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열망했던 아버지의 꿈이 영화를 통해…

검은 양복의 소년들… 당장에라도 양복 안주머니에 든 총을 꺼내 들고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아이들의 모습이 위협적이다.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여섯 명의 형제가 검은 선글라스로 구색을 갖추고 맨해탄 거리를 걷고 있다.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 여성이 있었는데 영화제작 공부를 막 끝낸 크리스털 모젤이었다. 그녀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면서 이들 가정사에 걸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01_가족과 감옥

알코올 중독과 신경불안증을 앓고 있던 오스카 앵글로라는 남성은 가족 모두를 아파트에 가둬둠으로써 그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신만의 부족국을 세우려는 계획이 있었다.

아파트 창문을 통해 빤히 들여다보이는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은 아이들에겐 감옥에 갇힌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더 울프팩 (THE WOLFPACK)’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아이들의 이야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크리스털이 5년에 걸쳐 아이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 영화화된 것이다.

 

02_탈출을 시도하다

넷째 아들 무쿤다가 할로윈의 살인자 마이클 마이어의 가면을 쓰고 집을 뛰쳐나간 것은 자기 나이가 15살 되던 해였다. 은행과 상점을 기웃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질겁을 한 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무쿤다는 정신병동에서 일주일을 지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가면을 쓰고 나간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자기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또 다른 이유는 죽지 않는 마이클 마이어의 캐릭터를 통해 더 이상 아버지가 자신을 가둬둘 수 없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넷째의 이런 용기가 다른 형제들의 지지를 받고 아들들에게 맞설 수 없었던 아버지는 백기를 들었다. 가족 모두에게 긴 세월의 감옥생활이 막을 내린 것이다.

 

03_삶의 아이러니

곳곳마다 칠이 벗겨지고 얼룩이 진 방에서 반 벌거숭이 차림의 식구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은 이 아파트의 비좁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형제들은 한결같이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세월이었다’고 말한다.

인터뷰 중 그 시절이 생각나는지 ‘울지 않겠다’며 애써 입술을 깨무는 넷째 아이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내게 의문처럼 뜻밖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둡고 외로웠던 시절을 보낸 아이들에게서 왠지 모르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거칠고 사나워야 마땅한 아이들이 마치 좋은 환경에서 건강한 교육을 받은 것처럼 품위 있다.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구사하는 언어능력과 카메라를 온순하고 침착하게 바라보는 태도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이 있었다. 뭐지? 나는 어느 순간 그것이 자신감인 것을 알았다. 자신감이 가장 결여되어 있어야 할 아이들에게서, 그리고 그 자신감이 이들이 벗어나고 싶어 했던 환경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이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아니면 내가 상황파악을 잘 못 하는 것일까.

 

04_허락된 영화

미국 정부가, 시민을 일하는 로봇으로 만들려는 방침에 대항하기 위해 오스카는 실업자 수당에 의지하는 것으로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갔다. 집을 나갈 때마다 자물쇠를 채웠고 옆집과 벽을 대고 있는 화장실과 방의 사용을 철저하게 금했기 때문에 오스카에게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다는 걸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중에도 오스카가 아이들에게 허락한 일이 있었다. 영화였다. 유일하게 딴 세상을 볼 수 있었던 영화가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강렬하게 사로잡았을지 짐작이 간다. 형제들은 영화를 통해 인생의 의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또 모순이라는 상반된 감정과 윤리를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가 인문학 강연을 주도한 셈이다.

 

05_영화, 생각과 실행의 공간

형제들은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를 재연해 보자는데 마음을 합했다. 좋아하는 영화의 대본을 꼼꼼히 받아 적은 후 배역을 나눠 연습을 거듭했다. 필요한 의상과 소품을 만들고 연기한 장면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연결해 비평하는 과정까지 세심하게 진행했다.

오직 자신들만이 관객인 그 과정이 너무 진지해, 보는 사람의 마음이 저린다. 언어의 정확성이 이때 익혀진 일임은 누구라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더 울프펙’ 영화의 상영 후 여러 인터뷰에 응하는 형제들의 태도는 오랜 세월 영화계에 몸담아 온 사람들 같다. 고되고 지루했던 시간을 견디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영화에 대한 몰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06_몰입이 필요한 아이들

유치원 교사로 일했던 경험은 내게 몰입을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카운슬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와 재료들이 넘쳐난다. A3 도화지를 이젤에 고정해주면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다 끝났어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붓에 물감을 찍어 도화지에 몇 번 그어대고는 다했다고 한다. 날림으로 만든 것에 애착을 느끼는 아이는 드물어서일까, 집에 가져가도록 그림을 건네주면 대개의 아이가 ‘선생님 가지세요’라며 선심을 쓰거나 방문자들에게 불쑥 자신이 만든 것을 내밀며 선물인 양 줘버리곤 한다.

같은 종류의 레고만 해도 대여섯 가지는 족히 넘으니 한 가지를 가지고 진득하니 노는 아이를 보기가 어렵다. 이런 습관은 자신들이 무엇인가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07_배트맨, 3년의 작업 

배트맨 복장을 완벽하게 만드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시리얼 상자로 시작해 옷을 착용한 후 몸을 움직이는 일이 가능해질 때까지…. 자신들의 수고가 작품완성 후 자긍심과 자신감으로 이어졌을 것이 당연하다. 중무장한 FBI 요원이 집안으로 들이닥친 일도 있었다. 이들은 형제들이 사는 아파트에 36개의 총기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그들은 집안 곳곳에서 소품용 기관총을 비롯한 무기 등을 찾아냈다.

얼마 전엔 넷째 아이 무쿤다가 ‘나를 자유롭게 한 상상력’이라는 제목으로 테드 강연에 출연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상상의 세계를 행동으로 옮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실행하는 힘이야말로 잃어버린 시간으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잇는 자신감이었음이 분명하다.

 

08_엄마가 곁에 늘…

수잔은 남편의 동행 하에 병원에 가는 일 외에는 일체의 외출이 허락되지 않았다. 비좁은 방에 수잔과 아이들이 포개질 것처럼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모습은 ‘이 아이들이 안정되게 자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태어나서 아동기까지 의식주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지속적인 보살핌이라고 한다. 특히 터너 증후군이라는 장애가 있는 딸아이에게 엄마가 항상 집에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안정감을 줬을까.

내가 유치원에서 근무할 때 매일 아침 한두 번씩은 겪는 일이 있었다. 유치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이는 엄마가 떠난 후에도 몇 시간이 지나도록 절박하게 ‘마미!’를 외친다. 엄마가 사라져간 유리창 쪽으로 두 팔을 뻗대고 울어대는 그 자그만 몸의 서러움이 온몸으로 전해져오곤 했다. 형제들이 인식하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이 겪는 엄마의 부재라는 불운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09_형제가 곁에 늘…

늑대 형제들의 불우한 환경은 또 다른 긍정의 얼굴을 보여줬는데 형제들이 항상 함께 있었던 상황이다. 부모 중 누구라도 강압적으로 아이를 통제하거나 교묘하게 조종하려 한다면 예를 들어 혼자 자란 아이에겐, 부모의 이런 억지가 도리어 아이의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에 대해 옳고 그름과, 정당함과 부당함을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누군가가 형제들 곁에 항상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억압에 가장 시달림을 받았던 엄마의 입장을 가엾게 여겼던 환경 또한 그들을 연약한 어린 아이로 머물게 하지 않고 삶의 돌파구를 찾으려 방법을 모색했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10_제한된 삶 속에 펼쳐진 자유

‘부유하다고 해서 다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되겠다. 그러나 풀어보지도 않은 장난감이 방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데도 내 주변에서 보게 되는 아이들은 목요일 저녁 쇼핑을 가자고 조른다.

소비의 갈증이라는 병에서 늑대 형제들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놀이를 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스스로 만들어야 했던 상황은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 준 가장 좋은 자원이었다. 만일 우리가 아이들 개개인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형제들이 각각의 방을 가졌었더라면 영화를 재연하는 공동작업이 가능했을까.

유아교육과 피트니스를 공부하는 과정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가끔 학생들에게 공동작업이 과제로 주어지는데 전부 모이는 일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소셜미디어와 가상의 세계에서 피상적 대화에 열중하는 학생들에겐 공동작업이 시간낭비일 수 있다. 가수 싸이가 군대를 두 번 갔다 왔다는데 늑대 형제들의 공동체 생활은 그들이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군대를 다섯 번을 갔다 온 셈이라고 해야 할까.

 

11_아버지와 영화

‘무엇을 가졌다는 것도, 무엇을 성취했다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저 너 자신으로서 살라’는 것이 오스카가 아이들에게 늘 했던 말이라고 한다. 내 아이가 누구에게 뒤질세라 혹은 남보다 더 갖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세상에서 어느 부모가 배포 있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간간히 오스카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자신이 저지른 아동학대의 사실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 촬영감독에게 적대적이지 않으니 놀랍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아이들의 생각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그는 ‘영화가 정직하게 잘 만들어졌다’는 평을 했단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대가를 지급하고서라도 가족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진 일을 기뻐하는 듯하다. 마약과 총기의 거래가 태연하게 이뤄지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한 남자의 일그러진 집념과 그의 단순하면서도 무지막지한 양육의 방법은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것처럼 암울했던 아이들의 삶에 예상치 못했던 열매를 맺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12_되찾은 시간

무쿤다는 카메라 조감독으로 전문가들과 일하는 즐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형제들의 요즘 근황이 20/20 방송사를 통해 소개됐는데 아이들이 여러 방면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몰두하며 건강하게 사는 모습이 보인다.

세상사에서 한참을 뒤떨어져 매사에 어리둥절한 형제들을 놀리는 사람들이 있느냐는 질문에 ‘놓쳤던 시간을 따라 잡느라 그런 말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며 밝게 웃는다. 스칸디나비아의 넓은 평원에서 아이들이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열망했던 한 아버지의 꿈이 영화를 통해 그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펼쳐졌다.

무쿤다가 뉴욕의 한 스트디오에서 스탭들과 함께 단편 영화를 촬영하나 보다. 간결한 그의 목소리에 실린 카리스마가 듣는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컷! 좋았어. 다음 장면으로 가자!’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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