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쫄보들?!

어째, 우리를 빼고는 거의 다가 옛날 그대로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몇 차례 찔끔찔끔 갔다가는 이내 겁을 먹고 발길을 끊곤 했는데 대부분의 용감한(?) 사람들은 그 난리통에도 GYM과 수영장에 열심히 출석도장을 찍고 있었던 겁니다.

몇 년 전 ‘85세 이전 사망금지 혹은 구구팔팔이삼사 (9988234 /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 일 앓다가 죽는 것)를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라는 생각에 아내와 저는 우리 동네 근처 GYM에 1년짜리 멤버쉽을 끊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주일에 5일씩 열심히 운동을 다녔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시드니산사랑 멤버들과 정기산행을 하기 때문에 GYM에서는 주로 근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집중했습니다. 수영 솜씨가 남다른 아내는 가끔 수영장에도 들어갔지만 일곱 살 이후로 맥주병 신세가 돼버린 저는 주구장창 GYM에서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과 씨름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이를 계속하고 나니 제법 몸 여기저기에 표시(?)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만 쭉 하면 근육이 울끈불끈해지거나 이른바 식스팩이 생기지는 않아도 눈에 거슬리는 뱃살도 들어가고 몸도 어지간히 탄탄해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이 찾아 들면서 우리의 몸 만들기 프로젝트는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로 GYM 폐쇄명령이 내려졌을 때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지만 상황이 조금 풀리면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몇 차례씩 그곳을 찾긴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겁쟁이, 쫄보인 우리는 결국 코로나19 기간 동안은 거의 GYM에서의 운동은 엄두를 내지 못하며 지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많이 좋아진 후에도,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GYM을 재개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조금 더 있다가…’를 되뇌며 쭈뼛쭈뼛 우유부단을 계속했습니다.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어느 정도의 게으름과 타성도 한 몫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 월요일, 있는 힘과 없는 용기를 내서 GYM을 찾아 다시 1년 멤버쉽 등록을 했습니다. 우리가 겁먹고 쫄아(?)있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운동벌레(?)들은 변함없이 GYM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몇 년 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니 첫 한 주 동안은 하는 것마다 힘이 들고 여기저기 온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하지만 2주차인 이번 주에는 그런대로 견딜만한 상황으로 발전을 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동안은 빠짐 없이 GYM에 가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동안 운동기구들과 씨름을 하며 우리 몸을 괴롭힌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토요일은 정기산행이 있으니 그걸로 대신하고 일요일 하루는 쉬자는 계획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흉측한(?) 뱃살도 들어가고 도둑 맞은 팔다리 근육들도 어느 정도는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입니다.

사실, 저는 싸이클을 다시 타고 싶은 욕망이 지금도 가득합니다. 20대 초반 방황의 시절, 몇 년 동안 저는 싸이클에 미쳐(?) 살았습니다. 당시에는 기어도 달려 있지 않은 빨간색 싸이클을 타고 임진각까지 미친 질주를 밥 먹듯(?) 했고 어딘지도 모르는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어 하늘을 벗삼아 몇 시간씩을 파묻혀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때 얻은 근육으로 제 허벅지는 이른바 ‘말벅지’ 못지 않은 단단한 모양새를 유지해왔는데 언제부터인가 근육들이 하나 둘씩 탈출을 시작하면서 볼품 없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토요 산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싸이클 타는 사람들이 몹시 부럽긴 하지만 싸이클을 타다가 자칫 잘못해서 구르기도 했다가는 GYM에서의 근력운동도, 토요 산행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리 쫄보부부는 오늘도 열심히 GYM에서 운동기구들과의 씨름을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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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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