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소리

매미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린다.

내가 있는 곳은 너무도 조용하고 한적한데 여기저기서 요란스럽게 울어 대는 매미소리는 내 어릴 적 고향집에서의 어느 한 여름날을 기억나게 한다.

 

부모님께서는 마당에다 큰 덕 석 여러 개를 깔아 놓으시고 곡식을 밭고랑 갈 듯 펴서 말려 놓으셨다.

그날은 장날인지라 엄마는 곱게 차려 입고 대문을 나서시며 나에게 오늘 할 일을 말씀 하셨다.

새들이 와서 곡식을 쪼아먹지 못하도록 장대를 가지고 새들을 내쫓는 일이었다. 긴 장대 하나는 마루 이쪽에 또 다른 하나는 마루 저쪽 끝에 걸쳐 놓고 나는 마루 중간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이는 늘 하던 길들여진 나만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어린 내가 그 장대를 들고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 몹시 불편했던 까닭이었다.

닭이나 새들이 다가오면 달려가 장대 위를 잡고 흔들어대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을 갔다.

 

그때도 천지는 조용했다.

우리 집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 에서도 대 잎사귀 부딪치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바람 한 점 없는 나른하고 한적한 오후였다.

뚜렷하게 유난히도 크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만이 내 귓전에 울리는데 어찌나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지!

워낙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노래 소리에 매미들의 소리를 덮어 버리기라도 하려는 작심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노래를 불렀을까… 그만 지쳐서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워매~~~ 후여~ 후여~”

대문을 들어서며 소리를 지르시는 엄마의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지? 오늘은 곡식 말린다고 닭장에 닭들을 풀어놓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왔는지 모두 나와서 신나게 곡식을 쫓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장에 다녀오신 엄마는 손에든 짐을 채 내려놓기도 전에 닭들을 내쫓으시며 동시에 뭐하고 있냐는 듯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고 계셨다.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 엄마의 모진 욕 소리를 들으며 아무 말없이 바닥에 흩트려져 있는 곡식들을 덕 석 위로 쓸어 올렸다.

그때까지도 마루 밑에서 나처럼 늘어지게 자고 있던 누렁이(개)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처다 보았다.

나의 사나운 눈초리를 느낀 누렁이는 슬그머니 일어나 느린 걸음으로 안채를 돌아 뒤뜰로 사려져 버렸다.

 

오늘처럼 바람 한 점 없는 나른한 날이었다.

내 어릴 적, 고향 매미소리는 어디에서 우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장독 뒤 오동나무에서 울었고, 대나무 밭 뒤에서 울었고, 앞마당 감나무 위에서 울었다.

그때 그 매미는 크고 힘 있게 뚜렷하게 울었다.

내 고향 매미 소리가 마치 남성 4중창과도 같았다면 시드니의 매미소리는 나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울어대는데 어디에서 우는지 알 수가 없다.

마치 큰 홀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있는 나만을 위해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그 향연에 취해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어릴 적 엄마는 피마자기름을 머리에 바르시고 참빗으로 곱게 빗어 넘겨 비녀로 마무리를 하셨다.

유난히도 단아하셨던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날 아침에도 남는 경대 앞에서 머리 단장하시던 엄마를 바라보면서 엄마 곁에 앉아 있었다.

아련한 기억 속에서 그리운 부모 형제들과 내가 나고 자랐던 내 고향, 우리 집.

아~ 행복하다.

얼마나 있었을까?

눈을 떴다. 잠깐 꿈을 꾸었을 뿐, 이제 할머니가 되어 머나먼 호주 땅 시드니에 나는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집 주변에는 오동나무도 없고 병풍처럼 집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밭도 없으며 가을이면 주렁주렁 열리던 감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부모님도, 형제들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저 머나먼 나라로 가셨다.

내 나이 26세에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만나 부모 형제, 친구들을 떠나 머나먼 타국, 시드니로 왔건만 그 사람마저도 내 곁을 떠났다.

향방 없이 울어 대는 매미소리처럼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는 것일까?

오늘따라 매미소리가 더욱 처연하다.

 

 

글 / 클라라 김 (글벗세움 회원·Support Wo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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