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 가면

시드니는 딸 내외가 20년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대충 1~2년에 한번쯤 딸아이를 보러 가곤 한다. 느닷없이 도지는 울적해지는 ‘마음 병’도 토닥거릴 겸, 딸아이를 만나러 간다는 기쁨과 함께 훌쩍 나서곤 한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치솟아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을 보노라면 나는 아이처럼 즐겁다. 낯선 땅의 낯선 사람들, 거리들, 이름 모를 새들, 그리고 우듬지가 보이지 않게 높게 뻗은 나무들은 나를 설레게 한다.

시드니 사는 딸 내외는 슬하에 자식이 없다. 오랫동안 저희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해봤지만 결국 단념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무자식상팔자’ 라면서 억지 위로를 하지만, 자식을 키워보지 못한 딸애는 무자식이 상팔자인지 하팔자인지 모른다.

다만, 아이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를 듣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소원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단출한 식구 때문인지 딸네 집은 고요한 산속 암자 같다. 동네 또한 조용하기 그지없다.

딸네가 사는 동네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기차역이 있다. 급행열차는 지나가고 완행열차만 쉬어 가는 곳이다. 고국의 한가로운 간이역을 닮았다. 기차역 간이 의자에 딸아이와 함께 앉아 따스한 햇살을 어깨로 받으며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타고 갈 전동열차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이따금 화물열차가 위쪽 굽어진 철길을 돌아 나온다.

화물칸을 길고 길게 꼬리처럼 달고 지나가는 열차를 보고 있노라면 눈앞이 어른거리면서 어린 시절 고향의 검정 화물기차가 지나가는 듯한 환영에 빠지기도 한다. 한적한 간이역, 따스한 햇살, 곁에 있는 딸아이의 조그마한 손, 느릿느릿 지나가는 화물열차는 나를 눈물 나도록 편안한 고요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아이가 없는 딸애는 일하러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딸네 집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딸애와 함께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 공원 벤치에 앉아 달아나버린 세월을 추억하기도 하고, 동네 마켓에 들러 맥주를 사다가 마시기도 하고, KFC에 들러 ‘치킨 버거’와 콜라를 주문해 먹기도 한다.

그럴 때도 늙은 애비 손을 놓지 않고 곁에 붙어서 살아왔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쉴새 없이 종알거린다. 얼마나 대화에 목마르고 굶주렸으면 그럴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해질 무렵 제 남편이랑 직장에서 돌아오면 딸 내외와 나는 식탁에 둘러 앉아 그때 분위기에 맞게 와인, 막걸리, 소주를 마시면서 끝이 없는 대화의 광장을 헤맨다.

딸아이가 일을 쉬는 휴일에는 테니스장을 찾아간다. 폴짝폴짝 뛰던 어린 시절 쥐어 주던 라켓을 어느새 마흔이 넘어버린 딸아이에게 다시 쥐어주고 그때처럼 테니스를 가르친다. 너무 오랜 세월이라 공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 줄 알았는데 잘도 맞춘다.

공을 던져주는 건너편에서 딸아이가 받아 치는 테니스 공은 푸른 하늘로 환희처럼 솟아오른다. 고국을 떠나 자기만의 삶에 파묻혀 지독한 에고이즘에서 벗어날 줄 모르던 애비 곁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던 딸아이가 멀고 먼 세월을 돌아 다시 애비 앞에서 라켓을 휘두르며 즐거운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럴 때면 애비는 가슴으로 운다.

주말에는 딸, 사위, 나 셋이서 쇼핑몰에 간다. 딸아이는 한 주일 동안 먹고 마실 음료와 식재료와 사용할 생필품들을 이곳 저곳 돌면서 고른다. 사위와 나는 성실한 짐꾼이 된다. 즐겁고 신나는 쇼핑이 끝나면 카페에 들러 제 나름대로 즐기는 커피를 시켜 마시며 떠든다.

늙은 애비가 시드니에 머물면 셋만의 변하지 않는 주말 패턴이지만, 늙은 애비가 시드니를 떠나면 저희 둘만의 변하지 않는 주말 패턴이다. 함께 먹고, 함께 마시고, 함께 얘기하고, 함께 웃는 하루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없어도 딸 내외는 행복하다. 나는 시드니에 있으면 외로움과 한숨이 줄어든다.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다. 가족도 제각각 나름 바쁘다. 함께 쇼핑을 하고 먹거리를 챙겨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를 이야기하는 일상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제 방식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사람들은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점점 잊어가고 있다. 그대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Previous article라이드-종로 우호도시 관계 체결
Next article그 여자의 술타령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