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는 날

60년 대에 국민학교 (초등학교)를 다녔다. 1년 에 두 번 봄 가을로 소풍이 있었고 한 차례의 운동회가 있었다. 소풍은 걸어서 2 시간 정도 후에야 도착할 수 있는 ‘박씨 묘’로 자주 갖던 것으로 기억난다. 왕릉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지만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분묘보다2-3배 되는 묘가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진 석조물들과 함께 몇 기가 있었고 주위를 큰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렀으며, 그 소나무 가지가지마다에 화장지가 걸린 것처럼 백로들이 떼를 지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나에겐 태어나서 조형 예술과 동물 생태계를 동시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분묘 형식을 통한 지방역사 연구나 지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방의 사회적 계층 구조를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었고… 먼 훗 날 그 박씨 집안이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로 인해 졸지에 대통령 자리에 잠시 엉거주춤 앉았던 최규하 전 대통령과 인척관계라는 정도가 그 장소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 지점이었다.

 

사실 당시 소풍은 엄청 흥분되는 행사였다.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경험하고 있었겠지만 소풍 전 날은 잠도 잘 이루지 못할 정도였으니깐… 어머님이 챙겨주시던 소풍 백에 들어가는 점심과 간식, 음료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소박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보다 내용물이 더 충실한 김밥, 카스테라, 사과 몇 개, 그리고 칠성 사이다 한 병, 그리고 제과점에 산 팥빵과 곰보빵 그 정도였다. 그걸 어깨에 짊어지고 학교 운동장에 소집한 다음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순전히 도보로 목적지인 박씨 묘까지 걷는 것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2시간 정도 소요되었던 것 같다. 소풍 가는 당일 아침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형과 교사들까지 얼굴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흥분되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가지만….

 

학교에서 출발하여 1시간 정도가 지나고나서부터는 온통 주위에 논밭만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곳을 통과하게 된다. 특히 가을소풍이라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고개를 숙인 벼 이삭으로 가득 채워진 논이 양 옆으로 있는 시골 길을 통과할 때는 어린 나이임에도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농부의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에 전염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는 도중 가끔 대열에서 이탈하여 벼 이삭 사이 사이에 숨어있는 메뚜기를 잡거나 논물 속에서 빠른 동작으로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올챙이 새끼들을 보면서 놀라움과 함께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평소에도 늘 보던 그 청개구리, 그 미꾸라지, 그 호랑나비, 그 호투 잠자리였지만, 소풍 가는 날에는 이 모든 것들이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얼굴을 하고 신비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 듯 했다.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까!

 

도착지는 멀리서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노송 가지에 앉아 있거나 그 주변을 큰 날개를 너풀거리며 날아다니는 백로 때문이었다. 오직 그 장소에만 백로들이 살고 있었다. 물론 가끔 그 보다 더 높은 하늘에는 한 두 마리의 매가 큰 원을 천천히 그리며 선회하고 있기도 했다. 잘 다듬어진 잔디, 그리고 그 위로 지천에 떨어져 있어 발목까지 빠지는 푹신한 솔잎과 솔방울들 그래서 이제는 좀 더 가까이 다가온 백로들, 그 흰 날개와 단단한 부리와 가늘고 긴 다리 그리고 보숭보숭한 갈색 털로 뒤덮여 있는 새끼들이 어미로부터 벌레를 받아 먹는 모습들이 마치 손을 뻗치면 바로 닿을 것 같이 지척에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제가 하얀 사제복을 입고 그 아래 소풍온 학생들과 학부형 그리고 교사들 심지어 학교 운동장에서부터 이곳까지 따라온 사진사들과 잡상인들 위로 축복을 하는 듯 했다.

 

그렇다. 유년 시절 소풍은 축복의 시간이었다. 먼 훗날 도시락을 쌀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서 그 즐거운 소풍을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30년 후 처음 참석한 동창회에서였다. 물론 그 친구는 지금 부동산 부자가 되어 박씨 묘 일대의 땅을 다 사고도 남을 자산가가 되어있기는 하지만… 음지가 양지가 된 셈이다. 그러나 그 신흥 양지 아래서 또 어떤 새로운 잊혀진 어린 음지들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최무길 (캥거루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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