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2

제목어떤 선택 #6122022-07-23 18:02

어떤 선택

 

안녕하세요? 김태선 차장님. 여기 비서실인데요, 사장님께서 오늘 낮 12 30분 코엑스 지하에 있는 일식집 도쿄에서 점심 함께 하자세요.”

, 그래요? 난 싫은데정화씨, 나 오늘 취재약속 있다고 둘러대 줘요.”

안 돼요, 김 차장님. 오늘은 사장님과 김 차장님 두 분만이에요. 제가 방금 예약했거든요. 뭔가 중요한 얘기가 있으신 것 같더라구요.”

 

평소 높은 사람과 밥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저는 가끔씩 있는 사장과 간부사원들과의 점심이나 저녁 식사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곤 했지만 그날은 사장과의 독대라니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김 차장, 자네 부서 말일세. 민 국장 없이도 자네가 잘 이끌어갈 수 있겠나?”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마주 앉은 자리에서 사장이 저에게 던진 첫 마디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결국 올 것이 온 거였습니다. 민규식 국장이 꽤 오래 전부터 취재대상이나 외부필진 등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고향사람들을 넣고 있어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는데 결국 그 같은 사실이 사장한테까지 흘러 들어간 모양이었습니다.

 

민 국장 그 친구 말이야.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자기 고향사람들한테 각종 특혜까지 주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얘긴가? 김 차장 자네가 민 국장이 해야 할 일들까지 다 하고 있다면서?”

 

사장이 이런 이야기를 저한테 한 것은 나는 이미 민규식 국장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네가 너희 부서를 잘 이끌어가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민 국장께서 최근 들어 그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합니다만 저와 기자들이 민 국장께 그 부분에 대한 개선을 말씀 드려놨으니 곧 나아질 겁니다. 앞으로 민 국장 모시고 부서 잘 이끌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 얘기를 듣고 있던 사장의 얼굴에 일순 노여움 같은 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채 한 달이 안 돼 우리 부서에 태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민규식 국장이 아무런 보직도 없는 편집위원이라는 타이틀을 받고 한쪽으로 밀려난 겁니다. ‘알아서 나가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게다가 공석이 된 우리 부서 부서장으로 저보다 세 살이 어린 여자 차장을 부장으로 승진시켜 제 위에 앉혔습니다. 사장이 넌지시, 그러나 강력하게 던진 제안을 거절한 버르장머리 없고 겁 없는 차장에 대한 일종의 보복(?)인사였습니다. 그 속에는 너도 민 국장과 한통속이니 너 또한 싫으면 알아서 나가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을 겁니다.

 

민 국장은 결국 일주일 만에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저는 김태선 저놈이 사장한테 붙어 나를 몰아냈다는 오해를 민 국장으로부터 받아야 했고, 동시에 나이 어린 여자 차장을 부서장으로 모셔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그 같은 오해와 굴욕을 안고 튕겨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마음으로 더더욱 열심히 뛰었고 결국 6개월 남짓 만에 저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민 국장 파동이 있기 전까지 저는 나름 승승장구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장의 은밀한 제안을 밉지 않게 받아 들였더라면 저는 날개를 달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벌써 20년쯤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짓곤 합니다. 중요한 순간에 똑똑하지 못한(?) 처신으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지금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저의 선택은 그때와 똑같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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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선

<코리아 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 <코리아 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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