 챙기고 시어머니 공경하는 게 전부인 착한 바보로 지내왔습니다.

37년째 결혼생활을 해오는 동안 우리가 해본 부부싸움다운 부부싸움은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때 터졌습니다. 문제는 1993년 연말… 종무식을 마치고 일찍 집에 와서 가족들과 시간을 갖기로 했던 약속을 일방적으로 저버린 저에게서 시작됐습니다.

순전히 우리의 노력으로 마련한 서른두 평짜리 신도시 새 아파트에 입주한 기쁨과 새해를 맞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던 아내를 밤늦게까지 후배기자들과의 예기치 못했던 술자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제가 요즘 말로 ‘빡치게’ 만들었던 겁니다.

밤 열두 시가 다돼 집안으로 들어서는 저를 아내는 싸늘한 표정으로 대했고 우리 방에서 티격태격하는 동안 어머니가 싸움에 끼어들었습니다. 사전 연락도 없이 약속을 깨고 늦게 들어온 아들의 잘못이 명백했음에도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잖느냐!”며 아들 편을 들고 나서는 바람에 결국 큰소리가 났고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졌습니다.

다음날부터 순하디 순했던 아내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자신의 시간들이 말할 수 없이 화나고 억울했을 것이고 회의 또한 많이 생겼을 겁니다.

운동과 수영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달래는 것에 더해 소심한 아내의 복수(?)가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도 집 근처의 킴스클럽이나 까르푸 같은 24시간 대형쇼핑센터로 저를 끌고가 이것저것들을 쇼핑 카트에 가득 담는 일이었습니다. 딱히 뭐라 할 입장도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푸는 아내가 내심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뭘 하든 열심히 하는 건 우리 둘이 가진 공통점입니다. 요즘 매일매일 GYM에서 운동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내를 보며 문득 25년 전의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그때 그렇게라도 화를 삭이며 인내해냈기에 망정이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 들었더라면….

“이거 전부 다 남의 살이야. 여기도 빼고 저기도 빼고… 얼른 빼야 돼. 지금은 완전 아줌마 몸매야.”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에 몰두하는 아내를 향해 저는 속으로 이렇게 얘기하며 웃습니다. “야, 임마, 아줌마 몸매라니…. 손주를 둘이나 가진 할머니가 그 정도면 감사할 일이지.”

오랫동안 수영을 계속해온 아내의 주특기는 접영입니다. 한국에서는 생활체육대회 대표선수로 나가 메달도 여러 개 땄습니다. 그때는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아내의 접영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하곤 하는데 가끔씩 훔쳐보는(?) 아내의 접영에서는 여전히 파워가 넘칩니다.

무엇보다도 건강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요즘… 25년 전 저의 찌질함을 운동을 통해 승화시켜준 아내가 새삼스레 고맙게 느껴집니다. 제가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더 잘해야 할 충분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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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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