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운전사

코로나19 시대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시드니에서 모든 승객들은 버스에 승차하면 탭 보드에 오팔카드를 접촉 (Tap)해야 한다.

현금이 충분하면 ‘띵~ㅇ!’ 돈이 부족하면 ‘띠~옹!’ 엉터리카드는 ‘위~위~위~!’ 소리가 난다.

모든 운전사들은 무임승차 승객을 즉시 알 수 있다.

그들 (약 10%/일)은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시치미를 떼고 여유롭게 내 앞을 통과해 버스 뒤쪽으로 들어가 앉아버린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인스펙터 일이라 모른 척한다.

아는 척해봐야 득 될 것도 없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하루 종일 반복되고 누적된다는 점이다.

 

멀리 버스 정류장에서 승객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버스를 세우고 문을 열자 그제서야 핸드백을 뒤져 오팔카드를 찾기 시작한다.

기다리다 못해 그냥 타라고 말했다.

우물우물 쭈뼛거리며 승차하더니 탭 보드 앞에서 또 핸드백을 뒤진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찾으라고 말하니 말없이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결국 탭을 안 하고 그냥 내렸다.

1초면 충분한 승차에 1분이 낭비됐다.

종점에서 턴 오버 (Turn Over) 시간은 5분 정도인데 이런 승객 4~5명이면 휴식시간이 날아간다.

이걸 보충하려 약간 서두르는 운전을 하게 된다.

예민한 승객들은 난폭 운전했다고 회사에 전화해 항의 (Complain)를 했다.

입사초기엔 퇴근도 못하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한 시간 이상 답변서를 작성 (영작)해 제출해야만 했다.

무심한 승객이 주는 스트레스는 항상 함께했지만 이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선 감당해야 했다.

 

13 여 년 전, 시내버스 운전을 시작하면서, 국민소득 6만불 선진국인 시드니에서 ① 행선지 확인 후 ② 현금을 받고 ③ 거스름돈을 주고 ④ 영수증을 발행하며 ⑤ 요금시비에 ⑥ 안전 (정시)운전까지 해야 하는, 믿을 수 없는 이 멍청한 시스템이 그저 놀랍고 기가 막혔다.

한국에서 신용카드 하나로 전철과 시내버스 환승까지 하면서 현금 필요 없이 살다가 ‘후진국에 이민 와 손해 봤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그러다 3년 전쯤 이었나? 오팔카드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요금시비는 이제 없겠구나’ 했는데 많이 변하지 않았다.

현금승차, 몇 번씩 탭을 해야 겨우 통과하는 둔감한 시스템 그리고 공짜승객이 더 늘어났다. 전철과 달리 이동하는 버스의 오팔 탭 (Opal Tap)은 너무 자주 오작동이 발생됐다.

더욱이 코로나19로 현금승차가 없어지면서 공짜승객이 더 많아지는데 고치거나 바꿀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20년 전, 한국의 전철과 버스의 시스템에서는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오작동 시스템…

새로운 스트레스가 증폭되어 갔다.

 

은퇴 후 어느 날 타운 홀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며 정말 깜짝 놀랐다.

한국의 중심지역 버스정류장처럼 도착예정 실시간 중계판 (파라마타, 뱅스타운, 리드컴, 서더렌드, 허스트빌… 등엔 없는 판)이 있는 것이었다,

모든 버스엔 에어컨이 있었으며 오팔 탭 (Opal Tap) 시스템 또한 에러 없이 매우 빠르고 신속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결국 내 직업의 스트레스엔 ‘컴퓨터시스템과 버스 배정’에 지역차별이 주요원인이라 느껴진 것이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일해 온 나로선 놀라울 뿐이었다.

만약 한국에서 종로와 변두리 중심지역 (일산, 용산, 구로 등)의 정류장 시설과 버스 종류가 다르다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리는 등… 아마도 난리(?)가 발생했을 것이다.

 

공공버스의 운영정책에 책임 있는 정부 (무심한 관리)에 항의하는 걸 난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러나 버스가 몇 분만 늦거나 덜컹거리거나 에어컨이 없어 땀을 뻘뻘 흘리거나 오팔 탭이 안되어 몇 번씩 실랑이를 하거나 요금불만 등이 있으면 운전사에게 분풀이하듯 험악한 항의를 한다.

상시 입(퇴)사와 1년 365일 운전자 모집 직종의 원인이다.

영어가 유창한 호주 운전자는 이제 소수이고 채용도 기피 (영어 잘해봐야 손님과 관리에 다툼만 늘어남)한다는 느낌이다.

영어를 잘못하니 얼마나 조용하고 편했을까? 그러니 기회가 왔었고 내 나이 *58세에 취업하여 13년 만에 9% 고참으로 은퇴할 수 있었다.

“너 영어 할 줄 알아?” 하는 비아냥과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던 건 내 수준 (나이와 초보영어)에는 감지덕지한 준공무원의 안정된 보수와 근로조건 그리고 노후준비가 가능한 직업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지금 현실이 됐다.

 

*58세_한국 (시내버스 정년은 55세), 호주 (정년 없음)

 

 

글 / 정귀수 (글벗세움 회원·전 버스운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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