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어떤 만류 #6142022-07-23 18:03

어떤 만류

 

김 차장, 아무래도 내가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사장이 김 차장을 우리 부서에 보낸 걸 보면 내가 더 있고 싶어도 사장이 그냥 놔두지 않을 것 같고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먼저…”

 

제가 그 부서로 옮겨간 지 열흘 남짓 됐던 날, 김원준 부장이 저를 회사 옆 포장마차로 불러냈습니다. 소주 석 잔을 연거푸 들이켠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상황? 안 그래도 한참 마감작업 중에 얼떨결에, 그것도 전격적으로 그 부서로 날아가 정말 비몽사몽간에 마감작업을 마쳤는데 부서의 장이 회사를 그만두겠다니….

 

열흘 전쯤 그 부서 기자들이 단체로 사장실을 찾았습니다. “이대로는 더 이상 못하겠으니 김원준 부장을 택하든지 우리를 택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는 시위였습니다.

 

그들은 창간된 지 4개월로 접어든 자동차전문지 기자들이었습니다. 원래 새로 생긴 매체들은 기존의 경쟁지들보다 몇 배는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데 그 책은 되레 창간호부터 계속 며칠씩 늦게 발행되고 있었습니다.

 

김원준 부장은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존 자동차전문지에서 차장으로 일하고 있다가 우리 회사에서 자동차전문지 창간준비를 하면서 부장으로 스카우트 돼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부장은 자동차에 관한 한 남다른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직접 글을 쓰고 기자들의 글을 봐주는 이른바 데스크 업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업무를 맡아줄 차장이 당연히 있어야 했음에도 회사에서는 마땅한 사람을 못 구했으니 조금 기다리라며 김 부장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이 넘긴 기사들이 김 부장 책상 위에 계속 쌓이게 되고 책이 늦게 나오면서 광고주나 서점에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그 같은 일이 반복되자 기자들도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사장과의 담판을 결정했던 것이었습니다.

 

김원준 부장도 기자들도 양쪽 다 포기할 수 없다는 사장의 대답에 기자들은 그럼 차장 한 명을 당장 뽑아달라고 응수했고 그러고 싶지만 외부에서 데리고 올만한 사람이 없지 않느냐?”는 사장에게 그럼 <직장인> 편집부 김태선 차장을 이동 배치시켜달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저도 모르게 저를 찍어 가지고사장실에 들어갔던 거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엉겁결에 그 부서로 옮겨 갔습니다. 어찌 됐거나 제가 합류함으로써 그 부서는 책도 제 날짜에 나오고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창간 6개월만에 단숨에 2위 자리까지 치고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포장마차에서 김원준 부장과 술잔을 부딪치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사장이 부장님 내쫓으려고 저를 옮겨 놓은 건 절대 아닙니다. 차장은 진작부터 필요했고 기자들이 아예 저를 콕 찍어서 요구했지 않습니까? 제가 옮겨와서 책도 제 날짜에 나왔고 기자들도 다시 부장님 잘 따르며 분위기도 좋아졌지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건 부장님이 지금 회사를 그만 두면 부장님은 영원히 못나서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으로 기억될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만두더라도 우리 책이 정상궤도에 오르고 부장님 입지도 확고해질 때 그만둬야 합니다. 그때까지 제가 부장님 잘 모실 테니 쓸 데 없는 소리 그만 하세요. 지금은 절대 아닙니다.”

 

저보다 네 살이 많았던 김원준 부장은 지금도 , 태선아!” 하며 가끔 전화를 합니다. 누구든 오너가 아닌 한 회사나 조직에 영원히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 두는 시점, 그리고 그만 두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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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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