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잘 죽는 법?!

물론,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 정도면 살만큼 살았고 더 이상 추해지기(?) 전에 품위 있는 죽음을 맞는 것도 괜찮다’는 의견과 ‘아무리 그래도 엄연히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처사이다’라는 주장이 팽팽합니다.

세계적인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는 호주 법을 뒤로 하고 5월 10일 스위스에서 104년 동안 이어온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습니다. 진정제와 신경안정제를 투여 받은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 중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평화롭게 영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생태학 연구에 70년 이상의 세월을 쏟아온 구달 박사는 102세 때까지도 활발한 연구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하지만 2년 전 그는 자신이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퍼스의 에디스코완대학교로부터 퇴임권고를 받았습니다. 대학 측으로서는 102세의 고령인 그가 1시간 30분 거리의 사무실로 출퇴근하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네 다섯 번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 염려스러웠던 것이었습니다.

구달 박사가 이를 ‘고령 노동자에 대한 차별’로 규정하고 반발하면서 퇴임권고는 철회됐지만 그는 스스로 ‘생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달 박사는 “당시의 일은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사안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후 사무실로 출퇴근을 계속하며 연구활동을 지속하는 삶을 이어왔지만 두 달 전쯤 아파트에서 쓰러져 건강이 악화된 뒤로는 혼자만의 힘으로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판단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삶을 마감하기 직전 이렇게 심경을 밝혔습니다. “특별한 질병은 없지만 건강이 더 나빠지면 지금보다 훨씬 많이 불행해질 것 같다. 104세라는 나이에 이르게 된 것을 많이 후회하고 있다. 이제, 더는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 편안하게 삶을 끝낼 기회를 얻게 돼 기쁘다. 의료진에 감사한다.”

구구팔팔이삼사(9988234)…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고 이삼 일(23) 앓다가 죽는다(4)는 의미로 한국에서 몇 년 전 크게 유행한 말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웰빙(Well-Being)과 잘 죽는 웰다잉(Well-Dying)을 적절히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천상병 시인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노래했듯이 저도 열심히, 즐겁게 그리고 착하게 살다가 적절한 때가 돼서 편안한 죽음을 맞게 된다면 ‘죽음 또한 축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야 뭐 대단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죽은 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지도 않겠지만 가끔 농담처럼 진담인 듯 가족들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나중에 나 죽으면 너무 많이 울거나 슬퍼하지마. 매사에 열심히, 즐겁게 그리고 착하게 살다가 죽을 거기 때문에 그걸로 이미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할 거거든. 진짜 마음을 함께 했던 좋은 사람들이 우리 집 뒷마당에 모여서 평소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을 들으며 옛날을 얘기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렇게 정훈희의 ‘무인도’와 김창완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리고 존 덴버의 ‘Sunshine on My Shoulders’와 아바 (ABBA)의 ‘I have a Dream’ 등이 흐르면서 “그 친구, 좀 찌질하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고 착하게 살았어. 그 정도면 됐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자리는 분명 축제가 될 것입니다.

지난주에 언급했던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맞은 담담한 죽음 그리고 ‘조용한 장례’와 ‘수목장’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재벌그룹 총수로 살아오는 동안 그에게도 잘못이나 흠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 정도면 됐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기에 구본무 회장의 삶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훗날 그런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그리고 ‘그 정도면 됐어.’

**********************************************************************

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Previous article박해선의 영화, 어떻게 살아야 하나 ⑧ 몰리의 게임
Next article1년 밀린 Strata Levy 받기 위한 소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