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흐름 화면에 녹인 화가 조르주 쇠라

순색의 작은 점들로 이뤄진 환상적, 독보적 미술 장르 신인상주의 탄생시켜

32년이라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현대 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 조르주 쇠라 (Georges Pierre Seurat, 1859~1891)는 점묘법으로 몽환적이고도 아름다운 화면을 창조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이다. 광학과 잔상이라는 과학과 정서적인 회화를 접목해 색점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된 그의 예술세계는 순색의 작은 점들로 이루어진 환상적이고도 독보적인 미술 장르인 신인상주의를 탄생케 했다.

 

01_훗날 입체파와 미래파에 큰 영향 줘

그랑드자트 섬의 센 강 1888년, 유화

서로 다른 색을 작은 색점들로 나란히 병치하여 빛의 움직임에 의해 우리에게 보여지는 색채의 생생한 결과를 얻는 점묘법은 근대 미술사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19세기 과학의 발달로 등장한 사진기술로 설 자리를 잃은 미술계에 사진이 줄 수 없는 빛의 흐름을 묘사하고, 점묘법이 주는 아른거리는 효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화폭에 담았다.

또한 야외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대상을 묘사했기에 정교한 데생을 할 수 없었던 인상주의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스케치와 습작을 거쳐 화실에서 대작을 완성하는 방법으로 신인상주의라는 자신만의 새로운 미술사조를 이룩했다.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이지만 가슴으로는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간직한 채 과학과 예술의 결합에서 아름다운 정서를 추출해내었다. 빛과 색채의 조화와 구도의 균형을 추구한 쇠라의 예술세계는 후에 입체파와 미래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실로 현대 미술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의 거목이라 할 수 있겠다.

 

02_16세 때 쥐스탱 르키앙에게 본격적으로 그림 배워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6년, 유화

쇠라는 1859년 파리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부유한 부르주아 계층으로 아버지는 법집행관이고, 어머니는 파리 출신의 도시적인 여인이었다. 그는 파리의 아파트에서 어머니, 동생들과 살며 여덟 살때부터 미술에 흥미를 느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아홉 살에는 아마추어 화가인 외삼촌에게서 회화의 기초를 배웠다.

부유한 환경에서 남부러울 것이 없이 자란 그는 다른 형제들 덕에 집안의 가업을 이어 법률을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이 마음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을 할 수 있었으니 대부분의 다른 화가들에 비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화가의 꿈을 키우던 쇠라는 16세가 되어 조각가 쥐스탱 르키앙에게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고 19세가 되자 에콜 데 보자르 (국립미술학교)에 진학했다. 학생 쇠라는 미술 실기보다는 회화의 이론적 학문에 더욱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의 어린 날을 사로잡았던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과학적 증명이 자신의 갈증을 풀어주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도서관에서 만난 제네바의 화가 쉬페르빌의 저서 <절대적인 미술기호들에 관한 평론>은 그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로서 그는 미술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에 한 발을 내디뎠다.

또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화학자 슈브릴의 <색채의 동시 대비법칙에 관하여>는 색에 대한 지식을 갈구하는 쇠라의 교과서가 되었다. 슈브릴은 후에 점묘법의 근간이 되는 두 가지 법칙을 발견했는데 두 가지 색이 살짝 포개지거나 곁에 나란히 있으면 일정 거리를 띄운 상태에서 제3의 색으로 보이는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어떤 특정한 색을 본 후에 정확히 반대되는 잔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빨강색을 본 후에는 녹색의 잔상을, 노란색을 본 후에는 보라의 잔상을 보는 것은 우리의 눈 망막의 지속성 때문인데 이러한 발견은 후에 신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03_1883년 처음으로 살롱전에 출품

서커스 1891년, 유화

쇠라는 물리학자 오그던 루드의 <현대색채론>에도 심취했는데 색과 광학의 효과를 연구했던 이 과학자 역시 두 색을 병치하고 멀리서 보면 제3의 다른 색으로 보인다는 점을 역설하고 원색이 다른 원색 옆에 있을 때 두 색을 혼합한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우리의 뇌가 인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감의 색과 빛이 사물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색은 서로 다른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물감을 다룰 때 색의 더함과 뺌의 차이를 알고 그것을 조화롭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이런 이론은 색의 가산혼합과 감산혼합이라고 불렸다.

색채는 여러 가지 색을 섞을수록 탁하게 느껴지지만 광선의 혼합은 명도를 더욱 높이기에 색을 섞지 않고 나란히 두었을 때 더욱 뚜렷하게 색의 본질 그 자체를 드러낼 수 있다는 논리는 쇠라가 점묘법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20세가 되자 브레스트에서 군복무를 시작한 쇠라는 바다와 배, 해변 등 항구 도시의 풍경을 그렸다. 그는 군복무가 끝나자 파리로 돌아가 친구인 아망 장과 함께 화실을 차려 본격적인 그림작업을 해나갔다. 이 두 젊은 화가는 그림을 그리며 저녁에는 댄스 홀과 캬바레도 다니고 봄에는 여객선을 타고 후에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그랑드자트 섬에 놀러 가기도 하며 낭만적인 예술가의 삶을 즐겼다.

쇠라는 1883년 처음으로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해 ‘어머니의 초상화’와 ‘아망 장의 초상화’를 전시했다. 그리고 점묘법의 서곡을 울리는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습작과 스케치를 하며 이 대작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04_색점들과 선이 공존해 점묘법의 서장 여는 작품들

서커스의 사이드 쇼 1888년, 유화

1884년 작품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은 파리의 교외 아스니에르에서 여가를 즐기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을 그린 그림이다. 고된 노동과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며 망중한을 즐긴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안개에 잠긴 듯 희미하고 화면 아래쪽 강아지와 함께 모로 누워있는 이는 흑백의 조화로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왼쪽에 모자를 쓰고 구부려 앉은 사람이나 멀리 흰옷을 입고 중절모를 쓴 이, 물가에 걸터앉은 이, 또 물 속에서 장난치듯 즐기고 있는 두 사람, 화면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남자이다. 아마도 노동하는 남자들의 휴식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강에 떠있는 배와 요트들이 푸르른 수목과 더불어 햇살이 내려 쬐는 따스한 오후의 평화로운 정경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화면을 수놓은 수많은 색점들은 아스라한 빛의 흐름을 묘사하고 인물들의 정확한 데생과 앉아있는 포지션의 완벽한 구도는 인상파의 빛과 고전주의의 견고한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색점들과 선이 공존하여 점묘법의 서장을 여는 작품으로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와 더불어 쇠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05_독립미술가 협회 결성, 앙데팡당전 열어

아망 장의 초상화 1883년, 드로잉

그러나 1884년 살롱전에 출품된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에게 거절당했고 이는 앙데팡당 전의 창설로 이어졌다. 심사위원도 상도 없이 주위의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오직 화가들의 독립적인 전시를 위해 뜻이 맞는 화가들과 독립미술가 협회를 결성해 앙데팡당전을 열었다. 앙데팡당전은 현대미술의 활성화에 지대한 공을 세우며 140년이 가까운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 해 5월에 열린 앙데팡당전에 출품된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는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었고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본능과 직관에 바탕을 둔 인상주의와는 전혀 다르게 체계적인 과학이론에 입각한 쇠라의 작품에 ‘신인상주의’ 그리고 ‘점묘법’이라는 명칭을 부여함으로 이는 쇠라를 대표하는 하나의 미술사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의 평생의 제자가 되어 신인상주의를 발전시킨 폴 시냐크도 만나게 되었다. 폴 시냐크는 쇠라의 점묘법과 그가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가치에 크게 공감했고 쇠라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32세의 나이로 요절해 많은 작품을 남기기엔 너무도 짧은 세월을 살다간 쇠라의 업적은 시냐크에 의해 더욱 확장되고 우리에게 신인상주의라는 화법을 각인시켰다.

 

06_‘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신인상주의 선언문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1884년, 유화

완전한 점묘법으로 완성된 첫 작품인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6년)는 쇠라의 대표작이자 현대미술 작품 중 톱 50위 안에 드는 작품으로 현대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수많은 드로잉과 유화 습작으로 준비하고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2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제작된 이 작품은 쇠라의 피, 땀, 노력의 결정체이다.

생각해 보라.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가 넘는 대형 캔바스에 붓으로 일일이 점을 찍으며 알맞은 색을 선택하고 매치하는 고뇌와 수고를…. 이 어마어마한 작업에 쇠라는 그간 가꾸어온 색채에 관한 모든 이론을 쏟아 부어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신인상주의 선언문’이라고까지 불렸다.

파리 근교에 자리잡은 그랑드자트 섬은 파리 시민들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유원지이다. 강에는 보트들이 떠있고 곱게 차려 입은 여인들은 양산과 모자로 햇빛을 가리며 한낮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소풍을 나온 가족들과 친구, 연인들로 가득한 이곳은 싱그러운 나뭇잎에 둘러싸여 잔디밭 위를 거니는 모두에게 안락한 행복을 주는 것 같다.

수많은 색점들로 이루어진 형태들은 완벽한 데생과 안정감 있는 구도로 화면을 채우고 있다. 냉철한 이론과 계산으로 만들어진 화면이 이토록 아름다운 정서를 내뿜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07_자연광선 아닌 밤의 인공적 조명, 세밀한 점묘법으로

에펠탑 1889년, 유화

‘모델들’은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와 같은 해에 제작된 작품으로 커다란 화실에 세 여인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오른쪽에 모로 앉아 녹색 스타킹을 신는 여자, 가운데 서서 당당하게 포즈를 잡고 있는 여자, 왼쪽에 앉아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여자는 모두 한 사람이 각각 다른 포즈를 취한 뒤 화면에 배치해 그린 그림이다.

바닥에는 옷가지들이 떨어져 자연스레 흩어져 있고 화가와 모델들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는데 화실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보여지는 도시인의 곱게 차려 입은 여유롭고 우아한 자태와는 다르게 모델들의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1888년 완성된 ‘서커스의 사이드 쇼’는 1887년 어느 봄날 순회 서커스단이 파리 노동자 지역에 무대를 세운 것을 보고 스케치해 그린 그림이다. 야외의 자연광선이 아닌 밤의 인공적인 조명을 세밀한 점묘법으로 그린 작품으로, 공중에 매달린 가스등의 불빛이 공기를 통해 은은히 번져나가는 느낌을 표현하였다. 그는 자신의 화면 분할주의 이론에 입각해 화면을 여러 개의 직사각형으로 색면을 나누어 변화와 안정감을 동시에 나타냈다.

서커스가 시작하기 전 관객을 모으기 위해 직선으로 구분된 공간에 나란히 서서 연주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떠들썩해야만 하는 상황에도 그 입체감과 소리를 잃고 마치 이차원에 존재하는 듯 고요하고 아스라하게 표현되었다. 작품 하단의 구경꾼들 사이로 우뚝 서있는 두 남자는 이 수평적인 구도에 변화를 주고 있고 가운데 단에 올라서서 트롬본을 연주하는 악사가 중심을 잡아주는 안정적인 구도이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어떠한 소음이나 악기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정체된 듯한 또는 박제된 듯한 인물들의 모습은 희미한 가스등 아래 밤공기에 녹아 들어 언제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이다. 전체적으로 연녹색, 보라, 검정 등 차분한 색들의 변주로 밤과 불빛과 낭만적인 파리의 공기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서커스의 악사가 아니라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빛의 흐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08_점묘법이 표현할 수 있는 빛의 흐름 극대치 보여줘

캉캉춤 1890년, 유화

또한1888년 야외의 광선을 그린 ‘그랑드자트 섬의 센 강’은 점묘법이 표현할 수 있는 빛의 흐름의 극대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평으로 넓게 가로지르는 센 강과 오른쪽에 수직으로 우뚝 선 나무가 그가 선호하는 고전적이고도 안정적인 구도로 잡혀있고 강물에 떠있는 배는 흰색 돛을 펄럭인다.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이다.

화창한 봄날 빛이 쏟아지는 센 강의 정경은 반짝이는 햇살 아래서 빛을 반사하는 물결과 봄바람에 흔들리듯 아른거리는 나뭇잎들로 이 작품의 주역 역시 센 강이 아니라 세상을 비추는 햇살임을 느낄 수 있다.

1890년 앙데팡당전에 출품된 ‘캉캉춤’은 캬바레에서 당시 유행했던 캉캉춤을 추는 댄서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두 쌍의 남녀가 무대 위에서 한 다리를 높게 들고 춤을 추고 있다. 실내의 인공적인 조명 아래 입 꼬리를 올리고 눈을 내려감은 채 춤을 추고 있는 댄서들의 표정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듯 밑에서 올려다 보는 관객들의 흐뭇한 표정과는 괴리감을 보인다.

등을 보이고 있는 더블베이스 연주자의 넓은 등판이 균형을 잡아주고 수평과 수직선들 사이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는 스커트의 곡선이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09_쇠라의 성격은 개인주의와 신비주의의 결정체

항구의 외곽 1888년, 유화

‘캉캉춤’과 함께 출품된 ‘화장하는 여인’은 폐쇄적인 쇠라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마드렌느 노브로크로 쇠라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다. 함께 동거하며 서로의 사랑을 키워나갔던 둘 사이에는 아들까지 있었지만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두었다.

쇠라의 성격은 개인주의와 신비주의의 결정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주위의 친한 예술가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예술과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사적인 가정사는 베일에 싸여있었다. 가족들마저도 그가 디프테리아로 갑자기 세상을 뜬 후에야 마드렌느와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쇠라가 죽은 뒤 아들까지 잃은 그녀도 얼마 세월이 지나지 않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지만 아직까지 그들의 급작스러운 불행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 그림에는 그들의 행복했던 시간이 박제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림 속 여인은 퍼프를 손에 든 채 화장을 하고 있는 포즈로 거울을 향해 앉아있는데 풍만한 가슴과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몸의 선이 그녀의 여성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입을 오므리고 퍼프를 바라보며 화장에 집중하는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표현한 것 같다.

로코코풍의 조그만 화장대, 벽에 걸린 거울에 비쳐 보이는 화분, 그리고 화장대 위 거울에 매달린 리본 등 온통 여성스러운 소품과 연한 블루 바탕색이 잘 어우러져 따스한 봄날의 평화로운 한 때를 보는 것 같다. 흰색과 파랑의 색점으로 이루어진 바탕은 아른거리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빛의 입자를 그린 것같이 보이고 여인을 둘러싼 부드러운 대기의 흐름이 따스한 여인의 심상을 표현한 듯하다.

 

10_제8회 앙데팡당전 중 디프테리아로 갑자기 세상 떠나

화장하는 여인 1890년, 유화

1891년작 ‘서커스’는 기존의 정적인 구성과 다르게 역동적인 순간을 캡쳐한 듯 그린 작품으로 쇠라의 마지막 유작이다. 백마와 노란 옷을 입은 기수, 공중제비를 돌고 있는 곡예사는 모두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그려지고 채찍을 든 조련사와 입을 벌린 채로 무대 커튼을 쥐고 있는 피에로의 뒷모습은 원형의 구도로 그려져 빙글빙글 돌아가며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배경의 관객들과 더불어 떠들썩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 서커스의 경이로운 공연에 울려 퍼지는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리는 듯 흰색과 노랑, 빨강이 적절하게 배치된 화면 속에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완성되지 않은 채 제8회 앙데팡당전에 전시됐는데, 쇠라는 전시회 도중 전염성 호흡질환 (디프테리아로 추정)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서 자신만의 화법을 창시한지 채 10년이 되지 않는 세월 동안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그의 뒤를 따른 폴 시냐크에 의해 전승되고 발전되어 현대 미술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가 좀더 오래 살아 신인상주의를 발전시켰다면, 또 새로운 화법을 창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다음은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휘몰아치는 감성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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