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 가슴 따뜻한 세상

그 사람들은… 참 희한하게도 한결같이 ‘국민’을 찾고 ‘나라’를 들먹거리고 늘 ‘민주’를 거론합니다. 1990년 1월 22일에도 그랬습니다.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이 세 당이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앞의 두 당이야 뭐, 원래부터 군사독재에 뿌리를 둔 당이니 서로 합친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게 없었지만 반독재 투쟁, 민주주의의 피를 먹고 자라온 통일민주당이 그들과 한솥밥을 먹게 된다는 건 참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합방(?)을 놓고 ‘3당 야합’이라는 비판과 비난을 거세게 쏟아냈음에도 그 셋 중 한 사람은 그들이 민주자유당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구국의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표현도 썼습니다. 그는 거대괴물정당의 당 대표가 됐고 3년 후에는 꿈에도 그렸을 대통령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을 해야 합니다!” 소속의원들의 이의가 없으니 가결을 선언한다며 서둘러 의사봉을 내리치는 통일민주당 3당 합당 결의 임시전당대회에서 마흔네 살의 초선의원이 악을 쓰며 대들다가 장정들에 의해 들려나가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저에게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각인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3당 야합을 외로이, 끝까지 반대했던 그는 그 순간부터 가시밭 길을 자처했습니다.

저는 원래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했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원래 ‘정치인들은 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터였고 그 또한 정치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도 계속 이리 몰리고 저리 휘둘리고 급기야는 탄핵 위기에까지 처하고… 참 못나고 바보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못된 사람보다는 못난 사람이 훨씬 낫다’는 생각에 그는 꼭 들어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정권탈취를 위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람, 황당무계한 일에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붓고 스스로는 비리의 온상이 된 사람… 이런 못된 사람들은 법과 국민을 비웃으며 지금도 잘만 살고 있는데 못난 사람들은 왜 그리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나는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냥 그렇게 살 게 두지…’ 제가 종종 혼잣말처럼 되뇌는 말입니다. 지난주 토요일(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1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프로그램들이 여럿 방송됐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그는 자신의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가 오리농법 등 농사를 이야기하며 주민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였습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남녀노소의 사람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갖고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 게 두지… 못된 사람들….

2001년 9월 13일, 맨땅에 헤딩하기 식 빈털터리 호주 이민생활을 시작한 우리 다섯 식구는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며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늘 행복했습니다. 당장이야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영주권도 받고 돈도 벌면 된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네? 457비자인데도 아이들 학비 면제가 된다구요?”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일을 진행했습니다. 첫해에는 그런 혜택이 있는지도 모르고 1만불이 넘는 두 아이의 학비를 힘겹게 마련해 냈는데…. 너무너무 고마운 마음에 봉투에 1000불을 넣어 조니워커 블랙 한 병과 함께 건넸지만 바보 같은 그는 감사편지와 위스키만 받아 들었습니다. 공인회계사였던 그는 이후에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 몰라서 혜택을 못 받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발휘, 크고 작은 힘이 돼줬습니다.

어제(28일)는 또 하나의 바보 김희기 회계사가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 곁에 그런 착한 바보, 못난 사람들이 오래오래 함께 있어주면 사람 사는 세상, 가슴 따뜻한 세상은 좀더 가까울 수 있을 텐데… 왜 못된 사람들, 그 반대현상들만 계속되는지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속상함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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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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