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어떤 누명 #6132022-07-23 18:03

어떤 누명

 

안 부장, 방금 사장님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포토샵 최신 버전이 하나 급하게 필요하시대요. 우리 사장님 성격 알죠? 다른 일 스톱하고 얼른 그것부터 찾아서 보내 드려요.”

 

그러고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월요일 이른 아침, 수화기 너머에서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김 이사, 내가 얘기한 프로그램 왜 여태 안 주는 거야?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잖아!”

 

얼른 송화기를 막고 안병길 부장에게 물었더니 아직 구하는 중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세상에! 일주일 전에 얘기한, 그것도 성격 급하기로 따지자면 교민사회 전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우리 사장의 지시를…. 강민철 사장은 성격이 워낙 불 같아서 평소에도 무슨 일이든 지시가 떨어지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것부터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일주일다시 전화기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김 이사, 내 말이 우스워? 그깟 것 하나 찾는 게 뭐 그리 어려워서 나를 2주일 동안이나 기다리게 해? 나는 모든 업무지시를 김 이사를 통해 내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건데 안 부장이나 김 이사나 모두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모양이야. 기다리다 지쳐 박진섭 팀장에게 얘기했더니 채 30분도 안 돼 구해서 보내주더군.”

 

분을 못 참아 소리소리 지르던 사장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안병길 그 친구 당장 짤라!”였습니다. 이사 지시, 사장 지시 하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그런 친구가 어떻게 고객들을 대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습니다.

 

속된 말로 한 번 찍히면정말 돌이키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후 사장은 매주 정기업무보고 때마다 안 부장 왜 안 짜르냐?”고 저를 추궁하곤 했습니다. “책임지고 잘 이끌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할 테니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해도 사장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한 동안 그렇게 사장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나가다가 그 일이 있고 세 달쯤 됐을 때 마침내 사장이 최후통첩을 했습니다. “김 이사, 대체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내가 안 부장 짜르라고 한 지가 벌써 언젠데 아직까지 그대로 두고 있어? 김 이사 안 부장한테 뭐 받아 먹은 거 있어? 아니면 김 이사부터 짤려 나가고 싶어?”

 

저도 그렇지만 안 부장이 현재 457비자 상태라서 회사를 나가게 되면 당장 비자가 문제 됩니다. 게다가 안 부장한테는 부인과 어린 아이들도 둘씩이나…” 사장이 제 말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그런 무능하고 무책임한 놈 앞날까지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해? 다 필요 없고 당장 내일부터 회사 나오지 말라고 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무렵 안병길 부장 부인이 한 모임에서 우리 남편이 일도 너무너무 잘 하고 회사에 기여하는 바도 아주 큰데 사장이 우리 남편 웨이지도 안 올려주고…” 하는 얘기를 했다는데 그게 그날 사장 귀에 들어갔던 거였습니다. 안 그래도 못마땅하던 차에 그런 얘기까지 들었으니….

 

비자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안병길 부장이 회사에 남아 있게는 해야 할 것 같아 겨우겨우 사장을 설득해 안 부장을 영업활동을 겸하는 제3의 부서로 옮겨 앉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 부장이 내가 왜 다른 부서로 가야 하느냐?”며 펄쩍 뛰었습니다.

 

결국 안병길 부장은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들려온 이야기… “김태선 이사가 저만 살자고 나를 짤랐다.” 이건 또 무슨 날벼락? 불 같은 성격의 사장한테 그렇게 시달리면서도 막아줬건만…. 3개월 넘는 기간 동안의 노력이 누명과 함께 허탈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참 많이 속상했던 사건(?)입니다.

 

**********************************************************************

 

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이전어떤 만류 #6142022-07-23
다음어떤 선택 #6122022-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