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골 가는 길

엄마의 등 뒤로 은빛 잎사귀가 엄마의 볼 같은 빨간 할미꽃을…

5년 동안 미뤄오던 귀국을 서두르게 한 건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였다. “바쁜 건 알지만 한번 다녀가야 하지 않겠냐? 아버지가 퇴원해서 집에 계시는데, 연로하신 양반이라 언제 가실지도 모르고… 그 동안 힘든 치료를 하셨잖니?” 엄마의 목소리는 둔탁했다.

 

01_아버지 항암치료… 나는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걱정되었다

여간 해선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던 엄마였기에 ‘다녀가라’는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일년에 한두 번씩 휴가를 내어 며칠씩이라도 다녀올 수는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고향을 가는 일보다 이국의 화려한 관광지를 찾아 다니는 것이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열정이라 생각했고, 그 여행의 끝에 서면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 듯 착각에 들떠 행복했었다.

엄마의 서운함이 전화선을 타고 계속 흘러내렸다. 수화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비행기 표부터 예매했다. 나를 아끼고 사랑했던, 아버지의 혈액암도 그 동안 타국에 사는 딸자식의 일상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처음 아버지의 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만 흘렸지만 이후, 고작 한 달에 두어 번, 병원 생활이 어떤지, 식사는 제대로 하셨는지, 소소한 안부만을 되풀이 했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여전히 고즈넉했다. 저수지 아래 삼십 여 채의 작은 집들이 하천을 따라 흐르고, 그 끝자락에 파란 슬레이트를 덮은 엄마의 집이 있었다. 반색을 하며 무거운 가방을 들어줄 엄마, 아버지 항암치료로 가슴 졸이며 하얗게 질려있을 엄마, 나는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걱정되었다.

 

02_뒷말을 잇지 못한 건 5년 사이 변한 두 분의 모습 때문이었다

멀리서 대문 앞에 장승처럼 서 계신 두 분을 확인한 것은 내가 탄 택시가 신작로를 돌아 갓길로 접어들 때였다. 산골의 저녁 바람이 아직 싸늘한데 타국에서 오는 딸을 맞으려 얼마나 저렇게 서 계셨던 것일까. 나는 유리창을 내리고 자꾸 자꾸 손을 흔들었다.

“저 왔어요…” 짧은 인사 후 뒷말을 잇지 못한 건, 지난 5년 사이 변한 두 분의 모습 때문이었다. 민둥산 같이 벗겨진 아버지의 머리, 푹 꺼진 퀭한 눈, 바짝 마른 몸… 아버지야 고된 암 치료 때문에 그렇다 쳐도 엄마 역시 똑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초췌한 모습과 주름 그리고 거친 손 가죽은, 한껏 이쁘고 멋진 모습을 보이려는 내 화장기 서린 얼굴을 이내 눈물범벅으로 만들었다. 거칠고 굽은 엄마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내게 말을 해주고 있었다. ‘그 동안 너무 무서웠고 힘이 들었단다.’

“그래, 여간 먼 길이냐, 힘들게 오느라 고생했구먼… 일하느라 힘들 텐데 그냥 집에서 쉬지 뭐 하러 와…” 아버지는 연신 맘에 없는 말을 토해냈다. “아이구, 이 양반이 웬 내숭이여, 안 온다구 밤마다 궁시렁거릴 땐 언제구…”

저녁상으로 분주하던 엄마의 핀잔이 아버지를 향했다.‘죄송해요. 진즉에 왔어야 하는데…’ 미안함 때문인지, 말이 차마 나오지 못하고 입에서 맴맴 돌고 있었다.

 

03_“낼 아침에는 일찍 도롱골부터 다녀오자, !

노부모와 함께한 저녁상은 호주에서 혼자 먹는 저녁상과 달랐다. 아침부터 준비했을 엄마의 정성이나 반찬 때문만이 아니었다. 포근함이었다. 쫓기는 듯 허겁지겁 살다가 고향냄새, 집 냄새, 엄마냄새가 전해주는 평온함과 안도감이었다.

“귀국하면 여기저기로 친구들 만나러 다니느라 정신 없을 텐데, 낼 아침에는 일찍 도롱골부터 다녀오자, 꼭.” 엄마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마을에서 십리쯤 되는 곳에 도롱골이 있다.

겨우 자전거나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산골길을 따라 들어가면 그 끄트머리에는 선산이 있다. 종가 집 맏며느리인 엄마에게 조상을 모시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아직 출가를 안 한 딸이 조상님께 인사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의중을 잘 알지만, 어쩐지 ‘꼭 가자’ 라는 엄마의 말엔 다른 뜻이 내포된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숙부의 산소에 늦게라도 인사를 하라는 것일까. 엄마는 피곤하더라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산소에 가져갈 간단한 제물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바람막이를 껴입고 엄마의 뒤를 따라 나섰다.

 

04_빨리 오라 재촉하던 그때의 엄마가 오늘은 저만치 뒤쳐진 채

봄이면 취나물, 고비, 고사리, 두릅 등 산나물을 캐고, 한 여름엔 어느 집 참외밭에서 슬쩍 서리를 하던 정겨웠던 길. 가을이면 언니들과 산밤을 훑으러 다니며 시간가는 줄 몰랐었다.

뙤얕볕 아래 밭일을 하기 싫어, 멀찌감치 엄마의 뒤에서 심통을 부리면서 걷던 이 길이 도롱골로 이어져 있다. 빨리 오라는 엄마의 재촉이 골짜기마다 쩌렁쩌렁 울려 퍼졌었는데 그때의 엄마가 오늘은 저만치 뒤쳐진 채 힘겹게 걸어오고 있다.

증조부모, 조부모 묘에 순서대로 절을 했다. 엄마는 지폐 몇 장이 든 하얀 봉투도 꺼내 묘비 앞에 올려놓았다. “자손들 건강하고 잘되게 지켜주옵소서…” 엄마의 기도는 산소에 웃자란 잡초들을 뽑아내면서도 계속 되었다.

숙부의 산소에 제배를 한 다음, 엄마는 나를 선산의 옆 자락으로 이끌었다. 거기엔 잔디가 없는 벌거스름한 묘지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여기다. 니 아버지랑 내가 들어갈 곳이… 손주들 크는 것 보면 딱 십 년만 더 살았음 좋겟구먼, 사람 명이 늘리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꽃이 피고 지듯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지…” 엄마의 넋두리가 나즈막히 이어졌다.

“키울 땐 끝나지 않을 고생 같더니만, 다 키우고 나니 자식 많은 것도 조상이 준 덕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남들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지만, 나는 니들 육남매를 낳아 키웠다는 걸 어디 가서든 제일 자랑하고 싶다. 가난 때문에 너희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게 아쉽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다들 제 몫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05_엄마를 기다리는 벌건 묘지 위로 참았던 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엄마는 금세라도 가묘 안으로 들어갈 듯한 어조였다. 가묘를 보고 있던 나는 마치 죽음의 사자를 본 것 같은 두려움과 슬픔이 엄습해왔다. “엄마, 나 소변 좀 보고 올 게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감추며 엄마를 피해 산비탈로 몸을 숨겼다.

난 엄마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신들이 가신 후에 자식들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미리 준비하셨다는 것을. ‘때가 되면 어련히 잘 알아서 할 텐데….’ 엄마를 기다리는 벌건 묘지 위로 꽁꽁 참았던 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엄마, 여기 햇볕이 오래 들고 저수지 풍경이 훤히 보이네요.” 나는 엄마의 가녀린 어깨를 슬쩍 껴안았다. “엄마랑 꽃나무 심으러 또 와야겠네. 엄마가 좋아하는 연산홍을 묘 둘레에 가득 심으면 어때? 엄마는 꽃잔디도 좋아 하잖어?”

나는 애써 밝은 척 하며 오래 사시라는 말 대신 해마다 이맘때 꽃나무를 같이 심자는 말을 했다. “시집은 안가고 꽃나무만 심으러 다닐려?” 엄마가 눈을 흘기며 기어이 그 말을 뱉으셨다.

언젠가 큰언니가 “엄마한테 노년 우울증이 온 거 같아”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국제전화를 했을 때가 생각났다. 엄마의 팔순 잔치가 있던 날 친인척들의 덕담을 들으면서, 다른 건 염려 안 되는데 내가 혼자 사는 게 제일 걱정이라면서 눈물을 펑펑 쏟더라는 것이다. 잔치를 망치듯 어린애처럼 울고 난 엄마가, 오색의 음식엔 눈길도 주지 않고 넋 나간 듯 오래 앉아 있기만 했다고 한다.

 

06_엄마와 내 볼에 취기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지었다

“엄마, 나 혼자 있는 거 걱정 안 해도 되요. 엄마도 알다시피, 난 혼자 있어도 심심해 하거나 쓸쓸해 하지 않는데 뭘. 그림 보는 것도 좋아하고, 화초 기르는 것도 쏠쏠한 재미구, 옛날 레코드 듣는 걸 연애보다 더 좋아하잖아요. 누군가 같이 있으면 좋아하는 것들 못해서 오히려 병 날지도 몰라요.”

엄마를 위로했다. 불효라고 생각지 말고 딸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달라고…. 그러면서도 한 켠으로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모양을 보여주지 못한 미안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엄마는 가묘 앞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술이 싫은 나에게 소주 한잔을 불쑥 내밀었다. 하얀 술잔 사이로 엄마의 주름진 손등이 서글퍼 보였다. 나는 소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한 잔을 따라 건넸다.

엄마와 내 볼에 발그스레 취기가 올라왔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지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골짜기를 따라 살금살금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의 등 뒤로 반짝반짝 은빛 잎사귀가 엄마의 볼 같은 빨간 할미꽃을 여기저기 피워내고 있었다.

 

 

글 / 이주실 (글벗세움 회원·장애인 Educ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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