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고국립공원 Mungo National Park

시간 흐름의 결이 다르다… 자연과 인간의 셈법이 다름을 일깨워준 여행

멍고국립공원 (Mungo National Park)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건조하고 온통 붉은 내륙 오지인 아웃백 (outback)의 길을 달리다 보면 흙먼지가 지치는 기색 없이 끊임없이 4륜구동 자동차를 좇는다. 하루를 꼬박 달려 자동차는 해질녘에야 우리 일행을 생뚱맞은 숙소에 부려놓는다. 멍고 롯지 (Mongo Lodge)다.

 

01_시간단위가 10만년 내지 몇만 년이 보통인 또 다른 ‘소우주’

가까운 곳에 캠핑장도 있었지만 일부러 숙소를 택했다. 나이든 일행을 위한 배려였다. 최근 숙소 오너가 바뀌어서인지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있는 구석진 숙소까지 직원들이 따라와 과잉친절을 보여준다.

워낙 깊은 오지라 전기와 물이 턱없이 부족하다. 부엌에 있는 전기포트와 전자레인지를 동시에 사용하면 전기가 바로 나간다는 주의사항을 듣고도 우리는 어둠 속에서 샤워를 해야만 했다. 샤워는 아주 잠깐이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담고.

멍고국립공원은 또 다른 소우주였다. 그곳에서는 시간의 단위가 보통 10만년 내지 몇만 년이 보통이다. 우리 시간방식이 하찮게 여겨지고 인간사가 한없이 덧없게 느껴지는 곳이다.

‘멍고’라는 말 자체가 지질학적으로 오랜 시간임을 일깨워준다. 지금은 말라, 바닥이 온전히 드러난 멍고호수 동쪽에 수십만 년 동안 모래와 진흙이 섞인 퇴적층이 쌓여왔는데 이 층을 시간대별로 나누면 세 개의 층이 된다고 한다.

붉은 색깔을 띄는 가장 아래층은 대충 10만에서 12만년 전에 형성이 되어 골골층 (Gol Gol layer)이라 불린다. 그 위 중간이 멍고층 (Mungo layer)인데 잿빛을 간직하고 있으며 5만년에서 2만 5000년 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한다.

 

02_카우라… 시드니에서 300Km 떨어진, 2차대전 포로수용소

호수에 그 동안 물이 차고 마르기를 수만 년에 걸쳐 여러 번 반복하던 멍고호수가 바로 이 시기에 완전히 말랐다고 하니 바닥에 있던 진흙의 입자들이 바람에 날려 모래와 섞여 퇴적층이 형성되어 이 호수를 당연히 멍고호수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퇴적층이면서 (그래도 나이가 2만 5000-1만 5000년이다) 상층부에 있는 층은 옅은 갈색을 입고 노출되어 있다.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거쳤던 크고 작은 도시들도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카우라 (Cowra)-시드니에서 서쪽으로 3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며 인구 1만여 명의 소도시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시드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인 이곳에 포로수용소를 만들었다.

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연합군과 일전을 벌이다 체포된 일본과 이태리 군인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나라를 잃고 일본군으로 차출되어 강제로 끌려와 싸워야 했던 한국 군인들도 당연히 이곳 수용소에 있었다.

기록을 보면 호주당국에서는 한국군과 일본군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분리 수용을 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기 1년 전쯤인 1944년 8월에 1000여 명의 일본 군인들이 탈주를 감행한다.

 

03_수용된 한국인 병사들에게는 기대고 하소연할 나라가 없었다

이 사건을 ‘카우라 탈옥 (Cowra breakout)’이라 부른다. 진압과정에서 230 여 명의 일본군이 희생되는데 그 중 몇 명의 한국 군인이 이 탈옥에 가담했고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이미 70년대 초 일본정부는 카우라 시 당국과 함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일본 정원과 문화원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남반구에서 가장 큰 규모인 일본 정원은 이제 카우라의 명소가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에도시대 정원의 형태를 띤 이 정원을 걸어 보면 일본정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지 알게 된다. 일본 정원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광활한 면적에 이제는 주춧돌과 잡초만 무성한 수용소를 마주할 수 있다.

그곳에 수용된 한국인 병사들에게는 기대고 하소연할 나라가 없었다. ‘이게 나라냐?’라고 울분을 쏟아낼 만한 조국이 없었다. 그들이 그리던 고국은 손발이 다 잘린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을 그들은 이국의 외진 감옥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일본 군인들의 멸시와 천대를 어떻게 견뎠을까? 일본군들이 집단으로 탈옥한다는 것을 낌새 채고 몇 명이나 가담 했을까? 아니면 포기를 했을까?

 

04_외벽에 양털 깎는 모습, 밀밭과 농부 그려져 있는 사일로 예술

공식적인 일본 군인들의 사상자 숫자에 한국인은 없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형태 없는 수용소의 한 귀퉁이에 서서 상념에 잠기면 이런 먼 곳까지 와 준 동포에게 감사의 악수를 해줄 것만 같은 한국 군인들의 행렬이 보이는 것 같다.

Midwestern Highway를 따라 그렌펠 (Grenfell)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웨딘산 국립공원 (Weddin Mountains National Park)이 있다. 약 4년 전 한국에서 안식년으로 호주에 온 교수와 웨딘산의 800 미터 정상을 오른 적이 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전경도 장관이지만 산을 내려와 서쪽으로 가면 1800년대 중반 호주의 아웃백에서 행한 강도 짓으로 악명을 떨친 벤홀 (Ben Hall)이 은신처로 삼은 동굴 (Ben Hall’s Cave)이 있다.

산에 오른 이야기와 동굴에 들러 아직도 많은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전설을 믿고 오랜 시간 구석구석을 둘러본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일행들에게 차 안에서 들려 주었다.

제법 규모가 되는 웨스트 와이롱 (West Wyalong)을 지나 위탈리 (Weethalle)에서 잠시 쉬어간다. 이곳에는 거대한 20미터짜리 사일로 (silo)가 있는데 이 외벽에 양털을 깎는 모습, 밀밭과 농부가 그려져 있다. 소위 사일로 예술 (silo art)로 엄청난 크기다.

 

05_노년기에 접어든 두 교장이 추억담 꺼내자 나도 가슴이 먹먹해져

무미건조한 시멘트로 된 사일로에 예술의 옷을 입히니 관광객들이 저절로 몰려들 수 밖에. 그림을 통해 이 지역에서 밀과 보리 그리고 귀리 농사가 주된 작물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호주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양치기, 양고기뿐만 아니라 양털로 인해 호주 초창기의 경제가 튼튼한 초석을 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보 (Dubbo)에서 평생 농사를 짓다가 이제는 은퇴생활을 즐기는 80대 후반 부부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계속되는 고속도로에 걸쳐진 렌킨스 스프링스 (Rankins Springs)에서 잠깐 숨을 고를 때였다.

할아버지는 손재주의 힘을 빌어 자칫 고물로 될 뻔한 1920년에 제작된 멋진 앤틱 자동차를 몰고 동호회 모임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자동차의 가격에 대해서는 묻지 마라고 미리 선수를 친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사려고 물어보지만 본인은 전혀 팔 마음이 없기 때문이란다. 자식이 네 명 있는데 이 자동차를 4등분하여 나누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 삶의 여유에서 나오는 농담을 한다.

예정에 없는 방문이었다. 일행 중 운전을 하던 에릭 테너 (Eric Tanner)가 갑자기 굴고위 (Goolgowi)에서 쉬다가 가잔다. 뜬금없이 초등학교로 향한다. 겨우 두 개 반이 운영되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 학교였다.

세상에나. 에릭이 젊을 적, 그러니까 1970년에 이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를 했단다. 수업 중이던 할머니 교장선생님이 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그 당시에 일어난 일들과 현재 본인들의 일과를 화제 삼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 꽃을 피운다. 노년기에 접어든 두 교장이 과거 아름다운 추억담을 꺼내자 나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06_해가 저무는 조짐이 보이자 먹이활동 시작하는 캥거루들이…

Midwestern Highway는 다음 도시인 헤이 (Hay)까지 계속되었다. 이곳에 도착하면 비로서 머럼비지 강 (Murrumbidgee River)을 만나게 된다. 강은 오래되었고 오래되었으니 넉넉하다. 원래 강의 소명이 그러했듯이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고 양들을 살찌웠다. 양털의 수출로 자연스레 농부들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호주 양털산업의 역사와 양털 깎기 전문가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보관된 현대식 박물관 (Shear Outback)이 있다. 가는 여정이 멀어도 이 박물관은 놓칠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이룬 양털산업 뒤에 숨겨진 많은 사연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래 묵혀둔 장맛처럼 이야기 하나하나가 진했다. 호주 경제가 양의 등을 타고 날아 올랐다는 말이 실감난다.

헤이부터는 고속도로 이름이 스터트 하이웨이 (Sturt Highway)로 바뀐다. 영국 탐험가 찰스 스터트 (Charles Sturt)는 호주 내륙에 아마 큰 바다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1830년대에 탐험을 시작했는데 결국 달링강 (Darling River)과 머리강 (Murray River)을 발견하게 된다.

머럼비지 강과 더불어 보통 three rivers라 부른다. 마냥 서쪽으로만 달리던 자동차는 벨라놀드 (Balranald)에 도착해서야 기수를 북으로 돌린다. 약 150킬로미터를 네 시간 정도 달리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길은 비포장이다.

하루의 해가 저무는 조짐이 보이자 낮 동안 무더위를 피해있던 캥거루들이 저녁 먹이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분주하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캥거루와 조우를 피하게 하려고 운전하는 에릭을 계속 성가시게 군다.

 

07_사실 멍고호수 주위를 둘러보는 건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멍고호수의 동쪽에 형성되어 있는 수십만 년의 세월이 빚은 퇴적층이 군집으로 모여있는 곳을 흥미롭게도 ‘Walls of China’라고 부른다. 온갖 모양을 한 퇴적층이 수십 킬로 호수 주위에 형성되어 있어 이렇게 명명했으리라.

재미나는 형태를 한 각가지 퇴적층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면서 언덕 위에 올라 멀리 보이는 호수를 바라본다. 먼 옛날 호수가 가득 찼을 당시 호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에서 뛰놀던 아이들과 풍족한 육류, 생선 그리고 조개류 등의 식량으로 저녁을 준비하던 원주민들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들의 생활 흔적이 고스란히 퇴적층에 보존되어 있으니 말이다. 1970년대 초 매장되어 있던 원주민들의 뼈가 발견되었고 이를 일컬어 Mungo Man 또는 Mungo Lady라고 부른다.

사실 멍고호수 주위를 둘러보는 것은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우리처럼 국립공원 숙소에서 이틀 밤을 묵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나머지 시간을 활용하여 달링강의 상태를 알아보기로 했다. 마치 200년 전 개척자들이 했던 것처럼.

육로가 발달되지 않던 19세기 중반 달링강은 양털 운송으로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여러 곳에 선착장이 만들어졌다. NSW 서북쪽과 심지어 퀸즈랜드 서남쪽에서 수확된 양털을 싣고 남호주까지 증기선 (paddle steamer)이 운송을 하곤 했다.

 

08_한 세기 흐름이 가질 어색함이 스스럼없는 내색을 하고 다가온다

멍고국립공원에서 최근에 뚫린 80킬로미터 정도의 비포장도로를 이용하면 두 시간만에 푼케리 (Pooncarie)에 도착할 수 있다. 증기선의 선착장이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푼케리 입구에는 ‘The Port of the Darling’이라는 표지가 있다.

과거의 번영과 위세는 이제 간 곳이 없다. 말라버려 강바닥의 속살이 훤히 드러난 달링강은 흡사 진액이 모두 빠져 푸석푸석해진 뼈 모양이다. 과거 북적댔을 선착장 바로 옆에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어 여자 주인장과 얘기를 나누어보았다.

역시 주제는 물 관리다. 대화는 자연스레 무능한 정치인, 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행정력 등으로 범위가 확대된다.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절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룰 수 없는 지역에 사는 호주인답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주장이 당차게 일렁인다. 정부와 대적하는 운동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런 자세가 아웃백의 명맥 유지에 절대적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런 한적한 시골에 오면 꼭 방문하는 곳이 공동묘지와 펍 (pub)이다. 오래된 푼케리의 역사처럼 묘지 비석은 대부분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이 주류를 이룬다.

한 세기 흐름이 가질 어색함이 스스럼없는 내색을 하고 나에게 다가온다. 이곳 공동묘지는 종파로 구획이 나누어져 있었다. 영국선교회, 장로교, 감리교, 카톨릭 등.

 

09_깡촌다운 배짱이고 타인에 대한 신뢰가 진득한 그곳에는…

과연 이런 분리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내세에서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불필요한 종파에 발목이 잡힌 현세 인간들의 무지함이 빗어낸 불상사로 느껴져 마음이 언짢았다.

펍에는 대낮인데도 제법 사람들로 붐빈다. 대부분 한낮의 무료함이나 더위를 피해 펍에서 시간을 보낸다. 술을 시키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당구를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갑을 탁자 위에 놓고 있다.

깡촌다운 배짱이고 타인에 대한 신뢰가 진득하다. 도시 펍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장면 아닌가. 한 젊은 부부는 최근 이곳에 농장을 구입하여 염소 농사를 하는데 생활에 만족해한다.

반면 조금 전 주유를 위해 들른 가게 주인은 이 답답한 시골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벌써 2년째 팔리지 않는 가게 때문에 발이 묶여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서로 상반된 삶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푼케리 모습이다.

시간… 참으로 자연과 인간의 셈법이 다름을 일깨워준 멍고국립공원의 여행이었다.

 

 

글 / 박석천 (글벗세움 회원·찰스스터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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