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어부바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자주 있는 치매 환자의 탈출, 모두가 놀래 하지 않았다.

간호 보조사가 날 불렀다.

너싱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할머니 한 분이 남의 집 문고리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체격도 작고 마른 할머니가 웬 힘이 그렇게 센지 완강하게 저항하며 우리한테 발길질까지 했다.

마침 내 주머니 속에 사탕 한 개가 있어 입에 넣어 드렸더니 독약이라도 주는 줄 알고 다시 꺼내 확인하더니 맛있게 잡수신다.

 

그녀와 첫 만남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항상 내 주머니는 사탕을 잔뜩 넣고 다녔다.

이름은 루시, 나이는 89세, 10 년 전 치매에 걸려 이곳에 오셨다고 한다.

아침이면 예쁘게 단장하고 정문 앞에서 누군가 문을 열면 잽싸게 탈출한다.

방문객들은 멀쩡하게 차려 입고 가방까지 들고 있으니 할머니를 누가 치매 환자로 생각하겠는가.

일주일이면 두어 번은 탈출을 했다.

한시도 방심할 수 없어 일하면서 루시를 데리고 다녔다.

하루에 내가 맡은 환자가 보통 7 명이나 되니 항상 나는 빠른 걸음을 걸어야 했다.

루시까지 데리고 다니며 일을 하니 내 얼굴에는 온통 땀범벅이 되어 다녔다.

그런 내가 안됐는지 루시는 수시로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나마 내옆에 데리고 다녀 루시가 탈출하는 기회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돌변하는 루시 때문에 내 손등에는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꼬집고 물고 발로차고 매일매일 험한 날의 연속이었다.

어떤 날이면 악마처럼 변하고 어떤 날이면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수시로 바뀌는 루시 때문에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많았다.

탈출 했을 때 몇 번 업어서 데려온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루시는 가끔 업어 달라고 떼를 썼다.

이제 하루에 한번은 루시를 업고 너싱홈 한 바퀴를 돈다.

루시는 내 등에 얼굴을 묻고 아기처럼 잔다.

그런 다음날에는 나는 몸살을 앓았다.

그런 나의 사정도 모르고 간호사들은 둘은 영원한 Partner 라며 엄지를 들어 올린다.

 

하루가 다르게 루시의 상태는 안 좋아져 갔다.

아침이면 오물로 침대 밑에서부터 벽까지 페인팅을 칠해 놓았다.

그런 날이면 청소하는 걱정보다 루시 때문에 슬펐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긴장된 시간들의 연속 이었다.

안경의 화운데이션을 잔뜩 발라놓고 안 보인다고 울고 있다가 깨끗하게 닦아주면 환하게 웃는

사랑스러운 루시.

사업실패로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입사하여 또 다시 어려운 시련을 겪어야 하는 내 현실이 암담하고 슬펐지만 루시의 해맑은 미소가 내 가슴속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 등에 얼굴을 묻고 쌕쌕 거리며 자는 그 모습이 날 편하게 해주었다.

하루는 샤워를 하다가 샤워기로 내 머리를 때려 머리에서 벌겋게 피가 쏟아지니 루시는 벌벌 떨며 흐르는 피를 손으로 꼭 눌러주며 미안하다고 여러 번 사과를 했다.

붕대를 감고 집에 오니 남편은 그곳을 그만 두었으면 했다.

이제 내 마음속에는 루시가 있어 힘이 나고 내가 루시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 모든 근심과 고통이 다 사라지는 듯 했다.

사랑은 주는 것, 그리고 받는 것, 어려운 역경 속에 참다움이 있다는 걸 깨우쳐준 내 사랑 루시.

나를 찾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MUM, MUM”

사랑하는 내 아기가 날 찾는다.

업어 달라고 나를 찾는다.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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