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장사와 단골손님

플레밍톤 (Flemington)에서 배추장사를 하는 중국남자와는 삼십오 년째 단골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시장안팎의 모습과 배추의 종류가 다양하게 바뀌었어도 바짝 마른 체형의 그와 배추가게는 늘 똑같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그 집 배추만 고집한 건 그에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빚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사건은 내가 호주에 정착한지 6개월 되는 싸늘한 새벽에 일어났다. 일 때문에 나는 서둘러서 추운 새벽시장에 갔고 그 중 배추가 산처럼 쌓여 있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손을 호호 불며 주인으로 보이는 중국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배추를 주문하고 값을 치르기 위해 잔돈이 없어 오십 불을 건네주었다. 그 당시 배추 한 박스 값이 육 불이었다. 난 배추박스를 한쪽에 치워두고 잔돈을 받으려 기다렸지만 그는 잔돈을 줄 생각조차 안 했다. 한참 후 난 잔돈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고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이미 주었다고 반박하였다.

나는 잠바 주머니를 뒤집어 보이며 따졌다. 그도 질세라 입에 거품을 물고 더욱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바지 주머니까지 다 뒤집어 보이며 확인시켰지만 잔돈은 나오지 않았다. 난 거금 사십사 불을 안받고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 당시 시간당 팔 불 받고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에겐 매우 큰돈이었다. 싸움은 점차 크게 번져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난 빈 박스를 문 앞에 놓고 앉아 잔돈을 주지 않으면 안 가겠다는 의지와 확고한 행동을 보였다. 그 광경을 보고 지나가던 한국 아주머니까지 합세하여 힘을 실어주었고 완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입구에 앉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나 때문에 오던 손님들이 다 되돌아가기를 얼마 지나 결국 그는 고개를 흔들며 오십 불짜리 지폐를 내던지다시피 내 손에 쥐어 주며 배추를 다시 달라고 하였다. 그 순간 억울함과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돌려달라는 배추박스를 들어 그를 향해 힘껏 던졌다.

배추들은 사방으로 뒹굴고 난장판이 되었다. 배추포기가 작고 가벼웠기에 내 힘으로도 파괴력 있게 들어 던질 수 있었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여기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호주에서 가장 처음 배운 욕인 가운데 손가락 모션을 힘차게 올렸다. 그도 질세라 이내 가운데 손가락을 당차게 치켜 올렸다.

그 순간 난 이성을 잃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발이 하늘로 날고 있었고 쭉 뻗어 이단옆차기로 그의 허벅지를 강타하였다. 그는 무릎을 감싸 안았다. 이 전쟁은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그 상황들을 뒤로 한 채 냉정한 발걸음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회사로 갔다. 그는 나보다 더한 분통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며 중국말로 떠들었고 애꿎은 배추박스를 걷어 차며 싸움의 끝을 장식한 터였다. 정말 재수없고 불쾌한 아침이었다. 쇼핑도 못하고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함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일터에 도착하여 억지로 마음을 가다듬고 일이나 하자며 기계를 돌렸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뒷주머니에 무언가가 내 엉덩이를 찌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모터를 감는 중이라 기계를 당장 멈출 순 없었고 일이 끝나갈 무렵 다시 뒷주머니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궁금했던 무언가를 향해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그 순간 오 마이 갓! 그 속에서 배추를 사고 받은 잔돈 사십사 불이 잠들어 있었다. 짧은 순간 잔돈 받은 기억을 못하였고 난 엄청난 행동들을 한 것이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수습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니 어떤 방법으로 사과하며 돈을 돌려주나를 생각하였다.

뒷주머니를 뒤집어 잔돈이 나오는 장면을 재현하기로 했다. 그 당시 짧은 호주생활에 그 어려운 상황들을 영어로 말한다는 게 나에겐 먼 남의 이야기였다. 몇 번이고 연습해 보고 나서 다시 플레밍톤으로 향했다.

산더미처럼 높게 쌓여있던 배추는 다 팔리고 내가 던진 것으로 보이는 부서진 배추가 처량하게 한쪽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뺨이라도 때린다면 맞아주리라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하였다. 남자를 찾으니 부인인듯한 여자가 머리를 만지며 아파서 집에 갔다고 했다. 난 혼잣말로 “홧병이 난 거야” 하며 중얼거렸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스러워하는 나에게 찌그러진 배추박스를 가리키며 삼 불만 내라고 했고 난 그 배추상자를 들고 나왔다. 다음주에는 꼭 다시 와서 사과를 해야지 하며 상처투성이의 배추를 안고 집에 왔다.

이 사건을 남편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한 순간 치매환자가 되어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배추박스를 내리던 남편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좋은 배추 산다고 새벽에 나가더니 다 부서진 배추 주워왔나?” 하며 투덜거렸다. “삼 불짜리가 오죽해!”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오묘한 감정이 서로 교차하였고 남편은 눈치를 보며 배추상자를 안까지 옮겨주었다.

어느덧 이주가 흘렀다.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드디어 셋째 주 떨리는 가슴을 가다듬고 아침부터 준비한 불고기 점심과 오십 불이 든 봉투를 들고 그 가게로 갔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가게는 몹시 분주했다.

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크게 심호흡을 몇 번이고 했다. 오늘따라 그가 편안해 보였다. 그 남자한테 점심통과 봉투를 내밀었다. 그리고 정중하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가슴 속에 가득 차 있던 미안함이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 내렸다.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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