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lly’s Game

몰리는 법적인 책임과 함께 도덕적인 책임을 지려 한다

올림픽 국가대표선수라는 자리를 바로 눈앞에 둔 경기에서 스키선수 몰리 블름은 사고를 당한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녀는 그 일을 계기로 어린 시절부터 시작했던 선수생활에서 은퇴했다. 메달리스트로의 꿈은 좌절됐지만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니 법대에 편입해 법조계로 나갈 앞으로의 계획이 있었다.


01_
포커 프린세스

그녀는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오랜 선수생활을 접는 기념으로 엘에이에서 친구 집에 머물며 휴가를 보냈다. 그런데 얼마 후 몰리는 러시아 마피아와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고 새벽에 잠복한 FBI에게 연행되어 짧으면 5년, 길면 10년의 형을 선고 받을 상황에 부닥쳤다.

불법도박을 주최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몰리는 미국 역사상 판돈이 가장 큰 포커게임을 주선했으며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그곳에 참가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했다.

구속된 후 FBI는 몰리에게 게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넘긴다면 실형 대신 집행유예로 처벌받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몇몇의 잡지사들도 거액을 제시하며 같은 제안을 해온다. 그러나 몰리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무엇 때문에 그녀는 감옥 행을 택하는가? ‘몰리의 게임’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02_
추진력

컴퓨터 엑셀 장부에 몇 가지 사항을 기재하는 일 외에 음료수를 나르고 받는 하루 저녁 수고비가 1000만 원을 웃돈다면 그런 일자리를 순순히 놓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 자리를 마련해준 주인이 딴 사람을 쓰겠다는데 아르바이트생이 항변해보았자 달걀로 바위치기다. 몰리는 우연한 기회에 어떤 사람의 개인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그녀가 하는 일 중 한 가지가 할리우드의 A급 스타들과 성공한 기업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포커게임의 참석 여부를 묻는 일이었다.

포커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는 몰리가 이렇게 포커게임과 인연을 맺게 됐다. 하지만 성격이 변덕스러운 몰리의 보스는 게임에서 몇 번을 지게 되자 그녀를 해고했다. 이때 몰리는 울며 그 자리를 나오는 대신 자기가 포커게임을 주도한다.

엘에이에서 가장 좋은 호텔을 찾아가 펜트하우스를 빌리고 그곳에 맞게 포커테이블과 인테리어를 제작했다. 포커딜러를 섭외한 후 포커 플레이어들의 전반적 심리를 연구하는 동시에 참여자 각 개인의 취향과 버릇 작게는 촛불이나 비누까지도 명품으로 꾸몄다.

그리고 최고 모델들을 섭외해 게임의 내빈으로 참가시켰다. 퀴퀴한 팝의 홀 하나를 빌려서 궁색하게 진행되었던 포커게임이 하루아침에 백만장자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것 같은 안락한 곳으로 변신했다. 장소가 품격을 갖추자 10만 불에서 오가던 게임의 크기도 100만 불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열 명으로 제한된 게임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돈의 액수가 커지니 여러 사람이 그 위치를 넘보게 되었고 몰리는 또다시 좌절을 맛보게 된다. 엘에이의 재벌가들 텃세에 지친 몰리는 뉴욕에서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졌다.

유명배우들을 중심으로 하는 엘에이 백만장자들과 뉴욕 월가를 중심으로 하는 재벌들은 또 다른 세계였다고 한다. 그곳에서도 자신이 알아야 할 사항과 해야 할 일들을 파악해 행동에 옮긴다. 스무 살이 갓 넘은 아가씨에게서 저런 배짱과 추진력의 근원이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03_
내가 꿈꾸는 아버지 상

‘김연아 선수가 어느 정도 천재인가?’ 하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에는 ‘굳은 인내와 노력이 없었던 천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천재성은 고통을 참고 이기는 탁월한 재능이다. 천재란 노력을 계속할 수 있는 재능이다’라는 뉴턴과 에디슨의 말이 인용되어 올라와 있다.

스키 유망주였던 몰리는 열두 살 되던 해에 심하게 옆으로 휘어진 척추를 바로잡는 수술을 받는다. 그 후 가족과 주변사람들 모두 그녀가 다시 일어나 걷게 된 것을 행운으로 알았다. 그러나 몰리는 얼마 후 미국 스키팀 선발전에서 메달을 목에 건다.

그때 ‘죽을 듯한 고통과 싸우지 않았더라면 메달을 받는 지금의 순간이 이렇듯 의미 있고 감격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 속을 스쳤다고 했다. 콜로라도주립대학 심리학 교수인 아버지 밑에서 몰리는 ‘너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주문을 듣고 자랐다.

척추 수술 후 회복기간 동안 식구들과 함께 속도를 겨루며 눈 덮인 산을 질주해 내려오는 주말 스키여행에서 제외된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그녀의 회고록에 적혀 있다. 아버지가 건네는 위로의 말보다는 자기를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조금만 더’라는 성화가 섞인 격려를 그리워했다.

모든 올림픽 메달리스트 뒤에는 선수보다 더 집념이 강한 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무지막지하게 아이들을 야단치고 윽박지르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러시아의 교육 심리학자 비고츠키 (Lev Vygotsky)의 스캐폴딩 (Scaffolding)이라는 말은 아동교육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교육자가 배우는 사람에게 ‘버팀목’을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하는데 아이들은 자신 앞에 놓인 일이 너무 어렵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면 지레 포기한다. 그러기 전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학생의 능력과 관심에 따라 몇 가지의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때 배우는 사람이 생각할 기회를 주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교육 원리다.

몰리 형제들은 운동을 통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일찍부터 경험했다. 이들은 운동이나 학교 공부에서 실패할 때마다 발전의 기회로 여겼다. 실패와 도전, 그리고 더 나은 자기 자신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릴 때 부터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되 뇌인 말이었다.

그는 평소 아이들과 사사로운 대화를 나눌 때도 단어의 뜻과 의미 그리고 누구의 말을 인용했는지 생각의 출처를 밝히게 했다. 아이들 전부 아버지가 원했던 수준을 훨씬 능가했던 어느 날 몰리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된 훈련을 시켰냐는 물음이었다.

그의 답변은 여느 부모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게 소박했다. 이루고자 했던 자신의 꿈을 아이들을 통해 보고자 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살다 보니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게 됐다는데 특히 세상에서 여자의 위치를 실감하는 아버지로서는 몰리가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랐단다.


04_
대체 불가능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가 부자인 것을 실감할 때는 자신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모르는 때라고 한다. 그녀의 게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포커로 생활비를 벌거나 아니면 일확천금의 행운을 바라기엔 그들 모두 너무 큰 부자들이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어떠한 제한도 없이 가질 수 있고 할 수 있는 남자들이 포커게임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몰리는 자랄 때 아버지와 나누었던 귀찮고 짜증스러울 만큼 세세하고 정확한 사고력 훈련이 재벌과 유명인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과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포커게임에서 원하는 것은 모험과 환상의 세계였다. 몰리는 자신의 게임을 그들이 원하는 환상과 모험을 조화시켜 디자인했다. 이름난 프로야구 선수나 농구 선수들은 재벌과 만남을 기대했고 재벌들 또한 스타들과 만남을 원했다.

누구도 게임에서 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매번 게임에서 이기는 프로는 거절했다. 홀인원 하는 사람에게 2불 내기를 하자는 제안도 거절한 워런 버핏처럼 이길 승산이 없는 게임에 동전 한 닢도 요행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도박 중독자들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이길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연구한 것들을 컴퓨터에 기록하고 변경과 병행을 통해 누구도 자신을 대신할 수 없도록 하는 일에 힘썼다. 소비자 안에 있는 잠재욕구를 자극하여 그들이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들을 필요로 하게끔 만드는 행위가 21세기의 마케팅 전략이라면 심리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언어와 사고 능력을 키워 온 몰리의 마케팅 훈련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던 셈이다.


05_
우연인가 필연인가

그날 몰리는 자기가 드디어 죽는다고 생각했다. 게임에서 진 몇 사람들이 몰리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마피아 두목이 그녀를 찾아와 자기들에게 돈을 회수하는 일을 맡겨 달라고 했다. 그 제한을 공손히 거절한 날 밤 청부살인업자가 몰리의 아파트로 잠입해 구타와 권총으로 위협을 가하고 떠났는데… 몰리는 그날 몹시 울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와 함께 드는 생각 뒤에는 이런 상황을 당하고도 자신이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큰돈과 화려한 인맥이 첫 번째 이유였겠지만 그녀의 내면엔 그만두고 싶지 않은 더 진솔한 이유가 있었다.

몰리는 누구도 이 일을 자신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하게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이 이 분야에서 최고라는 걸 알았다. 몰리의 큰 남동생 조르단은 스키에 월등한 재능을 보였지만 의학을 향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수생활을 접고 하버드 의대에 들어 갔다.

둘째 남동생 제러미는 미국 최고의 스키선수이면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동생들의 그늘에 가려 지내며 아버지에게 동생들만큼 사랑과 인정을 못 받는다는 느낌은 몰리를 지치게 했다. 늘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자신이 엘리트 가족들 틈에서 겉돌며 무능하다는 열등의식은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동생들을 능가하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진한 열망으로 들끓고 있었던 것 같다.

게임의 심부름을 하던 때는 간혹 데이트하자며 몰리를 여자로 대하던 남자들이 그녀가 게임의 하우스가 되자 희롱은커녕 가벼운 농담도 자제했다고 한다. 게임에서 지게 되면 적게는 10만 불에서 많게는 100만 불을 빌리거나 갚아야 하는 대상에게 누가 감히 함부로 할 수 있을까.

몰리가 정성을 다해 차려놓은 상에 백만장자 양반들이 음식을 처음 본 아이들처럼 우르르 달려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백성을 먹이는 임금이 된 자 만이 아는 마음이리라. 올라가 본 적이 없다면 몰라도 그 자리를 그렇게 순순히 내려오고 싶지는 정말 않을 것 같다.


06_
몰리 불름, 지키고자 했던 것

자기의 이름으로 포커게임을 주선하면서 몰리는 법에 어긋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다. 정확하게 세금을 내고 운영비와 이윤은 온전히 팁에 의지하면 되었다. 그러나 뜻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인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게임의 주최자가 몰리 자신이니 그녀가 하우스며 그녀가 은행이다.

하룻밤 오고 가는 돈이 100만 단위를 넘어서는 게임에서 진 사람이 돈을 내지 않겠다고 발뺌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몰리가 된다. 몰리의 게임이 신용을 잃는 것도 순간이 될 수 있다. 팁이 제아무리 크다 해도 판돈의 수수료를 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정규 카지노의 방식대로 판돈의 비율에 따라 수수료를 취했다. 그것이 바로 법을 어겼다는 빌미를 제공했다. 실수였다. 구속된 후 심문과정에서 수사관들은 게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요구하며 흥정을 벌였다. 그러나 몰리는 다른 사람들이 밝힌 이름 외의 이름을 자신이 밝히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그녀의 변호사는 이런 몰리가 답답해 견딜 수 없다. 젊은 나이에 실형을 선고 받으면 인생이 얼마나 고달플지 생각해보라고 구슬리고 달래도 몰리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변호사에게 들볶이던 그녀는 드디어 자기가 고집을 피우는 이유를 말한다. 자기 이름을 지키고 싶단다. 왜냐하면 자기에겐 ‘몰리 불름’이라는 이름 외에 딴 이름이 없으니 그것이 이유라고….


07_
몰리의 회고록

정부에 전 재산을 압수당한 몰리가 변호사 비용과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회고록을 쓸 당시는 그녀가 법정 판결을 기다리던 시기였다. 몰리의 회고록에는 자기가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것에 대한 갈등이 드러나 있다.

고급스러운 아파트와 명품으로 둘러싸여서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쓸쓸함과 허망함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검거된 후 중죄인으로 취급 당하는 자신의 상황이 그녀를 두렵고 가슴 아프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이 일을 하겠냐고 묻는다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 8년이 자신에게 모험의 기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모험을 통해 자신을 믿는 법을 배웠고 때로 용감하기도 했으며 크게 뻗어나가기도 그러나 반대로 이기적이고 무모했으며 권세욕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중요한 것들을 부와 지위로 바꾸는 어리석음을 범했다고 고백한다.

모든 책임을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높이 올라가면서도 내려갈 때처럼 배우는 것이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사용해서 이제는 자신에게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거란다.


08_
모험과 책임

우리는 꿈과 비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원하는 욕망을 실행하지 못하고 욕구불만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꿈을 이루려는 것을 막아서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그리고 ‘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렵다.

몰리는 법적인 책임과 함께 도덕적인 책임을 지려 한다. 그 용기가 내게 ‘몰리의 게임’을 이야기하게 했다. 일심에서 몰리는 순순히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판사는 벌금과 1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기적이었다. 법정에 와 있던 아버지와 동생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몰리를 향해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버지, 당신은 언제나 제 삶보다 더 큰 분이셨죠. 제게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라고 그리고 저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죠. 당신은 제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격려하고 지도해주셨어요. 아빠 사랑해요.’ 몰리의 회고록 마지막 줄에 써 있는 글이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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