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민화가, 서양 미술사의 거목 외젠 들라크루아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감성과 정열 표현해 새로운 미술사조 창시

19세기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 (Eugene Delacroix, 1798년-1863년)는 수많은 그의 대표작들이 루브르박물관에 걸려 그 위용을 자랑하는 프랑스 국민화가이자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서양 미술사의 거목이다. 그는 프랑스의 삼색 깃발을 휘날리며 선두에서 혁명을 이끌어가는 여인과 자유를 찾아 봉기하는 민중의 모습으로 프랑스혁명을 묘사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01_거침없는 붓놀림, 다양한 색 표현력은 인상파 화가들에 큰 영향

갈릴리 호수 위의 그리스도, 1854년, 유화

그는 종교, 신화, 문학, 역사를 넘나들며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휘몰아치는 감성을 빛과 색채를 통해 화면 속에 구사했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생생한 현장감,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들은 그의 화가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준다.

폴 세잔이 “들라크루아의 팔레트는 프랑스의 위대한 팔레트다. 그만큼 풍부한 색채를 사용한 화가는 없다. 우리는 모두 들라크루아를 통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거침없는 붓놀림과 다양한 색의 표현력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이성에 중점을 둔 신고전주의의 완벽하고 정적인 화법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감성과 정열을 표현해 새로운 미술사조를 창시한 그는 새로운 길을 추구하는 후대 화가들에게 많은 찬사를 받았다.

 

02_19세기 수놓은 낭만파의 물결에 몸을 싣고…

단테의 배, 1822년, 유화

들라크루아는 프랑스 파리 근교 생 모리스에서 정부 관리인 아버지와 왕실 가구업체 가문의 후손인 어머니의 네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예술과 학문을 사랑하는 부유한 명문가에서 자라난 그는 어릴 때부터 문학과 음악, 그림, 연극 등 예술적인 소양을 키웠다.

그러나 행복했던 유년기는 길지 않았고 7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년 후에는 형이 전사를 하고 7년후에는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모두 잃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빈곤에 처했던 그의 비극적인 상황은 그의 성격을 우울하게 만들고 현실이 아닌 환상의 세계로 침잠하게 만들었다. 그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문학작품에 몰두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상황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화가인 삼촌의 도움으로 게렝의 작업실에서 회화를 배운 들라크루아는 18세가 되어 파리의 명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해 화가의 길을 시작했다. 19세부터는 게랭의 작업실에서 만난 제리코와 함께 낭트대성당의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는 쇼팽의 음악이나 빅토르 위고의 소설, 조르주 상드의 문학에 심취했고, 19세기를 수놓은 낭만파의 물결에 몸을 실었다.

 

03_경직된 고전주의의 틀 부수고 낭만주의 화법을

묘지의 고아소녀, 1824년, 유화

1822년 작 ‘단테의 배’는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아케론 강을 건너 5번째 지옥으로 내려가는 장면을 화가의 상상력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정확한 데생과 인물들의 사실적 표현은 고전주의 화법에 가깝지만, 인물들의 다양한 포즈와 거친 붓터치가 경직된 고전주의의 틀을 부수고 낭만주의 화법을 드러낸다.

어두운 배경 속 인물들은 빛을 받은 양 선명하게 표현되어 각자의 감정상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망자에 둘러싸여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 두 사람과 억센 힘으로 망자들을 쳐내는 뱃사공의 등 근육, 기를 쓰고 뱃전으로 기어오르는 망자들의 절박함이 화면을 잡아먹는다.

어두운 배경이지만 그 어둠 속에는 다채로운 색들이 풍부하게 섞여 어둠의 질감을 살리고, 사후세계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스러움이 가득 차있다. 뱃전을 넘나드는 파도의 거친 붓터치와 배를 향해 매달리는, 영영 죽지 않고 떠다니는 형벌을 받은 망자의 절박한 몸짓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낭만주의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한 1824년 작 ‘묘지의 고아소녀’에서 우리는 드러나지 않고 내면에 꾹 눌러 담은 슬픔의 무게를 경험할 수 있다. 소녀의 표정은 강렬한 슬픔에 사로잡혀 얼어붙은 듯하다. 소녀의 눈물 고인 눈은 텅 빈 채 허무와 비탄을 안으로 삭히며 붉게 물들어 있다. 어딘가를 보는데도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시선, 눈물로 붉어진 눈가와 코끝, 힘없이 벌어진 입술, 이 정교하고 세밀한 디테일이 모여 소녀의 내적 슬픔을 드러낸다.

 

04_키오스 섬 학살 아닌 전통미술의 학살?

미솔롱기 폐허 위에 선 그리스, 1826년, 유화

1824년 살롱전에 출품된 ‘키오스 섬의 학살’은 키오스 섬에서 그곳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오스만 투르크인들에게 학살 당했는데, 민간인 2만 5000여명이 살해 당하고 5만여명이 노예로 끌려간 끔찍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무고하게 학살 당하는 이들의 허망함이 비탄에 젖어 늘어져 있는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묻어 나오고, 앞발을 들고 뛰는듯한 말 위에 올라 희생자들을 내려다 보는 정복자의 표정에 학살자의 잔인함이 가득하다. 희생자와 가해자의 극명한 대조가 이 처절한 비극을 극대화시킨다.

저 멀리 보이는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우울하게 펼쳐진 바다, 뒤로 보이는 학살의 현장들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명도가 낮은 색으로 처리되어, 그리스인들이 당한 처절한 고통을 애도하는 것만 같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전통미술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 작품을 접하고 키오스 섬의 학살이 아니라 전통미술의 학살이라고 떠들었지만, 젊은 예술인들은 시대를 앞서가며 새로운 미학을 선보인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는 그리스의 전쟁을 주제로 해 또 하나의 위대한 작품을 남겼는데, 1826년 그려진 ‘미솔롱기의 폐허 위에 선 그리스’이다. 이 그림에서 양손을 펼치고 폐허 위에 서있는 여인은 그리스라는 국가를 형상화한 것이다. 터키에 점령당한 그리스 서부의 도시 미솔롱기, 이곳은 그가 좋아했던 시인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전쟁 중 34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중앙에 우뚝 선 여인은 자유에 대한 뚜렷한 의지를 가지고 정면을 응시한다. 마치 ‘이 참상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외치는 것 같다. 이 작품에는 전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뒤쪽에 긴 창을 들고 서있는 터키군인과 돌 더미 사이로 삐져 나온 시체의 손만으로 전쟁의 참상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의 감정을 고취시키고 공감을 느끼게 하는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05_색채의 절묘한 배합, 격정적 운동감… 낭만주의 화법의 최고봉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유화

1827년 그려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가로 4.9미터, 세로 3.9미터의 대작으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더불어 들라크루아의 2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인 사르다나팔루스가 적군에게 함락당했을 때 자신의 총희들과 애마를 죽이고, 함께 불에 타 죽음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전설을 그렸는데, 바이런의 시극 ‘사르다나팔루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왕은 흰옷을 입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채 이 학살의 현장을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다. 그의 곁에 쓰러진 나체의 여인, 병사들에 의해 칼에 찔리는 벌거벗은 여인들, 그리고 화려한 장식을 매단 채 끌려와 죽임을 당하는 애마, 바닥에 흩어진 금은보화… 화면은 온통 죽음과 종말을 향한 광란의 파티이다. 환락과 부의 상징들은 순식간에 끔찍한 학살의 도가니로 변하고, 이 모든 것을 관조하며 자신의 마지막을 음미하는 왕의 차가운 광기에 싸인 표정에서 타인을 향한 자비는 발견되지 않는다.

가운데 대각선 방향으로 왕의 흰옷과 붉은 침대, 여인들의 나체가 빛을 받은 양 선명하게 드러나 중심을 잡고, 작품 상단부와 하단부는 어둡고 짙은 색으로 표현해 자칫 혼란할 수 있는 구도를 단단히 잡아주고 있다. 죽임을 당하는 여인의 무력한 몸부림, 죽이려는 병사의 잔인한 칼부림, 희생자들의 삶을 갈구하는 손짓과 쓰러져가는 몸짓 등 격렬한 운동감으로 채워진 화면은 가운데 무심히 바라보는 왕의 정적인 포즈와 대비되어 더욱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된다. 화려하고도 풍부한 색채의 절묘한 배합과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격정적인 운동감은 가히 낭만주의 화법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겠다.

 

06_자유 갈망하는 인간본성의 내적 욕구 해방

사자 사냥, 1855년, 유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930년 프랑스혁명을 그린 작품으로 프랑스 하면 이 작품을 떠올릴 정도의 상징성과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프랑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프랑스인의 자부심을 높여주는 표상과도 같은 작품이다. 혁명이라는 장엄하고 열정적인 주제를 이처럼 한눈에 쏙 들어오게 표현한 화가가 있을까?

자유의 여신으로 명명된 여인은 찢어진 옷을 걸친 채 삼색기와 총을 들고 바리케이트를 넘는다. 삼색기가 나타내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류 최고의 가치가 높게 휘날리며 혁명의 열정을 드높인다. 찢어진 옷 위로 드러난 가슴은 여성의 상징이기보다는 자식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는 어머니의 숭고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바닥에 쓰러진 전우들의 시체를 넘어 자유를 외치며 앞으로 전진하는 여인의 강인함과 숭고함이 불타는 시가지에서 피어 오르는 화연 속에서 밝게 빛난다. 총과 칼을 든 부르주아와 평민들이 그 뒤를 따른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혁명의 물결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귓전을 울리고, 장엄하고 역사적인 위대한 순간이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다.

냉철한 이성보다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낭만주의 특성상 잔인하고 비참한 혁명의 실체보다는 환상적이고도 열정적인, 혁명이란 이래야 한다는 바램과 희망으로 덧입혀져 있다. 아마도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계몽주의와 이성주의로 표방된 고전주의가 몰락하고, 낭만주의란 혁명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쟁취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감성과 열정,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본성의 내적 욕구를 해방시켰다고도 보여진다.

 

07_피카소조차도 그의 이 작품을 오마주해…

알제의 여인들, 1834년, 유화

프랑스혁명 후 정부사절단이 되어 모로코로 떠난 들라크루아는 반년에 걸친 모로코 여행과 돌아오는 길에 들린 알제리의 문화에 커다란 감명을 받고, 이 이국적인 정서를 캔바스에 옮기기 시작했다. 19세기 초반 유럽인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이국을 향한 동경과 환상을 가지고 열심히 그들의 문화를 퍼 나르기 시작했는데, 이 오리엔탈리즘은 서양미술사에서도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834년 살롱에 출품된 ‘알제의 여인들’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문화를 유럽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항상 새로운 시도가 그렇듯이 찬반 양론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양탄자가 깔린 방안에 화려한 전통의상을 걸친 3명의 여인들이 앉아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여인들은 망중한을 즐기는 듯 느슨하게 풀어져 있다.

아마도 여인의 손에 들린 물담 배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퇴폐적인 분위기의 여인들은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금남의 집 하렘의 여인들이다. 화가는 이국적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벽지, 양탄자의 무늬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고, 여인들의 옷도 그 재질과 장식이 손에 만져질 듯 그려져 그 디테일과 화가의 표현력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

피카소조차도 그의 이 작품을 오마주해 ‘알제의 여인들’이란 걸작을 그렸을 정도로 그가 젊은 예술가들 앞에 펼쳐놓은 한없는 가능성은 오늘날까지 예술인의 열정을 북돋아 준다.

 

08_보는 이들은 속절없이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고

어미 호랑이와 장난치는 새끼 호랑이, 1831년, 유화

들라크루아는 1933년부터 시작해 수많은 벽화를 그렸다. 부르봉 궁전의 알현실 벽화부터 베르사이유 궁전 역사 박물관의 벽화 ‘타유부르 전투’와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등 르네상스 대의 걸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또한 루브르박물관, 파리시청을 비롯해 생쉴프스교회의 천장화들과 벽화들을 그렸다.

그 중 루브르박물관 아폴론전시실의 중앙 천장화 ‘피톤을 물리치는 아폴로’는 1850년과 1851년에 걸쳐 제작되었는데, 그 스케일과 장엄한 작품성으로 그의 걸작으로 꼽힌다. 세로 8미터, 가로 7.5미터의 대작은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로가 델피에서 거대한 구렁이 피톤과 싸워 물리치는 장면을 담았다.

17-18세기 장식화의 형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에서 화가는 자신만의 화법으로 전투의 격렬함과 승리의 도취라는 한편의 장엄한 서사시를 펼친다. 여신들이 천사들과 승리의 월계관을 들고 하늘을 날고, 중앙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폴로가 괴물 구렁이를 향해 활을 날리고 있다.

아래쪽에는 컴컴한 구름 밑에서 똬리를 틀고 하악 거리며 덤벼드는 구렁이와 죽음을 당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마치 천상과 지하의 전쟁과도 같이 보이는데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색채와 구성으로 표현되어 보는 이들은 속절없이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09_자유로운 붓질은 다가오는 새시대의 전조처럼

키오스 섬의 학살, 1824년, 유화

만년의 들라크루아는 기독교에 심취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와 ‘천사와 싸우는 야곱’ 등 성서 안의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호수의 거친 파도는 돛단배를 삼킬 것만 같은데, 우왕좌왕하며 공포에 떠는 제자들은 소란 속에서도 곤히 잠드신 예수를 깨우러 달려간다. 1854년 작 ‘갈릴리 호수 위의 그리스도’의 내용이다.

성서의 한 페이지가 그대로 재현된 이 작품은 자유분방하고 거친 붓터치로 녹색의 파도를 표현하고, 금새라도 파도에 휩쓸릴 것 같은 배의 형태가 바람에 찢어질 듯 휘날리는 돛과 함께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늘의 구름조차 폭풍을 머금고 있는 듯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이다. 전체적으로 당시의 풍경과 격렬한 감성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보는 우리도 천둥번개가 내려치는 호수 한가운데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들라크루아는 평소 동물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번개에 놀라 날뛰는 말’이나 ‘토끼를 잡아먹는 사자’와 같이 동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즐겨 그렸고 ‘어미 호랑이와 장난치는 새끼 호랑이’ (1831년)와 같이 평화롭고 모성을 자극하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완숙한 화법을 보이는 ‘사자 사냥’ (1855년)에서는 물고 뜯기는 야수의 생태와 표호하는 사자들의 울음소리가 화면 가득히 울려 퍼지고, 말을 타고 사자를 찌르는 인간들을 향한 맹렬한 증오가 화면 전체를 물들인다. 피와 땀, 헐떡이는 신음과 악취로 범벅이 된 살육의 현장이 자유로운 붓터치로 화려한 색채의 파노라마를 펼치고 있다.

힘있는 필치로 사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묘사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형태의 정확한 데생이 주는 안정감에서 벗어나 붓과 색채가 하나가 되어 춤추는 듯한,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현대적으로 보이는 자유로운 붓질은 다가오는 새시대의 전조처럼 보인다.

 

10_그의 고독한 인생에 있어 예술은 인생의 전부였을 것

피톤을 물리치는 아폴로, 1851년, 천장벽화

들라크루아는 1855년 만국박람회에서 개인전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고, 프랑스 왕립학술원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1857년부터 1863년 생을 다할 때까지 말년을 보낸 파리 퓌르스텐베르 광장의 아파트는 들라크루아 국립박물관이 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프랑스 100프랑짜리 화폐에는 그의 모습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실려있다.

평생 결혼도 안하고, 부모도 일찍 여읜 그의 고독한 인생에 있어 예술은 아마도 인생의 전부였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꽃다발 뒤에 예술적으로 감추어진 화산 분화구’라고 표현한 것처럼, 생활에서 터뜨리지 못하는 모든 열정을 그림 속에 쏟아 부었고, 그 결과는 찬란했다.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보면 웅장한 교향곡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색채의 조화는 마치 교향곡에서 현악기, 타악기, 관악기들이 모여 합주를 하는 듯 휘몰아치는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질과 양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화가는 생전 1만점이 넘는 작품들을 그렸고, 수많은 그의 대표작들은 루브르박물관에 걸려 그 위용을 자랑한다.

세잔, 모네, 르누아르, 고흐, 고갱, 피카소, 마티스 등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 거장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하고, 그의 작품을 오마주해 걸작들을 남겼다. 19세기 신고전주의의 종지부를 찍고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사조를 창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술을 향해 나가는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그의 발자취는 실로 위대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겠다.

 

* 다음 회에는 멕시코의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남미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국적인 작품으로 만나겠습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Previous article황혼의 어머니
Next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189강 나는 그녀 뒤에 앉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