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김치찌개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갔다. 겨울 김치라고는 하지만 가족들 식성을 고려해 기본양념만 넣고 과하지 않게 했다. 더 시원한 맛을 내려고 젓갈도 넣지 않고 통무를 툭툭 반으로 잘라서 김치 포기 사이에 질러 넣었다. 무가 들어가자, 평소보다 양이 많아졌다. 뿌듯한 마음에 딸에게도 한 통을 보냈다. 며칠 뒤 딸에게서 김치 맛이 이상하다고 연락이 왔다. 그제야 김치 통을 열어 맛을 보니 김치에서 생배추 맛이 났다. 무가 들어가면 간이 싱거워져서 웃소금을 조금 더 뿌려야 하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결국 이번 김치는 실패작인가 하며 뒤늦게 우거지 위에 소금을 뿌렸다. 정 안되면 푹 익혀서 김치찌개나 하면 되지 생각 하다가 얼마 전 아들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르자 속이 상했다.

 

그날 밥을 먹으러 왔던 아들이 김치찌개를 먹다 꺼낸 말이 화근이 되었다.

“엄마가 만든 음식의 최악은 김치찌개야.”

“내가 만든 김치찌개가 뭐 어때서?”

“엄마는 김치찌개에 멸치를 넣잖아.”

옆에서 듣던 딸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김치찌개는 멸치로만 하는 줄 알았어.”

아들과 딸이 합세해서 내가 하는 음식에 대해 불만 공세를 퍼부었다. 게다가 찌개 속의 퉁퉁 불어 터진 멸치를 골라내어 먹는 엄마가 너무 싫었다고 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어보곤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에 놀랐다고 했다. 그러게. 나는 왜 김치찌개를 하면 꼭 멸치만 넣었을까? 나 역시 친정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그 연유가 뭘까 하고 가만히 되짚어 보니 아버지의 부재다.

오래 전 아버지가 젊었을 때 돈 벌러 호주에 오는 바람에 엄마와 우리 남매들은 아버지와 10년을 넘게 떨어져 살았다. 가장이 집에 없으니, 우리끼리의 반찬은 아무래도 소홀했다. 고기를 넣고 바특하게 끓여서 한 끼에 먹고 끝나는 음식은 아버지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음식이었다.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는 지나치게 알뜰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에는 외식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가게에서 장을 보는 일도 드물었다. 웬만한 것은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뭐든 만들면 잔뜩 만들어 여러 날 먹곤 했다. 김치가 대표적인 것이고 대개 두부나 묵 등이었다. 특별한 음식이라면 성장기 아이들을 생각해서 사골을 밤새 고아 우려낸 곰탕 정도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엄마가 자주 해 주던 음식은 김치찌개였다. 솥단지 가득 김치를 넣고 볶다가 굵은 멸치를 넣고 뭉근하게 오래 끓인 다음 두부를 넣고 자작해지도록 졸였다.

엄마의 멸치 김치찌개는 남편 없이 외롭고 고단했던 시절의 음식이었다. 그렇게 만든 김치찌개를 맥스웰 커피 빈 병에 담아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곤 했다. 엄마는 찌개 속의 멸치를 골라 먹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어린 나는 엄마가 해 주는 대로 잘 먹었지만, 찌개 속의 멸치는 먹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결혼하고 살림하면서 어느새 나도 엄마와 많이 닮아 있었다. 언젠가 찌개 속의 멸치를 건져내어 먹어보니 멸치 맛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육수가 다 빠져나갔지만, 찌개 국물이 멸치에 배어 삼삼한 맛이 났다. 그 후로 나는 김치찌개를 끓일 때마다 멸치를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다. 이제야 그 세월의 뭉근한 맛을 터득한 셈이다. 아무리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최고라고 해도, 돼지기름이 둥둥 뜨는 찌개가 내 취향은 아니다. 멸치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개운하다. 전자레인지도 없던 시절에도 멸치 김치찌개는 도시락 반찬으로도 가능했다. 식으면 기름이 허옇게 굳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보다는 굳이 데우지 않아도 먹기에 수월했다. 특히 늦봄 묵은지는 들기름에 주물러 볶다가 멸치를 넣고 끓이면 그 맛은 그 어떤 반찬과 비교할 게 없다.

 

아들 때문에 잠깐 속이 상했지만, 지난 시절을 돌아 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하는 음식 중에 유일하게 명함을 내미는 것이 김치인데 이대로 실패일 수는 없다. 김치의 숙성 기간을 믿고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일주일 후, 김치 통을 다시 열었다. 새콤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배추 우거지를 걷어내고 김치 한쪽 찢어서 맛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다. 포기째 자르지 않고 냄비에 담고 멸치 한 움큼 넣어 푹 끓여 김치찌개를 하면 올 겨울 식탁이 든든하겠다.

‘니들이 멸치 김치찌개 맛을 알아?’

 

 

김미경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2009년 문학시대 수필등단·수필집: 배틀한 맛을 위하여·공동작품집: 다 건너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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