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예술로 – 손끝에서 피어난 삶의 메시지

네델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인상주의와 현대 모더니즘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선명한 색채와 독창적인 화풍으로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자화상 등의 유명한 작품들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01_어린아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화폭에 담아 아름다움으로 승화

일생을 통해 정신질환과 생활고로 고통을 겪었고 끝내는 37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동생 테오와의 우정, 짧지만 강렬했던 고갱과의 만남 등 그의 어두운 일상에 빛을 준 이들이 있었고 항상 그의 곁에 있던 뜨거운 태양과 밤하늘의 별들, 드넓은 밀밭은 자연의 무한한 포용력으로 그를 감싸 예술의 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평범해 보이는 사물이나 사람들, 살아가는 일상들에 흥미를 갖고 꾸밈없는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고 화폭에 담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피카소와 마티스가 형태와 색채를 해방시킨 이후 현대미술은 내면의 감정표현을 중점으로 다루었다면 고흐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관찰하고 감성을 갈망하는 또 다른 세계를 구현한다.

인간의 희로애락, 감정에서 오는 다양한 심리를 색채를 통해 표현함에 따라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노랑, 파랑, 그린 등 원색의 향연은 그의 정서와 일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 속의 억압된 감정이 대담하게 표출되고 있다.

캔버스 위에서 생동하는 색채는 어떠한 제약도 없이 예술적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 우리를 작가의 세계로 초대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인물과 사물, 공간, 자연이 그 속에 녹아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02_미디어 아트 통해 고흐의 생애 추적해나간 유화 애니메이션 영화

그의 손에 의해 칼라가 거칠게 다루어졌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와 붓질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터치, 빛의 강도를 색감으로 처리한 그의 특별한 감성이 잘 어우러져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라는 미디어 아트 유화 애니메이션 영화와 디지털 아트전인 ‘그대, 나의 뮤즈 반 고흐 to 마티스’전을 통해 다시 접하게 되어 뛸 듯이 반가웠다.

영화와 전시 모두 넓고 큰 화면, 쉴새 없이 움직이는 화려한 색채로 이루어진 압도적인 장면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연출해냄으로써 고흐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와 공감을 느끼게 된 것은 나만의 기쁨이 아니라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귀하고도 큰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러빙 빈센트 영화 포스터. 2017년 제작된 유화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는 영화라는 일종의 미디어 아트를 통해 고흐의 생애를 추적해나간 유화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수많은 그림을 조합해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들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였다.

이 영화는 2년 동안 107명의 화가가 ‘밤의 카페 테라스,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피아노에 앉은 가셰의 딸’ 등 고흐의 작품 130여점을 토대로 그린 62450장의 유화로 만들어져 제작과 편집까지 총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03_“빈센트는 깊게 느끼고 따뜻하게 느끼는 사람이라 말해주길…”

고흐의 작품에 등장했던 풍경, 장소, 인물들까지 고스란히 녹아있어 작품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시각적 효과를 낸다. 그 시대, 그 인물이 되어 고흐와 함께 숨 쉬고 느낄 것만 같은 생생한 체험이었다.

영화는 고흐가 죽고 나서 1년 후, 고흐의 편지를 배달하던 우편배달부의 아들 ‘아르망’이라는 청년이 고흐가 남긴 편지를 들고 편지의 수신인인 고흐의 동생 테오를 찾아서 떠나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평생 수많은 편지를 쓴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된 일기와도 같다.

영화는 그의 편지를 매개로 해서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고흐의 삶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이웃들과 대화하며 그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까지 고흐의 그림 속에서 보았던 인물들이 하나씩 나타나 갈등구조를 보이면서 스토리는 진행되는데….

당시 고흐가 살았던 프랑스 예술계나 ‘아를’의 이웃들과 자연 그를 둘러싼 여러 정황들이 고흐의 초상화와 풍경화를 통해 생생하게 펼쳐진다. 망자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꼴라쥬처럼 덧붙여져 지금은 사라진 그의 형상을 완성해나간다.

마치 고흐가 직접 그리는 듯 아름다운 95분의 움직이는 화폭 속에서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사람들이 빈센트는 깊게 느끼고 따뜻하게 느끼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길 바란다”고 말한 고흐의 예술을 향한 열정과 고뇌가 절절히 녹아 있어 우리의 감성을 자극시켰다.

 

04_생활고에 지쳐 프로방스 지역 작은 도시 아를로 떠나는 장면은

고흐는 1886년 파리에 와서 고갱, 로트렉, 피사로, 시냑, 쉬라 등 당시 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던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두 번의 큰 전시회를 열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그가 생활고에 지쳐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작은 도시 아를로 떠나는 장면은 안타까웠다.

1888년 아를에 도착한 고흐는 이곳의 풍경과 햇빛에 매료되어 아를의 활기차고 평화로운 모습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더욱 강렬해진 색채와 보다 단순해진 형태로 새롭게 발견한 그만의 작품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시점이었다.

초기 작품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나 ‘밀집모자와 파이프가 있는 정물’에서 보여지던 부드럽고 섬세한 붓 터치와 어두운 분위기의 색으로 세밀하게 묘사된 사실주의적 화풍은 자취를 감추고 순수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고흐 특유의 감각과 색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시각으로 익숙한 풍경과 인물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해나갔다.

그는 15개월 동안 아를에 머물며 200여점의 그림을 완성하는데 다른 작가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려고 꿈에 부풀어 얻은 집을 그린 ‘노란 집’과 고갱이 온다고 하자 집을 꾸미겠다고 그린 ‘해바라기’ 연작 (훗날 이 그림은 그에게 태양의 화가라는 명예를 주었다) 저녁시간이면 항상 다니던 아를의 포름광장 야외카페를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와 유유하게 흐르는 론 강을 비추는 조명들을 별들의 축제처럼 묘사한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등 대표적인 작품들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제작,  유화, 81*65.5cm)

 

05_패닉에 빠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 레이첼이라는 창녀에게 주었다

고흐가 즐겨 다니던 아를 포름 광장에 있는 카페의 밤의 풍경을 그린 위 작품은 밤의 부드러운 색감과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카페의 따스한 정경을 짙은 청색과 밝은 노랑의 아름다운 조화로 표현했다.

이즈음 거듭되는 고흐의 요청으로 고갱이 아를에 와서 함께 머물며 작업을 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예술에 대한 격렬한 의견 차이로 첨예하게 대립해 돌이킬 수 없이 파국에 이른다.

패닉에 빠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 레이첼이라는 창녀에게 주었다. 고갱 역시 아를을 떠나 다시는 고흐를 보지 않았다.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공허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고흐의 자화상에서 보여지듯 그가 느끼는 혼란과 고뇌는 깊었다.

이미 정신적으로 위태로워진 그는 환각과 망상으로 병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 1889년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동생 테오가 생 레미에 마련해준 집에서 클리닉을 다니며 치료를 하면서 약 1년간 150여점의 그림을 다시 그렸다. ‘별이 빛나는 밤’ 이 탄생한 시기였다.

군청색 밤하늘에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별빛과 달빛이 폭발할 것 같이 화면을 장악하고 우뚝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 위에서 빛나는 별들은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그가 가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세상을 표현한 것 같다.

 

06_고흐는 죽음을 다른 세계로의 여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듯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왜 하늘의 빛나는 점들에는 프랑스 지도의 검은 점처럼 닿을 수 없을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이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하여 죽는다.” 고흐는 죽음을 다른 세계로의 여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제작, 유화, 92*83cm)

고흐가 그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진 위 그림도 생 레미에서 정신치료를 받을 때의 작품이다. 거대한 별빛과 꿈틀거리는 성운을 소용돌이치는 터치로 표현해 그의 고유한 화풍을 이루었다.

이후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오베르에 정착한 고흐는 생애 마지막 70여일을 이곳에서 보내며 그림을 그렸다. ‘가세 의사의 초상, 까마귀가 있는 밀밭, 오베르 교회’ 등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안타깝게도 자주 그림을 그리던 그 밀밭에서 자기 가슴에 총을 쏘아 짧은 삶을 마감했다.

영화도 놀라서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물음표를 던지고 막을 내린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적인 혼란과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던 생활고에도 굴하지 않고 쉴새 없이 작품에 몰두해 생전에 1500여점을 그렸으나 당시 단 1점만이 팔린 이 불우한 화가가 죽음을 통해 그가 동경하던 별의 세계로 무사히 도착했기를 바랄 뿐이다.

고흐, 크림트, 마티스, 르노와르, 카유보트, 이 위대한 화가들의 세기에 남을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끔 영감을 주는 존재 뮤즈는 무엇일까? 예술가들에게 ‘뮤즈’ 란 인간, 사물, 자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와 영감을 불어 넣어 작품을 탄생시키는 에너지라면 고흐의 뮤즈는 남프랑스의 따스한 햇살과 아름다운 자연이었으리라

(그대, 나의 뮤즈 반 고흐 to 마티스 전. 2017년 12월 28일-2018년 3월 11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07_탄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삶과 비교하며 삶에 대한 숙연함 느끼게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별빛과 강물이 흐르며 비추는 반사되는 불빛으로 가득 채웠다. 남프랑스의 햇살을 느끼며 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밀밭’은 넓은 평야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의 모습에서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느낀 고흐가 씨를 뿌린 후 점차 초록에서 노랑으로 변하고 마침내 황금빛으로 무르익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씨를 뿌리고 밀이 자라고 수확하는 과정을 생명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삶과 비교하며 삶에 대한 숙연한 운명을 느끼게 된다.

‘아를의 태양’에서 나타나는 노란색으로 가득한 풍경 속에 늦은 오후의 진한 햇볕이다. 풍요롭게 무르익은 밀과 드문드문 푸른 톤으로 자리잡은 흙이 서로 대비되어 노란색은 더욱 노랗게, 푸른색은 더욱 푸르게 빛나며 빛과 그 변화에 대한 강력한 인상을 색채의 향연으로 이루어냈다.

우리는 남프랑스 태양아래 서 있는 듯 천천히 고흐가 느낀 삶의 순간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아를의 자연과 태양은 하루하루 영감을 주는 뮤즈였고 외롭고 쓸쓸했던 그에게 따스한 위안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였다. 대표작 200여점을 1년 동안의 완성한 비밀은 바로 이 아를의 뮤즈에 있었다.

(씨 뿌리는 사람. 1888년 제작. 유화. 73.5*93cm)

 

08_그의 진정한 예술에 대한 찬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절망과 희망 속에서 갈등하던 고흐가 밀레의 작품을 재해석한 이 작품은 노랗게 빛나는 태양을 등지고 묵묵히 씨를 뿌리는 농부의 모습에서 삶과 생명의 고귀함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 자연과 소통하고 그 속에서 이루어내는 깊은 교감을 강렬한 감각적 호소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천재화가 고흐가 죽은 지 올해로 128년이 되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작품들을 현대의 우리는 멀리 떨어진 동양의 한 끝에서 새로운 기법과 시각을 통해 감상하고 그의 불타는 예술혼에 경이로운 공감을 느낀다.

그의 진정한 예술에 대한 찬사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인생을 달래주는 그에게 바치는 노래 ‘빈센트 / Vincent: starry starry night’으로 끝을 맺는다

 

빈센트 -돈 맥클린 (1972년)

별이 많은 밤입니다

빠렛트에 파란색과 회색을 칠하세요

내 영혼에 깃들인 어둠을 알고 있는 눈으로 여름날에 바깥을 바라보아요

언덕 위의 그림자들

나무와 수선화를 그리세요

미풍과 겨울의 찬 공기도 화폭에 담으세요

눈처럼 하얀 캔버스 위에 색을 입히세요

당신이 이제 무얼 말하려 했는지 나는 이해합니다

당신의 광기로 당신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유로워지려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아마 그들은 이제는 듣고 있을 거예요

별이 많은 밤입니다

이글거리는 듯 한 꽃들의 색이 불꽃같이 여겨집니다

보라빛 연무 속에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은

빈센트의 푸른 눈빛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색조를 바꾸는 빛깔들

황금색의 아침 평야

고통 속에 찌든 얼굴은 예술가의 사랑스런 손길로 달래지네요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하지만 아직도 당신의 사랑은 진실합니다

이 별이 빛나는 밤, 내부에는 아무 희망도 남아있지 않을 때

당신은 연인들이 종종 그러듯 자살을 택했죠

빈센트, 당신에게 어떤 세상도 당신만큼 아름답진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별이 아름다운 밤

당신의 초상이 빈 벽에 걸려 있습니다

틀도 없이 이름도 없는 벽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당신이 만나왔던 이방인처럼

누추한 옷을 입은 누추한 사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순백의 눈에 부서지고 상처받은 새빨간 장미의 은빛 가시

당신이 이제 무얼 말하려 했는지 나는 이해합니다

당신의 광기로 당신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유로워지려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아마 그들은 이제는 듣고 있을 거예요.

 

* 다음 호는 이상의 ‘오감도’ 와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대한 이야기입니다.

 

글 / 미셸 유 (글벗세움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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