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바람

“한 마디로 답답하지요.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마스크도 벗고 사회적 거리 두기도 사라졌지만 경기회복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어요. 그에 더해 비가 계속 오는 데다가 홍수까지 나서 물가는 미친 듯이 뛰고 있고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기름값도 장난 아니게 오르고 있잖아요. 우리 교민사회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어려움투성이입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이스트우드, 스트라스필드, 리드컴, 실버워터 지역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전체적으로 거리에 사람도 많지 않고 왠지 조금은 처진 듯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됐습니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탄탄한 사업체를 운영하던 K 사장의 얼굴에도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표정관리, 아주 중요합니다. 사장이 맥이 빠져 있으면 직원들 사기가 떨어지게 될 테니 회사에서는 일부러라도 씩씩한 모습을 보이고, 집에서도 제가 우울해 있으면 집안 분위기가 다운되니까 안 그런 척 애를 쓰지요. (웃음) 하지만 진짜 여러 가지로 힘이 듭니다. 회사운영에 필요한 이런저런 비용들 내고 직원들 웨이지 맞추려면 등골이 빠집니다. 바보 같은 이야기이지만 저한테 이런 시간이 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요즘 사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K 사장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습니다. 코로나19한테 멱살을 잡힌 지도 2년을 훌쩍 넘어섰지만 아직도 그 괴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불경기의 그림자는 어둡기만 합니다. 이 같은 상황이 언제쯤 나아질지도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물론, 우리네 삶 자체가 새옹지마라고는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어디를 가나 밝고 환한 얼굴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벌이가 신통치 않으면 꼭 필요치 않은 부분은 안 쓰고, 어쩔 수 없는 지출은 최대한 아끼는 게 정답인데 이것만으로도 충분치가 않은 겁니다. 실제로 한국식품점이나 울워스, 콜스, 알디 같은 델 가면 믿기지 않을 만큼 크게 올라버린 물가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리터당 2불대를 훌쩍 넘어선 기름값 때문에 주유기를 쥔 손에서는 쥐가 날 것만 같습니다.

“집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해서 산행식구들 얼굴 보고 얘기라도 나누고 싶어 나오는 거예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도 트레킹을 거르지 않는 한 멤버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흉금을 털어놓으면 답답함이 조금은 가실 듯도 싶습니다.

아내와 저는 최근 얼마 동안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여러 차례 주어져 행복한 힐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더해 지난주 토요일 저녁에는 프레이저 아일랜드 여행을 앞두고 있는 여행팀 멤버들이 우리 집에서 번개모임을 가졌습니다. 한 가지씩 챙겨온 맛있는 음식들을 안주 삼아 우리는 밤 늦게까지 기분 좋은 술잔을 부딪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약속 있으신가요?” 일요일 아침, 리드컴 ‘찐친부부’에게서 온 카톡입니다. 전날 꽤 많은 술을 마시긴 했지만 기분 좋은 번개요청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맛있는 삼겹살 사서 다섯 시쯤 찾아 뵙겠습니다.” 그날 폭우를 뚫고 성사된 우리의 만남은 고마움과 행복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녁에는 모이기 좋고 놀기 좋은 우리 집에서 또 한 차례의 시끌벅적한 모임이 있습니다. 우리 산행팀 일곱 부부, 열네 명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삼겹살과 제비추리를 기본으로 연어회, 잡채, 도토리묵, 부침, 수박, 떡… 기분 좋은 음식다툼(?)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 먹지 못한 음식들은 나중에 조금씩 싸 들고 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만남은 십시일반 (十匙一飯), 조금씩 손을 보탬으로써 늘 기분 좋고 행복한 자리로 연출됩니다. 함께 음식을 준비해 즐겁게 지내다가 설거지를 비롯한 뒷정리까지 힘을 합쳐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고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2년 넘게 우리를 괴롭혀온 징글징글한 코로나19도 이제는 사라지고 지겹도록 쏟아지는 비도 그만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큰 욕심 없이 서로를 챙기며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새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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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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