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석촌호수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석촌호수는 청아하고 고요했다. 나의 석촌호수는 한강의 본류였고, 잠실의 섬 이름은 ‘하중도’ 였다. 잠실이 개발되어 물길을 막은 것이 바로 석촌호수이다. 그곳은 사람들의 삶과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엄마와 같은 따뜻한 곳이라 바쁜 일과로 지친 시민들에게는 다양한 방법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롯데월드라는 대형 건물이 바로 그때 그 자리에 우뚝 서있다. 그곳은 상전벽해가 되어 있었다.

지금의 석촌호수는 벚꽃도 피었고 많은 것들이 현대화되어 있다. 그것들이 왜 나를 쓸쓸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와는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으로 탈바꿈해서일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정서는 무엇일까? 내가 너무 올드 패션 한가? 아니면 변화를 싫어하는 마음? 아,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찍은 사진이라도 남겨 놓았을 걸, 사진을 모두 버린 후 아련히 보이는 것은 오직 내 머릿속에만 저장돼 있다. 그때 그 시절 풍경들도 조금씩 소멸하는 석촌호수는 내가 살았던 곳 중에 가장 많은 추억으로 넘치는 나의 석촌호수이다.

나는 한국에 가면 늘 내가 살았던 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옛날 모습이 혹시나 남아 있을까? 얼마나 변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한국 행은 항상 나를 추억의 장소로 이끌어준다. 두바이를 갔다 오면서 서울에 내리자마자 그리움만 더해가는 아름다운 추억의 나의 석촌호수를 별안간 가고 싶었다. 차 안에서 남서울병원, 엄마손백화점 그리고 가락시장이 얼마나 변했는지도 궁금해서 못 견디어 그 다음날 갔다. 그러나 개발이란 것에 밀려 내가 살던 집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르게 바뀌어 있었다. 개발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허망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 그 자리에는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석촌호수가 있었다. 미묘한 감정에 막걸리라도 한잔 한 기분이었다.

그 시절 그곳에는 정겨운 포장마차가 있었고 오리 떼가 평화롭게 놀기도 했다. 또한 사계절의 특색으로 매우 운치가 있었고 매력이 넘쳤다. 겨울에는 썰매를 탔고 봄 가을에는 포장마차의 다양한 음식들을 즐겼다. 나는 어쩌면 포장마차의 음식과 썰매가 있었던 석촌호수를 잊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포장마차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는 마치 힐링장소처럼 되어 있던 곳 석촌호수, 그들 모두는 어떠한 마음으로 이곳을 떠났을까? 문득 몹시 궁금해졌다.

나는 호주에 오기 전. 오랫동안 석촌호수가 바라다보이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부모님, 오빠네 가족 그리고 여동생이 가까이에 살아서 지금 호주보다는 덜 외롭고 너무 좋았다. 저녁이 되면 우리 가족은 포장마차에서 이것저것 맛있게 먹고 운동 삼아 걸어서 시장 코스로 갔다. 아들은 세발자전거 타기를 좋아해 늘 앞장서 저만큼 갔다. 조금만 가면 남서울병원 그리고 엄마손백화점이 있었다. 가락시장도 있어 싱싱한 야채를 늘 먹을 수 있었다. 그때는 도로들이 안전했고 조용한 편이었다.

가락시장은 각 지방에서 올라온 채소와 과일로 가득했고 갓 올라온 채소와 과일들은 싱싱하다 못해 빛이 났다. 우리는 한참을 돌다가 이것저것 사서 아들의 세발 자전거에 무 그리고 다른 채소를 가득히 싣고 집으로 오곤 했었다.

석촌호수 그곳은 밤이 되면 어디서 포장마차가 그리도 많이 나오는지 다양한 먹거리로 우리의 식욕을 돋워주기도 했다. 그들의 맛은 다양했다. 소라는 초고추장에 찍어서 홍합국물과 함께 먹으면 속이 시원해 좋았다. 그곳 음식 맛들은 마치 부산과 포항에서 먹었던 그 매력의 맛에 흠뻑 적게도 했다. 그 중 포장마차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은 지금도 먹고 싶은 소라구이이다. 게다가 청국장에다 해물종류 새우, 꽃게, 바지락 등등 이것저것 넣어서 끓인 해물 청국장은 속을 시원하게 해주어 생각만 해도 다시 입맛 나는 음식이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서 다시마국물에 해물청국장을 끓여 즐겨 먹으며 추억을 깨문다.

40년 전 석촌호수는 안정적으로 생태계가 유지돼 새들이 물고기들을 낚아채가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명 장면인지라 지금도 생생히 생각난다. 가끔 주말이면 어떤 이들은 낚싯대를 꽂아 놓고 잠이 들고 더러는 코를 골며 잠을 자기도 했었다. 어떤 물고기들은 가끔 수면 위로 떠오르는 반면에 고요히 헤엄치는 녀석들도 있었다.

데이트 족들은 주말이면 손에 손을 잡고 거닐며 쌍쌍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곳은 청둥오리, 거위, 오리 떼가 평화롭게 놀고 있었고 잉어와 비단붕어가 많았다. 어린아이들이 아빠엄마 손을 잡고 새들과 물고기들에게 빵과 먹이를 주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추억의 장면이었다. 중년남자들은 생각을 정리하듯 석촌호수 주위를 거닐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석촌호수는 현대인의 고뇌를 씻어 버리기에 아주 좋은 장소인 듯했다.

나는 누가 무어라고 해도 다시 아름다운 석촌호수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때의 나의 석촌호수는 없어졌지만 나의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랑과 추억은 영원하리라.

 

 

글 / 유수임 (동그라미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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