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라도 곧 날 것만 같은 매캐한 냄새가 의자 밑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치 기계 혹은 플라스틱이 타 들어가는 것 같은 역겨운 내음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전신을 휘감는다. 이러다가 차가 폭발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정수리를 한 대 꽝 때리고 지나간다. 동물적인 직감으로 위험을 느낀 나는 차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도저히 이대로 계속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운전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남편은 저만치 눈앞에 보이는 휴식처에서 잠시 쉬어 가자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앞 바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차 한대가 우리 뒤에 바짝 주차하더니 한 부부가 밖으로 나온다. 왜소하지만 야무진 풍채가 고령이 된 그의 나이를 무색하게 했고 펑퍼짐한 부인은 마치 세상 근심이 하나도 없는 듯 밝아 보였다. 불안한 에너지가 그들에게까지 느껴졌는지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뉴질랜드에서 전문적인 경마 기수를 하다가 은퇴하여 타스마니아에 건너와 여행을 즐기고 있는 부부라고 했다. 딸은 커서 멜번에 살고 있고 이제 노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단다. 다시 뉴질랜드에 돌아가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또 다른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웃으며 말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금, 그에게 일은 더 이상 돈이 목적이 아닌 듯싶었다. 순수한 노동이 주는 즐거움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상기된 얼굴에서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이 겹쳐졌다. 타스마니아 주정부가 여행 기반 사업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공공화장실에 불만을 내비쳤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하나만 있으면 뭐하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그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노하우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캠퍼밴 (campervan) 운전에 초보인 남편에게 꼭 필요했던 정보들이었다. 내리막길에서는 저속 기어로 바꾸고 브레이크는 지긋이 밟는 게 아니라 스텝으로 여러 번 짧게 눌러 주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차 바퀴에서 열기가 수그러들 때까지 쉬어 가라는 당부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인생 선배의 주옥 같은 경험담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사무치게 느낀 순간이었다.

타스마니아 서쪽 땅끝 마을 (The Edge of the World)을 가는 길에 또 다른 수호천사를 만났다. 안락한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라 각오는 했건만 타스마니아의 거칠고 구겨진 서쪽 (Wild West) 길을 가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인간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구불구불 산 고개를 셀 수도 없이 넘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고개가 반복 되자 신기한 자연에 흠뻑 취해 있던 여행의 흥분은 긴장감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자갈길 옆으로는 고대 밀림 속에서 볼 수 있는 야생 식물들이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모래사막과는 다른 이 황량한 대지에서 겪는 두려움. 수많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광활한 공간에서 마치 고아가 된 듯한 불안감의 농도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공포의 감정이었다. 이 순간 우리가 사라진다 해도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것만 같은 존재의 위기감…. 약 한 시간 전 두 갈래 길에서 도로 사인도 여러 번 확인하고 이 길이 분명히 맞을 거라고 신중하게 선택했건만 지도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르게 길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구글 지도도 볼 수 없고 도로 사인도 없는 이 막막한 오지에서 우리는 길을 잃은 것임에 틀림 없었다. 바로 그때, 비좁은 언덕길을 내려오자 반대편 쪽에서 차 한대가 순간 나타났다. 우리가 지나갈 수 있게 조심스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 이 벽지에서 동물이 아닌 사람을 만난 반가움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고마웠다. 우리의 목적지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곧 포장된 도로가 나올 것이라는 말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려고 기다려 준 천사였다. 주뼛주뼛 선 머리카락들이 서서히 내려앉고 움켜 쥔 손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때면 우리가 만났던 수호천사들이 떠오른다. 꼭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준 그들의 조언으로 우리는 남은 여행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 해본 캠퍼밴 여행길에서 그들을 만난 건 생각해볼수록 행운이었다. 인생길을 가면서 누구에겐가 수호천사가 된다는 것은 귀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그 동안 누구에게 수호천사가 되어졌을까? 앞으로 나는 누구를 위한 수호천사의 부름을 수행할 수 있을까? 부모님이 타인에게 베푼 선한 행동들로 인해 자식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수호천사들이 나타나 도움을 준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나의 부모님도 많은 좋은 일들을 남과 나누며 살아 오셨음이 틀림없다.

타스마니아 2주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니 바쓰 해협 (Bass Strait)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해변의 파도 소리도 뒤따라 들어온다. 해변에서 줍던 크고 작은 조약돌들, 발을 간지럽혔던 보드라운 모래사장 그리고 그 기억들 속에 활짝 웃으면서 행운을 빌어주던 수호천사들의 얼굴도 함께 반짝거린다.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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