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딸들의 코트를 팔아 마약을 한 부모를자식사랑이 지극했던 분들이라고…

‘Homeless to Harvard (노숙자에서 하버드까지)’를 보게 된 동기는 간단했다. 제목이 말하는 대로 어둠 속에 갇힌 Liz Murray (리즈 머리)라는 아이에게 하늘로부터 내려온 동아줄이 무엇이기에 노숙자의 삶에서 하버드대 입성이 가능했는지,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줄을 부여잡고 우물 밖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그것이 아무리 소소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감동일 테고 그것에 탄력을 받아 게으른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볼 심사였다.

 

01_리즈와 동아줄

리즈의 부모님은 마약중독자였다. 리즈가 열여섯 살에 엄마는 에이즈 감염으로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다. 두 분이 재활수용소나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리즈는 친구 집과 거리를 전전한다.

그녀는 자기 안에 뿌리내린 부모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노숙자로 살아갈 운명임을 예감했다고 한다. 대물림의 틀을 깨는 길이 교육이라고 깨달은 아이는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동기는 <뉴욕타임즈>가 주최한 하버드대 장학생으로 리즈가 선발된 일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아이에게 몇 번의 운명 같은 일들이 찾아 들었다. 뜻도 모르면서 에이 코인 (AA Coin)을 집어 든 일이다. 동전의 뒷면에 적힌 ‘주여,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라는 글이 아이의 가슴 속에서 싹을 내고 그 말은 훗날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까지 포기해선 안 되겠다는 불씨 같은 생각으로 키워졌다.

리즈에게 학구적 잠재력이 있음을 알아보고 공부의 길로 독려해준 몇 분의 선생님도 그녀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기적 같은 만남이었다. 그러나 리즈에게 무엇보다 큰 삶의 변화를 준 사건은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이다. 10대 소녀가 죽음의 문턱으로 다가서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힘겨운 일이었을까. 병원엔 나중에 가 봐야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병든 부모는 자식의 ‘나중에…’ 라는 말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작별을 고한다.

이 일은 리즈에게 삶이 유한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며 해야 할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삶으로의 전환이 된다. 그녀는 하버드대에서 임상심리학 공부를 마친 후 자신처럼 불우한 환경에 있는 사람을 돕는 단체 ‘Manifest Living’의 책임자가 되어 강연활동을 하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였다면 인내와 용기를 바탕으로 성공신화를 이룬 한 여성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 정도에서 끝났을 것이다.

 

02_사랑한다면

우연히 테드 토크 (TED TALKS)에 출연한 그녀의 강연을 듣던 내게 그저 넘겨 듣기엔 불편한 내용이 있었다. 이제는 결혼해서 남들처럼 가정을 이루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리즈가 어린 딸들의 자전거나 신발, 심지어 코트를 팔아 마약을 했던 자신의 부모에 대해 ‘자식 사랑이 지극했던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그분들을 만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다. 리즈의 이런 믿음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감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기 상황을 부정하려는 ‘현실 도피성 자기 최면’이라고 했다.

리즈를 인터뷰에 초대한 한 프로그램 담당자가 묻는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 딸아이들의 먹거리보다는 자신들의 마약 구매에 더 급급했던 부모님에 대해 자식 사랑이 지극했다고 할 만한 근거가 무엇이냐고…. 나도 묻게 된다. 학교도 끼니도 챙겨주지 않았던 부모에 대해 사랑이 많았다고 하는 말은 진심인가?

 

03_사랑의 얼굴

‘그래도 네 남편이 널 무지하게 사랑하잖아.’ 집안일에 손가락도 까딱 안 하는 남편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는 친구를 내 딴엔 위로한다고 건넨 말이다. 노동력 제공 없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며 친구가 내지르듯 내 말을 잘랐다.

조정래 작가의 ‘황토’엔 ‘남정네가 텃밭 농사에 손대는 건 부엌에 드나들며 부엌일 거드는 것만큼이나 흉 거리였다는데 텃밭 농사를 꿰차고 나서다 못해 아내를 대신해 우물에 나가 물을 길어주지 못해 늘 안타까워했다’는 남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창래 작가의 한 소설에선 여자를 위해 자기 몫으로 받은 주먹밥 두 개를 조심스럽게 모아 놓고 한 덩이를 더 구해 먹이려고 필사적인 남자의 모습을 그렸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의 모습이 아프게 전해져 온다. 사랑의 척도를 이야기할 때 노동력 제공이라는, 힘든 일은 대신해주고 맛있는 것으로 먹이고,더 좋은 것으로 입히고 더 나은 곳으로 보내고 싶은, 그래서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만큼 명료한 것이 있을까.

 

04_사랑의 근거는

그럼에도 리즈의 엄마 아빠는 불량한 부모 역할에 대한 혹독한 질책을 비껴갔을 뿐 아니라 오히려 훌륭하고 따뜻한 분들로 기억되고 있다. 사랑을 논할 때 노동력 제공보다 한 수 위인 것이 있다는 말이 된다.

리즈의 말 속에선 그녀의 부모가 자신들의 고통을 힘없는 어린아이들에게 폭력적으로 행사하지 않았으며 사랑의 표현에 인색하지 않은 분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모의 다정한 눈빛, 부드러운 몸짓이 아이들에게 배고픔을 넘어서는 더욱 현실적인 욕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겠다.

하지만 성장기 대부분의 세월을 쓰레기통을 뒤져야 했던 여성에게서 자기를 돌보지 않은 부모에 대한 원망을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면 이 여성이 지닌 사랑과 전진의 힘은 부모에게 받은 따뜻한 사랑 외에도 또 다른 그 어떤 것이 작용했을 것 같다.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그녀의 강연과 인터뷰를 찾아 듣는 시작이 되었다.

 

연민과 사랑 사이

매월 첫날은 정부 보조금이 나오는 날이었다. 리즈는 베란다 창틀에 머리를 내밀고 집배원이 집 근처에 가까이 오는 것을 부모님께 소리쳐 알리곤 했다.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기 ‘Breaking Night’엔 엄마 아빠가 보조금을 받으면서 환호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어린 리즈이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정부가 발행한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해주는 상점에서 리즈의 언니가 스티커 진열장에 매달려 있는 순간에도 ‘우리 앞에 여덟 명이 있어. 이제 일곱… 걱정 마, 엄마. 이제 금방 우리 차례야.’ 리즈가 엄마를 다독이고 격려하는 소리다.

건강한 엄마나 아버지라 해도 때로는 아이들을 의지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밖에서 돌아와 허겁지겁 저녁을 해 바쳐야 인심 쓰듯 몇 숟가락 뜨고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자식보다는, 집에서까지 힘들게 왜 이러냐며 설거지하는 엄마를 밀어내는 자식에게 고맙고 마음이 향하는 것을 편애라고 할 수 있을까.

식은땀을 흘리며 줄을 선 엄마에게 상황의 변화를 알리는 리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껏 엄마를 돕는 게 신이 난다. 나는 그것을 연민이라고 말하고 싶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 자식 때문에 삶에서 손해 본 것이 많다고 투정을 부리는 부모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리즈에게 돌아가신 부모님은 부모이기 전에 가난과 질병이라는 적지에 함께 버려진 전우이자 친구들이다.

전쟁터에 홀로 남은 군인처럼, 지상에서의 짧았던 그분들의 삶이 자기를 끌어안고 사랑과 미안함이 섞인 몸짓으로 의지하듯 바라보아 주었던 그 눈빛이 때로는 못 견디게 가엾고 그리운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05_연민, 어른의 다른 얼굴

나에게 연민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 준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타인을 향해 사납거나 매정하게 굴며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곱씹고 있다가 ‘요 때다’ 하며 갚아주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나이가 많든 적든, 부자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장애가 있든 인간이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연약하고 위태로운 모습이 친구에겐 보이는 것 같다. 그 친구를 통해 난 연민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과 맞물려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녀가 보여준 진정한 어른의 특징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 때문에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지 않는데 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떼를 쓰고 핑계를 댈 어른이라는 대상이 있다. 그렇다. 나이가 들어도 삶의 갈등과 어려움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어린아이 같은 어른이 있고 나이가 적어도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려는 어른다운 아이들이 있다.

 

삶이라는 선물

어린 시절부터 리즈는 ‘해줄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마약중독이 감투라도 되는가, 뻔뻔도 하지. 어린 자식에게 대 놓고 그런 말을 했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자신들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인식시켜 기대와 상실의 간격을 줄여보자는 애원이고 탄원이었으리라. 부모님의 애원이 아니라 해도 리즈에게 마약중독은 비난을 받아야 하는 수치스러운 버릇이 아닌 질병이었다.

앓고 있는 부모에게 기대한 것이 없으니 왜 나에게 주지 않냐고, 왜 나에게 소홀하냐고 화를 내거나 원망할 근거가 없다. 떼를 쓴다고 없던 것이 나올 리 없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필요한 것을 위해 스스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단다.

나는 리즈가 보여주는 사랑의 근거, 바람에 쓸려 다니는 낙엽처럼 길거리를 뒹굴며 살았던 삶에서도 부모님과의 추억을 간직하며, 원망이나 좌절이 들어설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힘의 원천은 그녀가 지닌 연민에 바탕을 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았던 삶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이 베푸는 노동력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그래서 무엇인가 주어졌을 때 놀라고 감사하는 삶이다.

어린 딸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을 기억하는 리즈가 ‘엄마는 저를 많이 사랑하셨어요’라고 했다면 그 말이 진심임을 나는 믿는다. ‘엄마, 조금만 참아, 곧 우리 차례야.’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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