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카스 한 지붕 아래!

코디네이터… 최상의 서비스 위해 정부와 고객 다리역할 수행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여러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문제까지 겹쳐 더 어려움을 겪는다. 본 칼럼은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문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 그리고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는 뜻에서 마련됐다. 이번 호에서는 카스 노인복지팀의 정정애 코디테이터로부터 이민자로서의 호주살이와 함께 코디네이터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01_뭘 모르니까 시작하는 것이 호주살이?!

다양한 행사에 참가해 서비스를 설명하는 일도 에이지드 케어 분야 코디네이터 업무 중의 하나이다.

어려움과 고난은 특히 이민자로 살아가는데 있어 따라오는 인생여정의 한 부분인 듯하다. 인종차별과 불합리한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나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스러운 상황… 이러한 일들은 이민자로서 우리가 직면하는 흔한 일상의 경험들 중 한 부분이다.

하지만 떠나온 곳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은 새로운 곳에서 잘 정착하는데 매우 귀한 자산이 된다.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인내심과 믿음,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은 어디에서나 필요한 덕목이다.

초등학교 동창인 남편과 1995년 12월 결혼하면서 나의 호주살이가 시작되었다. 한 동네에서 이웃으로 살았던 남편은 부모님과 함께 10세 때 호주로 이민을 갔고 그 후 가끔씩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신기하게도 살던 동네를 꼭 들렀다.

그 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만났고 그 당시에는 남편을 남자친구로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의 친구라서 그런지 어떤 거부감이 없이 만날 때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지낸 서먹함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다.

때마침 나는 당시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잠시 휴지기를 가지려고 계획하던 중이었는데 가끔 고향을 찾은 남편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쉽게 호주여행을 선택했다.

‘뭘 모르니까 시작하는 것이 호주살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내고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초등학교 동창과 부부의 연을 맺고 호주에서 이민자로 인생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인데다가 꽃길을 예상했던 결혼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이민 1세대가 그렇듯 시어머니는 열심히 일하시며 독자인 아들만 바라보고 사신 분이었고 남편도 어머니에게는 둘도 없는 효자여서 끈끈한 모자 사이에서 나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02_매우 다양한 코디네이터의 일

더군다나 언어에 대한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호주에 대한 환상은 저 만치 사라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삶은 고단했다. 그래도 그 누구도 호주 가서 살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어려운 시간을 견디어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만의 가족이 생기고 대개의 부모들이 그렇듯 나도 내 아이 둘을 금지옥엽으로 키우면서 일상생활은 자연스럽게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사회와의 교류는 극히 제한되었다. 그래도 두 아이가 하이스쿨을 졸업할 즈음에는 내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TAFE에 등록하고 영어코스 이수 후 Community Service Work 코스를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등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젊은 현지인들과 같이 공부하며 학교에 출석한다는 자부심이 무척 컸던 시절이었다. 수업은 빠지지 않았고 조금 더 일찍 출석해서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 녹음도 하며 어렵사리 코스를 이수했다.

그러던 중에 지인이 먼저 일을 시작하고 있던 현재의 카스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미 시어머니는 카스 서비스를 이용하고 계셨기에 입사 전에 솔직히 망설임도 있었으나 코디네이터로서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고 상담하면서 또 육체의 노쇠로 인해 나약함을 겪는 어르신들을 근접거리에서 모시며 시어머니를 더 이해하게 되었는데 내 직업을 통해 소원할 뻔했던 어머니와의 관계가 개선된 것은 큰 수확이다.

특히 1995년쯤부터 구완와사와 뇌졸증을 시작으로 건강이상 신호가 시작 되더니 우울증까지 있었던 시어머니는 현재 카스 서비스를 받고 계시는데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어머니는 물론 각자의 일이 있는 가족들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코디네이터의 일은 매우 다양하다. 하루 종일 고객이나 관련기관과의 전화로 또는 고객방문을 위한 운전으로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많다. 센터링크는 알아도 마이 에이지드 케어 (My Aged Care)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고객을 방문해서 65세 이상 어르신이 신청할 수 있는 마이 에이지드 케어에 대해 설명하고 신청을 도와드린다.

그리고 정부의 심사결과에 따라 고객이 카스를 서비스기관으로 선택하면 그 때부터 정부에서 정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고객에 따라 제공받는 서비스가 다르지만 청소와 쿠킹 또는 그룹활동이나 의사 방문을 위한 교통 서비스 등을 제공할 서포트워커 배정, 고객 건강상황에 대한 리포트 작성, 관련 의료기관과 필요한 물품 구입을 위한 업체연결 등 코디네이터의 일은 정말 다양하다.

 

03_중증치매 앓던 90이 훨씬 넘은 어르신을 보며…

정정애 코디네이터가 시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호주정부가 시행하는 노인복지제도의 목적은 어르신들이 양로원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지내면서 필요한 부분에서의 서포트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하며 독립적으로 여생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이 제도는 고객은 물론 정부와 고객의 가족 등 모두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정부와 고객, 고객가족, 관련기관 등 하나 하나가 잘 연결되어야 어르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가 큰 차질 없이 진행된다. 코디네이터는 정부의 기대와 고객과의 기대 사이에서 고객의 일상이 원활하게 잘 지속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고객 중에 90이 훨씬 넘은 나이에 중증 치매를 앓는 어르신이 있었다. 집안 청결상태나 개인 위생상태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어렸을 때 습성대로 기상 후엔 꼭 침대 정리를 해놓고 독서를 좋아하셨는지 여기저기 날짜 지난 신문과 잡지 등 읽을 거리가 늘상 주위에 즐비했다.

햇살이 좋은 날엔 해바라기를 하면서 꽃핀 것을 감상하며 의자에서 졸곤 하셨는데 이후 운명하셨지만 예쁜 치매를 앓고 계셨던 분으로 기억된다. 이 어르신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병마가 날 지배할지라도 늘 감사하며 지낼 수 있도록 내 일상을 좀 더 좋은 습관으로 채워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이민자의 생활이 그렇듯 나도 행복했던 때와 고단했을 때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망각이 있어 오늘도 감사히 잠자리에 들고 내일을 계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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