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땐 죽음이 없고, 죽음이 왔을 땐 우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에피쿠로스 말을 받아들여서인지 나는 죽음이 오는 것이 두렵고 무섭지는 않다. 노을 진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인지 모르지만 두렵고 무서운 것은 죽음보다 오히려 치매다. 알츠하이머라는 노인성치매는 후천적으로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영역의 인지기능이 감소하여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두뇌의 수많은 신경세포가 서서히 쇠퇴하면서 뇌조직이 소실되고 뇌가 위축되는 질환이다. 기억력저하, 언어장애, 시공간파악능력저하, 계산능력저하, 성격변화, 감정변화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거다.
치매는 내가 나를 알지 못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위하는 사람들과 따스한 정을 나누던 사람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나를 살게 한 기쁘고 따뜻하고 즐겁고 슬프고 아프고 그리운 날들마저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나는 한참 오래 전에 거의 매일 마시던 술을 일주일에 사흘만, 한번에 한 병만 마시자고 나에게 약속했다. 특별히 상쾌하고 분통터질 일이 있으면 더 마시기도 하지만 가능한 한 나 스스로의 음주 약속을 지켰다.
그것은 특별하게 육신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바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간절한 것은 즐거운 것들부터 서글픈 것들까지 모두 망각이라는 어둠의 길로 끌고 들어간다는 치매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가정의가 치매를 불러들이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겁을 줬다. 술을 많이 마시면 뇌세포가 흐트러져 치매가 쉽게 올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겠지만 그 말이 신경 쓰였다.
술은 나와는 참으로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친구와 같다. 스무 살 그때, 어느 비 오는 날 온 몸이 가을비에 젖어 한기로 후들거리며 들어선 포장마차에서 처음 만난 막걸리는 황홀했다. 한 사발의 막걸리는 떨림을 덮어주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가 생각나면 막걸리를 마시면서 아련한 그리움에 젖곤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오면 으레 찾던 술이다. 때로는 술과 함께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면서 분노했고, 환희의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지만, 술은 나와 가장 가깝고 유사했다. 나의 청춘은 술과 함께한 세월이었는지 모른다.
나 태어난 강산과 피를 나눈 형제들을 등뒤에 두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홀로 배회하며 쓸쓸해 하던 긴 세월을 감싸주고 다독여주던 다정한 친구도 술이었다. 사는 것이 힘들어 방황하면 괜찮다고, 좋은 날이 온다고 위로도 해줬다.
술은 내가 즐거울 때 같이 즐거워하고, 외로움에 지칠 땐 다독여주고, 슬플 땐 더불어 슬퍼하고, 아프면 함께 아파하는 고마운 친구다. 때로는 가족들보다 동료들보다 더 나를 감싸주고 편하게 해줬다.
그렇듯 다정하고 따뜻한 친구 같은 술을 줄인 것은 치매를 만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치매는 공포였다. 나는 죽는 날까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기억들을 놓치지 않는 총총함 속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내 삶의 기둥이었던 아버지 같은 둘째 형님이 세상을 떠난 날, 나는 혼자 흐느끼며 나에게 한 그 약속을 놓아버렸다. 마시고 싶을 때 그냥 마신다. 더 오래 살겠다는 욕심도 사랑하는 것들 하나하나 기억하고 싶다는 소망도 내려놔버렸다.
형님과 함께한 기쁨도 서러움도, 형님을 당황케 했던 나의 어깃장도, 형님 곁을 지키지 못한 아픔도 나를 힘들게 한다. 잊고 싶다. 그렇게 마시다 보니 한숨과 눈물이 늘어난다. 그리움과 허무함과 나에 대한 후회가 솟구친다. 잊고 싶어 마신 술이 되레 기억을 더 생생하게 만든다.
아프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은 만족스러움보다 부족함과 부끄러움이 더 짙다. 잊어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생하게 다가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술은 아프고 힘든 기억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더 환한 모습으로 깨어나게 한다.
나를 포근케 한 아름다운 추억들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찾아볼 사람도, 보고 싶은 사람도, 그리운 사람도, 해야할 것들도, 하고싶은 것들도, 모두 떠나버렸다. 아쉬움도 미련도 모두 지난 얘기가 돼버렸다. 남아있는 것은 아픔과 그리움뿐이다. 그리움은 차라리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그리스신화 ‘레테 (Lethe)의 강’이 있다. 레테는 망각의 여신이다. 망자는 죽은 후에 간다는 영혼의 세계 명계를 가면서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게 된다. 레테의 강물을 마신 망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전생의 번뇌를 잊게 된다. 내가 마시는 술이 레테의 강물이라면 좋겠다.
다시 계절이 바뀌나 보다. 나무를 흔들고 하늘을 헤집는 바람이 제법 차다. 혼자 데크에 앉아 술잔을 채운다. 뒤돌아보면 나는 늘 혼자였다. 철모르는 나이에 세상에 던져져 나도 모르게 혼자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익혔다.
지나간 날들이 눈물 되어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술잔 속으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그립고 아픈 기억들을 정녕 마실 수 있다면 마셔버리고 싶다. 얼만큼일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사는 날까지, 아니, 내가 죽어도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싶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