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요, 손흥민 선수

그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7년쯤 전인 2015년 1월 31일 시드니올림픽파크 ANZ스타디움에서였습니다. 그날 열린 ‘2015 AFC 아시안컵 축구 결승전’에서 우리는 폭주기관차 같은 차두리의 ‘미친 질주’와 당시 ‘말벅지’로 표현되던 손흥민의 탄탄한 허벅지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열띤 접전을 벌였지만 1대 1로 승부가 나지 않아 연장전을 벌인 끝에 1대 2로 아쉽게 패해 우승컵을 호주에 넘겨주자, 당시 스물세 살이었던 ‘울보’ 손흥민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 품에 안겨 펑펑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랬던 7년 전의 그 울보가 이제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그야말로 훨훨 날고 있습니다. 토트넘 홋스퍼 소속의 손흥민은 지난 1일, 2021-22시즌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연속 두 골을 뽑아내며 팀의 3대 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날 열아홉 번째 골을 기록한 그는 1985-1986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어 레버쿠젠 소속으로 열일곱 골을 넣은 차범근의 기록을 뛰어넘어 ‘한국선수 단일시즌 유럽리그 최다 골’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이제, 손흥민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7골)를 제치고 득점 2위에 올랐으며 선두인 모하메드 살라 (리버풀·22골)와는 세 골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남은 경기에서 그가 살라를 제치고 득점 1위에 오른다면 프리미어리그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선수 득점왕이 탄생할 수도 있으며 도움 3개를 더하면 프리미어리그 최초로 3시즌 연속 10(골)-10(도움) 클럽에도 가입하게 됩니다.

앞으로 남은 정규리그 네 경기에서 손흥민이 얼마나 더 많은 골을 기록할지, 어떤 기록을 더 세울지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엄연한 남의 아들이지만 이미 온 국민의 아들이 돼서 기분 좋은 소식, 행복한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그이기에 손흥민은 가히 ‘국민 효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할머니~ 이거! 이거, 할머니 거야!” 녀석은 현관문 앞에서 저랑 반가운 허그를 한번 하고는 쏜살같이 달려들어가 할머니에게 안깁니다. 그 뒤를 에밀리가 종종걸음으로 따라 들어갑니다. Mother’s Day를 며칠 앞둔 월요일 오후, 학교수업을 마친 에이든이 우리 집을 깜짝 방문했습니다. 학교 캔틴에서 Mother’s Day 엄마 선물을 사면서 할머니 것도 하나 챙긴 겁니다.

여기저기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할머니의 취향에 맞춰 녀석은 작은 액자 속에서 분홍색 꽃가루가 휘날리는 귀엽고 앙증맞은 장식품을 준비했습니다. 크리스탈로 아니, 다이아몬드로 만든 고급제품 못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 마련을 위해 녀석은 지난 설날에 받아서 꽁꽁 묶어뒀던 세뱃돈을 기꺼이 풀었다는 후문입니다.

7년 전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나 작고 소중해서 품에 안기에도 조심스럽기만 했는데 녀석이 어느새 일곱 살, 초등학교 1학년이 됐습니다. 저한테는 아직 애기애기스럽기만(?) 한데 Mother’s Day를 앞두고 엄마 선물은 물론, 할머니 선물까지 챙기는 어른스러움(?)을 갖추게 된 겁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한 시간 남짓밖에 놀지 못한 아쉬움은 돌아오는 Mother’s Day에 실컷 풀기로 했습니다. 연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빠이빠이를 하며 멀어져 가는 녀석들의 차를 바라보며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마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우리가 아닌 남들로 인해 힘든 일이 그치지 않는 요즘, 그래서 온 사방이 뻑적지근했던 몸도 마음도 거짓말처럼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손흥민 선수처럼, 그리고 우리 에이든과 에밀리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고 고마운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이 글을 마치고 나면 돌아오는 일요일 우리의 보석 에이든과 에밀리가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앞마당과 뒷마당 잔디를 깨끗하게 깎아놔야겠습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집안 구석구석 물걸레 청소기도 반질반질 돌려야겠습니다. 변덕스런 날씨도 그날만큼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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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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