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담시’

무담시 흘리는 눈물이 잘 익은 사랑의 약으로 사라지기를…

“암시랑토 안타가 (아무렇지도 않다가) 어느 날은 애린양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데 옆에 아무도 없어서 무담시 (괜시리) 눈물이 났제.” 잊고 있었던 전라도 사투리를 친구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감정이 울컥했다. ‘수년이 지났는데 남편 잃은 슬픔은 어머니 안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으셨구나. 팔십 대가 되어도 소녀 같은 감성은 사라지지 않으셨네.’

 

01_혼자이면서도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잘 익은 모습

비록 노년이 되어서야 배움의 기회를 얻었지만 그녀의 학구열은 그 누구보다도 활활 불 타올랐다.

한자와 영어를 배우고 일기와 시를 매일 꼬박꼬박 쓰면서 선물같이 주어진 365일 중의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출근길 딸에게 시를 낭송해주며 용기도 북돋아주고 딸이 교직에서 정년퇴직 하면 지금의 우리 선생님 같이 노인봉사도 하라며 은퇴 후 갈 길까지 제시해 주는 어머니.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위해 시골 장터에서 구입한 신선한 야채, 손수 만든 밑반찬, 기타 필요한 양념 등을 열심히 택배로 보내주신다.

그녀의 삶은 오롯이 자식들을 위한 희생의 삶이었지만 이제는 그 부지런함이 혼자된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낼 수 있는 용기가 된 듯하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일상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혼자이면서도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우리 인간의 잘 익은 모습이다.

 

02_자석에 이끌리듯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연례행사처럼

올해도 나는 고국을 찾아왔다. 자석에 이끌리듯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마치 해마다 당연히 치러야 하는 연례행사처럼….

호주에서 생활한지 여러 해가 되어가니 벌써 한국을 몇 번이나 오고 갔는지 세어보기조차 부질없다. 내 일상에 당연히 들어온 또 하나의 시간이 되어버렸기에.

허용된 무게까지 꾹꾹 눌러 담아 선물꾸러미를 그득 싣고 한국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연말연시에 나타난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는 나의 기쁨과 함께하는 기쁨으로 꽉 채워진 의식 같은 시간이다.

겨울, 그 잿빛 길 위에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서있다 보니 매서운 바람이 살갗에 스친다. 낯설면서도 이 익숙한 느낌은 나를 휘감고 몸 속 깊이 숨어 있던 오감을 깨우며 휘리릭…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만 같은 순간.

 

03_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사람 되려 노력할 때 아름다운 삶이

삶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 스스로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때 아름다운 삶이 살아지는 것이다.

올해도 고국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지금 나는 그들을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가족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TV나 책에서 접하지 못한 삶의 강렬한 냄새가 있다.

그 안에는 나 혼자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며 타향에서 잊고 살아가고 있던 나와 닮은 인간들의 사랑과 정을 만난다. 이들과 마주하다 보면 폐부 깊숙이 울려 나오는 행복의 눈물을 참기 어려워 내가 이런 많은 정과 사랑을 받아도 되는가 하면서 정신이 몽롱 할 때가 많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이런 향기는 가슴 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건강, 자식, 인간관계 등 소설이 몇 편 나올 법한 클라이막스와 잔잔함이 동시에 스며 있다.

 

04_어머니는 자식의 열성 팬, 신이 못하는 일 대신 해주는 천사

특히 세상의 어머니들.. 그분들은 괜스레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머니는 자식의 열성 팬이기도 하지만 신이 바빠서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자식을 위한 천사들이다.

나의 어머니의 모습이 그랬고 어머니가 된 나의 모습이 그들을 닮아 가고 있다. 매일 아침 베란다에서 자식들을 위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 어머니….

그녀의 절실한 기도로 우리들이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소녀 같고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부부란 이렇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 앞길을 열어 보여주시는 어머니.

먼 훗날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 때 부디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내 친구의 어머니처럼 무담시 흘리는 눈물이 잘 익은 사랑의 약으로 사라지기를….

 

글 / 송정아 (글벗세움 회원·Bathurst High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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