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한 몸’이란 비유 어울리는 천재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

다양한 채색과 서양식 원근법 이용, 색과 선이 노니는 화려한 화풍 선보여

우리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일본의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1760년-1849년)는 우키요에라는 일본 풍속화의 대가이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거대한 파도가 용트림하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보면 “아! 이 그림!”하고 손뼉을 칠 것이다.

 

01_마네, 드가, 고흐, 모네 등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 일깨워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800년~1833년, 목판화

일본의 풍경과 인물, 풍속을 다룬 그의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 작품으로 꼽힌다. 그는 목판화가 주류를 이뤘던 시절, 다양한 채색과 서양식 원근법을 이용해 색과 선이 노니는 화려한 화풍을 선보였다.

호쿠사이의 작품들은 유럽으로 건너가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일깨웠는데, 특히 마네, 드가, 고흐,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의 예술혼에 깊이 스며들어, 그들의 작품 곳곳에 호쿠사이의 흔적이 보인다.

호쿠사이는 스스로를 가교진 (그림에 미친 화가)이라 칭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삼라만상을 작품에 담는 것을 목표로 삼고 평생에 걸쳐 3만점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들을 남겼다.

 

02_‘가나가와 해변의…’ 전 세계 가장 잘 알려진 동양미술작품

가을의 농부, 목판화

호쿠사이의 대표작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동양미술 작품일 뿐만 아니라,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의 모티브가 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1825년 제작된 ‘후가쿠 36경’ 중 하나로 그의 원숙한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후가쿠 (부악)란 후지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푸른 바다에 휘몰아치는 파도, 부서지는 포말과 함께 낙엽처럼 떠다니는 위태로운 배. 거대한 자연의 힘에 속절없이 휘둘리는 인간의 절망과 그럼에도 맞서 싸워 삶을 쟁취하려는 인간들의 절박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태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내가 있는 듯 어지러울 정도로 역동적인 힘이 화면 전체에 흐르고 있다. 높은 파도의 포말이 눈처럼 흩날리는 저 멀리 흰 눈을 이고 고고하게 서있는 후지산이 보인다. 자연과 인간의 대결을 저 멀리서 관조하고 있는 후지산의 모습이 무심하다.

또한 ‘붉은 후지산’ (1830년-1831년)의 화면에는 푸른 하늘을 비늘구름이 뒤덮고 있고 위용을 자랑하는 붉은 후지산이 화면 가득 펼쳐져 있다. 산꼭대기의 흰 눈은 봄을 맞아 녹아 내리는 듯하고 대지에는 푸르른 숲이 땅을 뒤덮고 있다.

단순한 구도와 명쾌한 선, 순도 높은 색들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후지산이라는 주제를 장대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단순한 삼각형의 선으로 이토록 후지산의 본질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다니, 정말 화가의 필력이 놀라운 작품이다.

 

03_중국화, 서양화 기법 받아들여 호쿠사이 풍 만들어

기생과 어린아이, 목판화

호쿠사이는1760년 일본 에도 (지금의 도쿄)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쇼군의 거울 제작자였다고 한다.  다섯 살에 숙부인 나카지마 이세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15세에는 책 대본 가게에서 일하며 목판화가의 도제로 목판화 기술을 배웠다. 19세가 되자 우키요에 양식의 대가인 가츠가와 순쇼의 공방에 들어가 19년간 그의 밑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는 그의 예술의 기초를 단단히 하고 예술적 영감을 살찌우는 시기였다.

1795년 순쇼의 공방에서 떠난 호쿠사이는 다와라야 화파에 들어가 삽화와 달력을 제작하고, ‘미인도’연작을 그렸다. 1798년 독립한 그는 자신만의 우키요에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는 자신의 예술의 발전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중국화나 서양화의 기법을 받아들이고, 이를 융합해 호쿠사이 풍이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갔다. 폐쇄적인 당시 화공들의 배척을 받고, 스승에게 파문까지 당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현재까지 명작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호쿠사이는 평생에 걸쳐 많은 미인도를 그렸는데, 그의 미인도 중 ‘부채를 든 여인의 초상’은 섬세하고 정교한 묘사로 아름다운 게이샤의 모습을 표현했다. 여인은 뒤로 고개를 살짝 돌려 살포시 미소 짓고 있는데, 계란형의 얼굴은 뽀얗게 빛나고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와 쭉 뻗은 콧대가 미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이하게 윗입술은 붉고 아랫입술은 검게 칠해져 있어 당시 화장술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얇은 천의 겉옷 위로 언뜻 비치는 살색이 관능적으로 묘사되어 여인의 단아한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또한 ‘기생과 어린아이’에서는 얼굴 표정의 묘사는 다소 간결하지만, 이마와 올린 머리 사이의 잔털이라던가 화려한 머리장식의 디테일함, 천의 고운 무늬의 묘사는 이 작품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고 있다.

 

04_새로운 길 찾아 더욱더 발전하려는 의지와 열정 계속

도카이도, 시나노자카, 목판화

이 천재적인 화가의 인생은 참으로 기이하다. 슌로, 소리, 다이토, 가쿄진, 이이쓰, 만지등 자신의 아호를 30번이나 바꾸고, 이사를 93번이나 다니는 등 그의 기행은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화풍이 발전할 때마다 호를 바꿨는데, 한가지 호를 사용하여 만족할만한 수준에 도착하면 과감히 그 호를 버리고 새로운 호를 만들었다. 일정한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더욱더 발전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묻어나는 행보이다.

또한 그는 그림을 그릴 때 거기에 몰두해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는데, 그림을 그리다 집안이 못 견딜 정도로 어질러지면 이사를 가 새로운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또 어질러지면 이사를 가는 반복이 계속되어 93번이나 이사를 다니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호쿠사이는 ‘늙은이 모습을 한 자화상’이나 ‘낚시꾼인 가쓰시카 호쿠사이 자화상’등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늙은이 모습을 한 자화상’에서 호쿠사이는 지팡이를 집고 허리를 구부린 채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고 있다. 주름진 얼굴과 지팡이에 의지한 손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아무 채색도 하지 않은 채 간결한 선으로 대상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묘사한 그의 데생력이 놀랍다.

 

05_‘우키요에’는 덧없는 세상의 그림이란 뜻도 가지고 있어

무주, 목판화

‘우키요에’는 에도시대 (1603년-1867년)에 발달한 풍속화를 일컫는데, 그 시대의 판화나 채색화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세상을 뜻하는 ‘우키요’와 그림이란 뜻의 ‘에’의 합성어로 덧없는 세상의 그림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17세기 초부터 시작된 일본의 에도시대는 200년이 넘게 계속되어, 안정된 사회에서 경제와 문화가 꽃피는 시기였다. 당시 개발된 ‘니시키에’라는 기법은 한판한판 다른 색을 찍어 채색화를 이루는 목판기법으로, 이로 인해 다양한 색상으로 입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서민들의 예술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우키요에’ 전문가게도 있어 사람들은 입맛에 맞는 작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복사꽃이 만발한 풍경, 후지산의 위용, 바다와 배등 일본의 산수를 그린 작품들도 있으나 서민들의 생활, 화려한 복장의 게이샤나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풍속도가 주를 이뤘다.

1808년작 ‘오기야 찻집의 새해 풍경’에서 우리는 당시 일본 가옥의 구조와 사람들의 의상을 알 수 있다. 직사각형의 면을 여러 개로 자른듯한 구조에 마루와 계단의 직선들이 지그재그로 그려져 있고, 사람들은 그 위에서 갖가지 포즈로 새해의 일상을 나타내고 있다.

마치 밑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것마냥 바깥쪽의 사람들은 아래쪽에 안쪽의 사람은 위쪽에 배치해 찻집의 모든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게 그렸다. 고운 옷을 입고 팔에 새해의 손님맞이에 필요한 물건을 가득 든 여인들, 귓속말을 하는 여인들과 허드레 일을 하는 남자들이 보이고 이층에는 구부리고 앉아 차와 음식을 열심히 준비하는 여인들이 보인다. 지금이라도 와글와글하는 소음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분주한 속삭임이 들리는 듯 바쁜 새해 아침이 눈앞에 펼쳐진다.

 

06_일본의 판화는 사실성 중시하던 서양미술계에 큰 반향 일으켜

부채를 든 여인의 초상, 목판화

1854년 미국에 의해 문호가 개방되어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고, 서양의 여러 나라와 무역을 해 일본의 문화 또한 서구로 흘러 들어갔다. 당시의 서양인들은 일본을 황금의 나라라 부르며, 동쪽 한구석에 자리잡은 섬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시작은 참으로 우연한 사건으로, 프랑스 만국박람회에 들여온 일본 도자기가 그림이 그려진 싸구려 포장지에 싸여 있었는데, 그 포장지를 한 화가가 발견했다. 그와 동료 화가들은 버려질 포장지에서 동양의 신비한 예술세계를 발견했고, 그것이 전혀 새로운 예술관에 의한 작풍품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19세기 프랑스 ‘자포니즘’ (일본취미)의 시작이었다. 강렬한 원색과 간결한 선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판화는 르네상스 이래 양감과 질감, 인물과 사물의 디테일한 사실성을 중시하던 서양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07_인상파 화가들 작품서 드러난 일본문화에 대한 열광

붉은 후지산, 1830년~1831년, 목판화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일본문화에 대한 열광은 대단했다. 모네는 모델에게 직접 기모노를 입히고 포즈를 취하게 해 ‘기모노를 입은 까미유’를 탄생시켰는데, 화려한 기모노의 무늬와 배경에 걸린 많은 부채들의 문양은 노골적으로 일본문화를 옮겨놓은 것 같다.

또한 그의 ‘포풀라 나무’ 연작은 호쿠사이가 일본 각지에서 보이는 후지산의 모습을 그린 ‘호도가야 연작’에서 영감을 받은 걸로 유명하다. ‘호도가이 연작’에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후지산을 그린 방식은 ‘사물 사이 그 너머로 보이는 모습’을 그린다란 의미에서 당시 서양미술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고, 이러한 시점의 새로운 변화는 서양미술의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마네의 ‘부채를 든 여인’뿐만 아니라, 고흐의 ‘탕기 영감의 호상화’ 속에서도 일본문화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작품 속 배경에는 좌우에 게이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위쪽 벽에도 일본여인의 모습이 액자에 걸려있어 당시 고흐가 얼마나 우키요에에 심취해 있었는지 보여준다.

또한 드가가 그린 ‘마네와 그의 부인’에서 사용한 공간의 평면성과 인물이 잘린 것같은 구성 또한 일본 판화의 전형적인 특징이고, ‘댄서’는 일본 부채의 모양처럼 부채꼴의 화면에 그려져 있다.

 

08_작품 주인공은 후지산이었지만 항상 정면에 내세우진 않아

오기야 찻집의 새해 풍경, 1808년, 목판화

호쿠사이는 만년에 ‘후가쿠 36경’이나 ‘후가쿠 100경’의 목판화집을 제작해 자신의 일생에 걸친 작업들을 모아 놓았다. 그의 예술세계에서 후지산은 중심과 뼈대를 이루고 있다. 멀고 가까움을 떠나 후지산이 보이는 일본 곳곳을 돌며 각지에서 보이는 사계절의 후지산의 모습을 그렸다.

그것은 구름을 이고 있기도 하고, 눈에 싸여있기도 하고 낙엽과 꽃에 둘러 싸여있기도 하다. 각 작품에서 후지산은 각기 다른 색깔로 존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한곳만을 바라보며 하나의 이상향을 창조한 것 같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은 후지산이었지만, 후지산을 항상 정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대신 주변의 또 다른 풍경을 전면에 세워 놓아 그 사이로 후지산을 보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호도가야역 근처의 시나노자카는 소니무 절경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후쿠사이는 ‘도카이도, 시나노자카’에서 소나무를 전면에 배치하고 그 사이로 보이는 후지산을 그렸다.

소나무들은 각기 다른 아름다운 선으로 표현되어 자연스러운 멋을 뽐내고, 가마에 탄 사람이나 말을 탄 사람, 봇짐을 지고 가는 이, 모두 삿갓을 써 잔잔하게 뿌려대는 봄비를 가리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은 수분을 머금은 듯 촉촉하게 그라데이션으로 그려져 있는데, 물에 적신 천으로 목판을 닦아 표면에 습기를 주고 그 위에 물감을 얹어 문질러 찍어내는 ‘후키보카시’라는 기법을 사용했다. 풍경뿐만 아니라 당시 생활의 단면을 보여주어, 우리도 그 시대로 돌아간 듯 잔잔한 평화가 가슴을 물들이는 것 같다.

그리고 가을의 들판에서 벼를 수확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린 ‘가을의 농부’는 해안가 농지에 노랗게 자라있는 벼와 볏짚을 엮어 등짐을 지고 나르는 농부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나무로 만든 가교와 쌓아놓은 볏짚들, 한쪽에는 자그마한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고 산등성이 저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정겨운 작품이다.

 

09_소묘집 제작, 수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 유쾌하게 표현

웃고있는 악마, 목판화

호쿠사이는 50대 중반 ‘호쿠사이 만화’라는 소묘집을 제작해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희로애락의 감정에 따라 유쾌하게 표현하였다. 간결한 선으로 상황에 따른 표정의 변화를 날카롭게 캐치해 묘사를 해서, 현대 만화의 시초라 불리는 그의 만화집은 만화가와 크로키를 공부하는 미술학도의 교본이 될 정도로 뛰어나다.

또한 그는 오니에도 관심을 가지고 민담 속의 요괴나 악마의 형상을 그렸다. 일본에서 오니란 귀신이나 도깨비, 신 등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일본의 신은 800만이란 소리가 있을 정도로 수도 없이 많은 오니는 장소 곳곳에, 사물 사이사이 어디든 존재해,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웃고 있는 악마’는 담청색 바탕에 도깨비가 그려져 있는데, 한 손에는 사람의 머리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론 그것을 가리키며 낄낄거리고 웃고 있다. 어금니가 삐져나온 흉측한 몰골의 악마는 인간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비웃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의 구도는 특이해서, 연하늘색의 공간과 반원형의 짙은 푸른색 공간을 나눠 마치 현실과 이 세계를 나눈 것처럼 보인다. 이 새로운 이분법은 마치 악마가 자신이 속한 곳에서 벗어나 현실로 진입하려는 듯한 느낌도 주는 것 같다.

또한 ‘오이와의 유령’에서는 불에 탄 풍등과 유령의 얼굴을 매치해 타고 남은 등 속에서 유령이 울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호쿠사이는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주변의 생활사뿐만 아니라 오니라는 형이상학적인 존재와 인간 내면에 깃든 욕망과 두려움도 화폭에 담았다.

 

10_90 평생 그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완벽한 여정 추구

후지산에서 탈출하는 연기 속 용, 목판화

호쿠사이는 그가 70세 경에 남긴 화집 ‘후가쿠 100경’의 말미에 “나는 6세부터 사물의 형태를 그리는데 열중했다. 50세 때부터는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내가 70세 이전에 그린 그림 가운데 정말로 중요한 그림은 하나도 없다. 73세가 되어 나는 새, 동물, 곤충, 물고기의 진정한 특성과 초목의 중요한 본질을 약간 파악했다. 따라서 80세가 되면 나는 조금 더 진전할 테고, 90세 때는 사물의 의미를 훨씬 더 깊이 통찰할 것이며, 100세가 되면 참으로 놀라워 질 테고, 110세 때는 내가 찍는 점 하나하나, 내가 긋는 선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참으로 인생을 건 광오한 발언이다.

어린 나이로 미술이란 세계에 발을 디딘 그는 한세기에 육박하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완벽을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가히 예술과 한 몸이라는 비유가 어울리는 천재적인 화가라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삶이 110세까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나마 다른 천재적인 화가들에 비해 90세까지 장수하여 오랜 세월이 주어진 데 감사할 뿐이다.

 

 

* 다음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불안하고 신비로운 정신세계와 함께 하겠습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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